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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농촌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지구인의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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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농촌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지구인의 정류장

: 노동자에게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만난 사람

_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_진행/정리 : 진기, 갸갸 (글로컬포인트 기획편집팀)

 

 


신자유주의가 부추기는 세계화라는 바람 아래에, 한국이라는 국가는 자신들의 시스템 가장 약한 공간을 이주노동자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국가 간의 협약을 맺고, 해외인력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지금 한국에는 2만~3만명에 달하는 농촌 이주 노동자가 함께 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국가가 고용허가제 EPS(Employment Permit Systerm)라는 이름으로 이들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선택과 거주 이동의 자유를 사용자 통제 아래 묶어 놓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4년 10개월이 지난 다음엔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자리는 다시 새로운 이주 노동자로 채울 수 있도록 법을 구성해 놓았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소개하는 글에는 "고용허가제는 외국인근로자의 체계적인 도입, 관리를 통하여 중소기업의 인력난 완화와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만이 담겨져 있다. 현 상황으로 비추어 글을 풀어보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 해법을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탈하는 방식으로 가져가겠다는 말인 듯하다. 
유투브에서 'STOP EPS'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이 있다. 모두 <지구인의 정류장>의 영상으로, 농촌 이주 노동자들이 직접 찍어 보인 자신의 노동과 삶을 통해 고용허가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영상작업과 농촌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문제의 법적 해결을 함께 하고 있는 안산의 <지구인의 정류장>을 방문하여 활동가 김이찬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짧지 않은 3시간가량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해결과 미디어 생산과정이 결합된 활동’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현 농촌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노동 진정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 한국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꾀어 들어오게 한’ 한국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방관하고 있는 사이,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부딪히는 반짝거리는 즐거운’ 문화적 기획을 하고자 했던 한 활동가의 답답한 삶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알찼던 그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로컬 포인트: 단체 이름이 조금 독특한 것 같은데요, 먼저 <지구인의 정류장>이란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김이찬: 함께 하는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국민들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도 아니었어요. 주민들이 대다수긴 하지만 주민이 아닌 사람도 있고 이주민도 있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아이들도 왔다갔다 하고 있었고.


지구인이라고 하면 배제되는 게 별로 없이 다 포함되잖아요. 우주인은 배제되겠죠. 지구 동물들도 배제되네? 이름을 확장시킨다고 모임이 좋아지는 건 아니긴 하니까. 참여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배제되는 경우가 없게, 지구인의 범위를 확장시키고자 노력했어요. <지구인의 정류장> 영문명으론 People of Earth's Station으로 쓰고 있어요. 지구의 사람들, 땅의 사람들. 지구인이라는 뜻의 Earthian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영어권 애들이 하는 말론, 이게 공상과학 만화에서 우주인과 대비되는 지구의 생명체, 지구인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써도 재밌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어서 간혹 섞어서도 써요. 
지구인이라는 단어와 정류장이라는 말이 모였을 때 재미있는 말이 되는 것 같아요. 보통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곳에서는 '~센터'라는 말을 많이 써요. 이 동네에는 중국 분들이 많이 사니까 한자로 쓰여 있는데, 센터는 한자로 중심(中心)이 잖아요. '~의 중심'. 중심이라는 한국말에서 변방을 쳐내는, 차별하는 것이 느껴지잖아요.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지 센터가 어딨어? 아시아에서 한국이 중심이라는 거야? 한국에서 안산이 중심이라는 거야? 그것도 아니잖아요. 뭐가 중심이라는 거야? 그렇게 된 거죠. 지구인의 중심? 너무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센터라는 말은 쓸 수가 없게 되었죠. 정류장하면 약간의 낭만성도 있고. 삶이 재미없어서 그렇지. (급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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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에 검색하면 나오는 [STOP EPS] 동영상 목록


글로컬 포인트: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지구인의 정류장>은 이주 노동자와 함께 미디어 활동들을 많이 해왔던 것 같은데,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현재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김이찬: 2009년 처음 모였을 땐, 자기 생활에 대한 비디오를 만들고 자기를 위해서 비디오를 만드는 모임을 하려고 했어요. 자라온 환경,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어쩌다가 안산에서 모여서 문화적 교류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꺼리가 없으니까 '비디오를 배운다' 이렇게 된 것이었고. 그럼 거기서 무슨 이야길 할 것인가?, ‘자기 생각들을 이야기를 해보자'로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근데 각자의 생각들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이 자연스럽겠고요. 그럼 서로 영향을 끼쳤겠고. 그렇게 비디오를 만들고 대화하며 발표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서로 나누는 곳이었어요. 그 결과로 무엇이 나올지, 그 경험의 결과가 참여자들의 이후의 삶에 무엇을 남길지는 예측할 수 없는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것을 한번 해보자고. '가능한 만큼이라도'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대체로 그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햇수로 7년인데,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고 있는 듯 하고, 사실 원하는 것이 뭔지도 분명하지 않아요. 주체의 경계도 모호하고. 물론 성과도 미미했어요. 노동자들에겐 ‘내 삶에 대한 비디오를 만들어서 남한테 보내줄 이유가 뭐가 있어~' 라는 질문이 생겼죠. 자신이 처한 굉장히 불리한 삶의 환경들 조건들, 남의 나라에 와서 말도 못하고 말을 못하니까 손해도 많고 억울하기도 하고 차별을 당하기도 하고 욕도 듣고 하는 그런 상황이 노동자들에겐 있어요. 그것에 맞서게 되면 내가 굉장히 위험해지는 상황이 될 수 있고.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처럼,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한 억울한 일들, 상황들, 인권유린을 말하긴 쉽지 않죠. 


그리고 텍스트를 포함한 시청각 미디어를 구성해서 제작하고 발표하는 것은 누군지 특정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관객과의 만남을 노린 행동이잖아요. 영상을 제작해서 어딘가 유통시킬 공간이 있고, 그에 대한 반응도 있다면 계속 할 동력이 될 수 있었겠지만, 보통은 영상 공유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기껏해야 자기 블로그인데, 누가 찾아 와주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아마 발표되는 양이 적고 그랬어요. 최근 3~4년 사이에 매체 환경이 많이 바뀌긴 했어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앱과 같이 집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서, 발행하고 유통하는 게 좀 더 편해진 게 있죠. 그것에 따라서 어떤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게 된 것도 같아요. 아주 힘든 일을 겪은 노동자들은 표현하는 게 여전히 힘들겠지만.. 자신의 삶의 문제를 직접 휴대폰으로 찍어서 거기에 말도 덧붙이고 사진도 덧붙이고 글도 덧붙이고 해서 만든 영상에 대해서 동료들이 어떤 평가를 하든, 지지를 하든, 이게 이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까, 힘도 받고. 이런 과정에서 공동의 의견도 형성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쌍방향적이고 정형화 되어있지 않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서 좀 더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하는 것 같아요. 

 

글로컬 포인트: <지구인의 정류장> 페이스북에 올려진 [STOP EPS] 영상을 봤었는데,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보는 것은 기사나 여타 다른 미디어와는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노동환경과 관련해서 당사자가 직접 말하는 것, 카메라는 든다는 것 혹은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이찬: 지금 이 사회에서 내가 발언자가 된다는 경험은 모든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떠나오기 전의 사회에선 어땠을 진 몰라도. 영상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 이 시도가 얼마나 필요한 작업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요. 무엇인가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리하게 되게 되죠. 결과도 결과지만 만드는 그 자체, 교류에서 주는 어떤 변화가 있는 거 같아요. 뭔가 하나를 만들어 본 경험은 이후 다른 삶에도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아요. 단지 영상, 사진, 디지털 데이터 다루는 기술을 익힌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표현을 하는 데도 힘을 얻게 되죠. 삶의 다른 문제, 이를테면 '임금문제가 부당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사용자측하고 맞서서 얘기 것과 같이 갈등이 있을 때, 시도하고 극복하려는 모습도 좀 달리 나타나는 것 같아요. 서로 연대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영감을 주는, 그런 미디어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선 콘텐츠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계속 필요하죠. 물론 저도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 관객이 필요하다는 점도 항상 생각해요. 이런 콘텐츠들을 생산하는 것은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요즘 매체 환경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소통하는 것에 자신에 시간을 좀 더 쓰고자만 한다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 시작하는 분들에겐 이것도 어려울 순 있겠죠.

 

글로컬 포인트: 농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영상 활동을 하게 된 계기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김이찬: 제 경우 94년부터 98년까지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에 다녔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활동을 제대로 기획을 해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2009년, 2010년에는 주로 영상을 통해 문화적 교류를 하며 서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했었던 거 같아요. 목표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좌우간 사회에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 것.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거, 자신이 이렇게 산다고 얘기하는 거, 나 이런 사람이야, 내 생각은 이렇거든, 이렇게 얘기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많았던 거 같아요. 기획자로선 한국사회가 실체에 대한 이해 없이 ‘다문화’라고 외치는 것에 대한 일침을 놓아보자는 욕심도 있었고요. 외부에서 와서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한국사회에 알리고 전하는 것이 중요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죠. 어쨌든 그들의 생각과 발화의 맥락을 이해하고 중요하다 판단하는 건 한국 스텝들이었고, 어떻게든 만들어서 열린 채널에 내보내고자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몇 개 나갔어요. 미디어 저작물을 생산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도 풀고, 문제해결과 미디어 생산과정이 결합된 그런 활동을 그래도 조금은 한 거 같아요. 2012년까지. 그러다 막 몰려오는 상황에 맞춰서 지금처럼 활동이 변해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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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주노동자영화제엔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만든 작품 <이 별에서 살으렵니다>

-<지구인의 정류장1>, <이봐요! 나 지금 안산에 살아요!>, <공부하고 싶어!>를 출품하기도 했었다. 

 


“(입장을 바꿔서) 전부 캄보디아 말로 써 놓고, 계약서라는 단어도 없는데 이걸 계약서라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글로컬 포인트: 현재 <지구인의 정류장>은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죠, 이곳에 오는 노동자들은 주로 어느 지역에서 오는 건가요?


김이찬: 2013년 넘어오면서, 전국에 있는 농촌이주노동자들이 밀려온 것 같아요. 그건 문제가 그 동안 그만큼 있었다는 얘기고 풀 곳도 없었다는 얘기죠. 풀 수 없었으니까 그 먼 거리를 통해 여기까지 온 거예요. 대구랑 울산에는 훌륭한 이주노동자 관련단체들이 있어요. 거기서도 많이 연락받고 하는데. 주로, 농업노동자가 많은,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서북, 영서지방, 경기도, 심지어, 경기북부, 휴전선 근처에서 온 사람도 있어요. 왜 그, 대북 삐라 날려서 총알 떨어진 데 있죠? 그 마을. 그 마을에서 일하다 온 사람도 있어요. 연천, 그렇게 노동자들이 왔어요. 몇몇 사람들이 와서 머물고 가면서, 그니까 여기가 쉼터가 되었어요. 노동자들이 잘 곳이 없어요. 일터 옆에 비닐하우스가 농업노동자들에게는 집이에요. 월급을 100만원받고 월세를 40만원씩 주고 사는데 그럴 순 없는 거잖아요. 여관도 2만원이면 좋은 데서 잘 수 있는데., 거기다 쌀5만원 전기4만원 따로 받아요. 이게 저임금을 위한 일종의 장치예요.

 

글로컬 포인트 : 농촌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노동자들 간의 네트워크도 쉽지 않고, 이런 곳이 있다는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김이찬: 그런 사적인 네트워크가 있는 거죠. 노동자들 사이에, 주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고 가끔 네팔 사람들도 있고. 캄보디아 노동자들 사이에는 많이 알려져 있나 봐요. 안산에 있는 이곳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 한 달에 한 40건 정도의 새로운 상담 받고 그 중에서 5-6건 정도를 신고하고, 진술하고 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20대 젊은 노동자가 해외에 나와서, 남의 나라 언어로 그 나라 경찰이나 이런 곳에 문제제기를 해서 자기의 문제를 말한다는 거 자체가 쉽지 않죠. 실제로 문제제기를 몇 퍼센트나 할까요. 진정을 넣은 사람이 미국이나 프랑스사람이면 그러진 않겠죠. 저런 집을 주면서 70만원을 받아먹진 않겠죠. 둘이 살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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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찬 감독이 노동자가 사장의 아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캡쳐한 것을 보여주었다.

글로컬 포인트에서는 실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옮겨, 실제 정황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정부가, 노동부가 아무 대책이 없어요. 여기 노동자들은 노동청에 진정을 하고 싸우고 있는데. 온지 열흘 된 노동자를 데려다 놓고, (사장이) "야, 8시간 일하면 82만원, 수습기간이 80만원이야. 10시간일하면 115만원이야. 알았지? 싸인해- " 이런 방식인데도 이걸 지금 인정해주고 계약서라고 주장해요. 그런데 생각해봐요, 이게 전부 캄보디아 말로 써놓고 “여기 서명해” 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계약서라는 말도 안 적혀있는데. 이걸 근로감독관들이 무효라고 판단을 못해요.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을. (노동자들이) 94년생 사람들인데, 타국에 와서 수입의 3분의 2를 저런 집의 집값으로 내라고 누군가 시키는 거예요.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면서 일주일에 2일이 아니라 한 달에 이틀을 쉬어요.

 

글로컬 포인트: 보통 계약서에 최저시급도 안되게 계산이 되어 있다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서가 작성이 되었다면 계약서에서 그 부분은 무효처리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이찬: 그렇죠. 하지만 (계약서에는) 교묘하게 7시부터 4시로 적혀있는 거죠. 그 시간에 끝나는 농업은 없어요. 저녁 6시나 7시나 되어야 끝나죠. 방금도 전화가 왔는데 여성노동자가 임신을 했는데 사장이 내쫓는다고. 임신을 하게 되면 근로기준법상 6개월 정도 임신휴가를 주게 되어 있어요. 전부 다 무시되고 있어요. 노동자의 권리가 너무 약해요 지금. 사람답게 살 수가 없어. (한숨) 그러면서 또 한국에선 한국 사람들은 정부에서 왜 결혼 안 하냐고, 왜 안 낳냐고.

 

글로컬 포인트: 공장 노동자의 경우와 비교해서 농업노동자의 상황은 어떤가요?


김이찬: 공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옆 공장이 알아. 같이 항의할 수 있어요. 또 소문나면 그 공장에 안 가니까. 노조가 있는 공장의 이주노동자들은 훨씬 괜찮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어요. 근로시간도 규격화 되어있고, 복지, 휴게, 휴식에다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한 일은 안 할 권리도 가지고 있고, 산재보험도 적용이 되고. 개별적인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들의 그룹의 힘이 셀 때는, 거기에 끼어있는 3~5%의 이주노동자들 역시 같은 대접을 받아 일하는 환경이 좋아요. 한국인 노동자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아 사장님 이건 아니죠” 할 텐데, 너무 눈에 보이는 노동법 위반 같은 것들도 이주노동자들끼리만 있는 공장에서는 흔하게 일어나요. 거기다 농촌은, 자기 이름으로 고용해서 동생네 밭에서 일 시키고, 그러니까. 이게 인신매매가 아니고 뭐냐 구요. 이게 직장이냐고요. 노동자가 잘 모르니까. “여기도 내 밭이야, 여기서 일해야 돼” 라고 쉽게 말하는 거죠. 품앗이라고 해도 그게 자발적이고, 속지 않고, 그렇게 되면 좋은 거겠지만. “오케이 사장님, 내가 거기 가서 일할 게 돈 줘.” 이렇게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미 노동시간은 넘겼고, 제대로 돈 안 주고, 이 집일 저 집일 다 하고, 집안노비, 마을 노비인거죠. 
 

글로컬 포인트: 이런 문제를 지원하는 다른 센터는 없나요?


김이찬: 농업 분야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를 못했던 것 같아요. 저희 단체 이야기가 제일 많은 것 같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셈인데, 지역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하는 곳도 있을 거예요. 저희도 대부분은 말로, “선생님 좀 그렇게 하지 마시고, 이렇게 하면 근로노동법 위반일 수 있으니까, 노동청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적당히 타협하자”고 사장한테 얘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글로컬 포인트: 최근에 상담이 늘었다고 하셨는데, 최근에 이주노동자 관련 이슈가 있기 때문인가요?


김이찬: 기본적으로 고용이 늘어나는 것도 있고, 전에는 더 심했는데, 말하지 못했던 거죠. 좋아진 상황이 이 정도라고 한다면, 그 전엔 어땠을까요? 지금 계속 관리의 책임이 있는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가 아닌 것은 세월호 이후로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이지만. 그렇게 압력을 가하고, 더 중요한 건 노동자들이 각성을 하는 거죠, 이렇게 주눅 들어 살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경험과 지혜를 쌓고. 
 


글로컬 포인트: 저희가 고용허가제나 퇴직금 문제에 관해서 검색을 해보니까. 고용노동부가 영세한 농민의 입장에서 고용허가제가 꼭 필요한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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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사이트에서,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고용노동부가 답변을 달았다

 

김이찬: 농민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해)힘들면, 한국 젊은이들이 가서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면 되잖아. 그러면 되죠. 그 모르는, 낯선 환경의 외국인, 데려다가 버틸 수 없는 환경에 놓고, 인권유린을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이주노동자들이 다른데 가서 일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통제권을 사용자들(농장주)에게 줬어요. 이들이 고용변동 신고를 해줘야 이주노동자들은 딴 곳에 가서 일할 수 있어요. (노동자가) “이건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면, “너 고향으로 보내버리겠어” 라고 말하며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사장 개인한테 준거에요. 이건 국가도 법에 따라서만 할 수 있어야 하는 규제 행위인데, 그걸 사용자가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불평등한 관계를 강화시킨 제도가 고용허가제예요
 
글로컬 포인트: 이전에 산업연수생 제도가 없어지게 된 게, 산업연수생 제도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닌 특수한 상황으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 비판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고용허가제가 아닌가요?


김이찬: 일보 진전이라고 할 수가 있죠. 전에는 제도적으로 없었으니까. 제조업이나 농축산 분야에 없었으니까. 제도적으로 열린 거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거죠. 지금은 사정이 있어도 그만 둘 자유가 없는 거예요. 
 

김이찬 감독이 보여준 동영상에는 한국에 온지 한 달이 채 안된 두 여성노동자가, 사장이 전기를 끊어 밥을 지어먹지 못하게 되자 사장에게 찾아가 얘기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사장님 밥 주세요. 밥 주세요. 사장님. 배고파요”
“밥 없어. 너희들 같이 일 못하는 애들한테는 밥 못줘, 가”
“사장님 밥 주세요.”
“너희는, 너희같이 말 안듣는 애들은 처음봤어. 택시타고 천안에가”

 
글로컬 포인트: 그럼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국내에서 이주노동자가 작업장을 옮기려고 하면 어떤 루트가 있나요?


김이찬: 고용 센터가 유일한 합법적인 브로커에요. 고용센터에 등록되지 않으면 미등록이 되는 거예요. 3개월 이상 기록이 없으면 미등록을 불법화 시키는 거예요. 아무데나 자기가 가고 싶은 데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소개한. 웃긴 건, 이사람(영상속의 사장)이 근로계약서 상의 사장이 아니야. 딴 사람이 계약을 해서 노동자 둘을 꿔줬어. 근로계약서상의 사장을 보지도 못했어요. 노동자들은 몰라, 진짜 사장인지 가짜 사장인지 어떻게 알아요. 노동청에 나중에 진정하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런데 무자격 사장이 자기 일터에 데려다 놓고 일을 시키면서, 밥도 안주고, 이걸 삽질을 해서 고랑을 파라고 시킨 거예요. 온 지 3일 되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머뭇거렸어요. 잘 몰라서, 그랬더니 “너 왜 안 해, 삽질도 못해?” 그러고 넌 일하지 말라고 내 쫓았어요. 애초에 비숙련 노동자가 오는 거잖아요. 삽질 못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가르쳐야 할 거 아냐. 그런데 내쫓아, 그래서 (영상에서) “사장님 밥 주세요” 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이 하룻밤을 굶고. 책임 지지 않겠다는 거죠. 버리겠다는 거죠. 이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천안이 어딘 줄 알고 가. 사장이 귀찮은 거야. 나중에는 “역시 여자애들 안되겠어” 이런식 인거죠. 자기는 자격도 없는데 데려다 쓰고, 임금도 아직까지 전혀 안 준 상황이에요. 이런 일들이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막 받아요. 또 (이 노동자들을) 비 오는 날 쫓아냈어…. 참 단편영화 여러 편 나오게 생겼어요. 옛날 같으면 그렇게 했지, 아까 말했듯이 요즘은 노동자들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 한국에 와서 이런 시련을 당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해요. 노동자들 전부 10대 후반, 20대 초반.. 이제 그런데 한국에 오려면 300만원의 비용을 치뤄야 해요. 300만원이면 거기선 3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그런 돈이죠. 한국말도 배우고 준비도 하고 비행기 표 사고, 시험도 쳐야 하고, 그렇게 왔단 말이에요. 그렇게 왔는데 근데 사장이 아닌 사람이 와가지고…

 

캄보디아에서는 현재 임금을 177달러로 올리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외국계기업이 대부분인 캄보디아의 공장들은 초봉이 70~90달러 선이라고 한다.


 
글로컬 포인트: 그런 상황의 노동자들이 그렇게 큰돈과 시간을 들여서 한국을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이찬: 임금 격차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국에 오면 공장에서 뭔가 보호를 받으면서 근로시간에 딱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온 거예요. 한국이란 나라는 노동법도 있고, 노동시간도 있는 그런 곳인 줄 알았는데, 왔더니 이런 상황인 거죠. 이 사람들은 지금 천안에 새 직장을 찾아 갔어요. 그런데 아직 그때 20일 정도 일한 걸 돈을 못 받고 있지. 사장은 얘네가 일 잘못한 거고 자기는 잘못 없다는 입장이야. 실제로 고용한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여럿이 있으면 연대해서 대응할 수도 있고 하니까, 요즘은 이 사람들이 지금 많이 표정이 밝아졌어요. 

 

다문화 프레임 속에 이주노동자는 없어요

 

글로컬 포인트: 이주노동자들의 이런 상황은, 정부가 다문화 정책 추진하고 있는 것과 상반되는 상황이네요.


김이찬: 다문화 프레임 속에 이주노동자는 없어요. 다문화라고 할 때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아주 거칠게 얘기하면, 전통적인 사고관점에서 한국 남자의 대를 잇는 가족, 그게 다문화가정이고 포섭대상이에요. 근데 이 가정은 완전한 가정이 아니야, 그래서 다문화 가족이에요. 다문화라는 말이 붙는 순간 2등급이 되는 거죠.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이면, 가족이면 되지 다문화라는 말이 왜 붙나요, 붙는 순간, 한국 문화의 습득이 필요한, 그러니까 괄호 딱 치고, 교화대상인, 완벽한 가정이 아닌 다문화 가정, 그래서 교육을 시켜서 완벽한 한국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다문화가정 이런거죠. 

 

글로컬 포인트: 그럼 법규를 위반한 농장은 어떤 패널티를 받나요?


김이찬: 패널티가 있는데 아주 경미해요. 약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아. 신고해서 노동청이 결정을 하고 처벌을 노동자가 원하면, 처벌을 받죠. 그 해는 괜찮고 그 다음해는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 없는, 1년 동안만 못쓰죠. 그럼 그 동안에 딴 농장 이름으로 해서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요. 그걸 다 농업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하고 있는데, 농업이 보호되지 않는 이유는 뭐에요? FTA때문이에요, 나라가, 정부가 망쳐놨어요. 

 

글로컬 포인트: 그렇게 이주노동자의 노동 상황과 FTA가 연결이 될 수가 있겠네요.


김이찬: 연결이 되어 있죠. 농촌이,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고요. 그만큼 값을 주고 사먹으면 되잖아. 아니면 한국에서 농업은 안 할 건가? 공공적 프레임이 농사에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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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생산품으로 소모되지 않고 자기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글로컬 포인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활동가로서 느끼는 한계나 제안할 점이 있을까요. 


김이찬: 노동자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타국에서, 소모품으로, 생산품으로 소모되지 않고 자기 삶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야 된다는 거, 그건 사실 한국사회에 노동자로서의 지위랑도 연결이 되어있죠.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해외에서 온 노동자들을 끼워놓은 거죠. 돈 버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낮은 임금으로. 여기엔 자본의 음모가 있는 거죠. 그리고 지금 이주노동자 신분을 5년 이상 허용하지 않고, 4년 10개월까지로 한정지어 있어요. 다른 문화적 기획이나 삶이 불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일만 하다가 자국으로 도려 보내는 시스템이 현재인거예요. 말로 하면 일회용 노동자 인 것이죠. 이주 노동자가 사람이라고 보지 않고 일회용 산업부품으로 보는 거예요. 이런 시스템은 노동하는 사람의 지위가 너무 약한 그런 사회에서 가능하죠. 농촌 문제가 해결되려면, 농산물 가격이 제 값을 받아야 하고, 농업 환경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근데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인데요 뭐. 한 달에 이틀씩 쉬게 해두고, 한 달에 못 쉬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악의적으로 임금을 착취하기도 하고. 이건 지금 개별 농업 사업자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글로컬 포인트: 한국의 다양한 문제가 농촌 이주 노동자가 처하는 상황에 함께 응축되어 있네요. 


김이찬: 한국 정부는 아직도 이런 상황을 잘 몰라요. 비디오나 들이밀고 해야, “그럴 수도 있겠네” 라고 얘기를 하죠. 근데 지금 제도가 없으니까 구제도 못하고. 근로계약서에서 짐작하는 바로는 농촌에서 일하는 시간이 11시간, 12시간 이예요. 갈 때 마다 정산을 좀 하라고 싸우는 게 제 일이고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선생님 왜 9급 공무원을 괴롭히세요~” 라고 해요. 전 “당신 개인한테 얘기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어쨌든 권한을 가지고 한국정부의 입장을 대표해서 일하고 있으니까, 노동부의 입장이 뭔지, 장관의 입장이 뭐냐. 당신의 장관에게 물어봐라, 이런 경우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라” 라고 하는데. 너무 뻔히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 최소한의 조사도 없고 데이터도 없고. 그게 무슨 정부인지. 국가 간의 협약을 맺어서, 정부에서 노동자들을 데려다 놓고 뭐가 있는지도 몰라. 정부가 “모른다” 그러면 누가 움직이냐고, 한국에 농촌 이주 노동자가 2만, 3만명 있는데. 조금이라도 조사를 해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안하고. 한국정부가 툴도 없고, 제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알겠어요. 그러니까 알게 된지 3~4년 되면 이제 뭔가 알려고 준비를 해야 될 거 아니예요. 지금껏 알지도 못해. 뭣도 없고. 무엇보다 문제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 그렇게 싸우고 있어요. 지겨워 조금. 3년째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

 

글로컬 포인트: 노동 문제를 푸는데 있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될 수 없겠지만,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이 결국 농촌에 거주하는 2만, 3만명의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길러진 작물인 것이라는 점에서 먹거리 정의에 관한 문제의식들이 많은 것 같아요. 


김이찬: 혼자 있는 단일한 구조면 정의고 뭐고 없잖아요. 정의라는 것은 어떤 다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평하냐, 안공평하냐' 이런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생각해요. 누구 표현을 보니까, ‘흑인이 흑인들끼리 있었으면 노예가 아니에요. 백인이 그 나라에 가서 백인이 그 사람들의 삶에 들어갔을 때 노예라는 상황이 발생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한국도 지금 세계화를 말하곤 하는데, (세계화를) 이전의 삶에선 예상되지 않았던 그런 만남들과 부딪힘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 관점에 대한 준비와 대비가 없다면 징징짜고 울거나 누가 사라지거나, 관계 속에서 희생되는 이들이 발생하는 것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한국의 농민들과 한계 산업이라고 얘기되는 자본주의 말단의 작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를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타지역에서 꾀어 데려온 이주노동자들과의 만남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죠. 지금 그런 새로운 관계들을 발견하고 있는 거죠. 

 

글로컬 포인트: 아까 통화하셨을 때도 임신문제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런 문제를 지금 당장 지원해주는 곳은 어딘가요? 


김이찬: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듣게 됐죠. 만약에 그런 낌새나 이야기가 있으면, 수원에 있는 이주여성인권상담소로 연결해요. 노동자를 위한 곳은 아니고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곳이긴 한데, 거기 활동하시는 분이 여기 상황을 대강 아니까. 임금문제, 인권문제는 저희한테 자문을 구하고, 여성상담 관련은 통역하시는 분이 거기에 있으니 그쪽에 가서 합니다. 나는 말도 잘 모르거니와 여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엔 불편할 거 아니에요. 

 

글로컬 포인트: 여성노동자들끼리 서로 그런 고민이나 상담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나요?


김이찬: 여성노동자들이 다른 여성들한테 얘기하기도 불편한 얘기예요. 왜냐하면 젊은 여성이 한국이라는 남의 나라에 와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모국에서의 인식도 좋지 않거든요. 옛날 우리나라처럼. 누가 이태원에 돈 벌러 갔다하면 온갖~ 걸레 같은 험한 표현들, 양갈보 소리를 듣게 되었잖아요. 자기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험한, 해외에 나간 사람들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있어요. 해외에 돈을 벌러 간 여성노동자의 경우 이후 독신생활을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부정적 인식들이 생겨요. 또 돈은 벌어다 주니까 좋아하는데, 돈을 받아쓰면서도 욕은 해요. 쟤, 한국에 갔다 왔는데, 눈굴 만나고 어쩌고 저쩌고~, 그때 애를 배었대드라 어쨌대드라~ 한국은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같은 것들이 일반화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주의, ‘성인되면 너네 문제니까 내가 굳이 필요한 것도 없고' 하는 분위기가 조금은 된 것 같아요. 우리 어렸을 때에 비해서는요. 근데 거긴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로 '여자가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되지~’, ‘여자가 거친 세상을 겪으면 안되지’, ‘순수함을 잃어버렸을 거야~'라고 하는 게 있죠. 남자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결국은 여기의 여성노동자들이 그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여기서 좀 더 재밌는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자기 사회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상상력을 묻혀서 가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근로시간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뛰쳐나온 사람 중에는 2개월, 3개월 실업기간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요. 이때 내가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원래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상담을 하며 긴밀하게 접촉하다보니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관계가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저 사람들이랑 같이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저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가서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 삶에서, 자기의 어떤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이나 태도를 계획할 수 있는 뭔가 좋은 프로그램, 좋은 충돌 만남,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싶어요. 여성노동자들이 많은데, 좀 더 자기 주체로 서고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기획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프로그램이 뭐여야 하는지는 잘 상상이 안돼요.  

 

글로컬 포인트: 그런 자리를 만들면 정말 좋겠네요. 여성주의나 성교육 같은 것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김이찬: 작년에는 정혜실선생님이랑 일주일에 한번씩 젠더교육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사고 속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을 지금 다른 사회에 와있으니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자기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 새롭게 경험해 나가는 것들에 대한 가이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그런 류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로컬 포인트: 마지막으로 현재 활동의 아쉬운 점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신가요?


김이찬: 이렇게 말하면 웃긴데, 저는 행복해요. (이주 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좋은 거 같아요. 함께 소통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가끔은 어느 정도씩 얻고, 때로는 자주 원하는 만큼의 변화와 결과, 답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 행복한 거 같아요. 노동자들도 아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정류장하고 노동자들의 유대감은 함께 만들어온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죠. 


다만 제일 아쉬운 것은 여기가 긴급 구호 기관, 구호를 위한 단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에요. 나는 계속 그렇게 (법률업무만 보며) 살아야 하나. 그렇지 않거든요. 노동자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고, 어떨 때는 아주 발랄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문화적인 결은 다르겠지만, 노동자들이 페이스북에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을 보면 아주 화려해요. 20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에너지들이 있어요. 그들이 가진 밝은 에너지와 미래에 대해서 굉장히 낙관적인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어떤 영상들, 미디어 컨텐츠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여력이 없는 것이죠. 이것이 문제인데, 금년 계획 중의 하나가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해서 외부의 전문 컨텐츠 제작자들과 함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행위들을 해보는 것이에요. 예산 마련하려면 기획서를 써야하는데.. 지금 게으름 피고 있어요. 작년에 후원금만으로 운영해서 힘들었거든요. 


확장이 쉽지 않다는 것도 지금 상황의 한계 중 하나예요. 노동자들과 같이 어울려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함께 나누는 활동을 하고 싶은데, (공기로 존재하는) 조직 내부의 권력 관계문제가 있죠. 한국인 스탭들만이 너무 많이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하고, 말도 제일 많이 하는 것.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빠지고 싶고, 떠나고 싶고 한데. 내가 하고 싶은 기획도 하고 싶고, 노동자들과 같이 캄보디아 노래로 기타 합주를 해본다던가. 어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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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 거실 옆 벽에 있는 게시판.

가운데 녹색배경의 파란글씨로 쓰여 있는 포스터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자치회 <크메르>의 존재를 알린다.

크메르는 캄보디아어로 캄보디아를 뜻한다. 


현재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이 만든 ‘크메르’라는 이름의 자치회가 있어요. 자치회에서 토론을 수렴하고 질문을 받고 던지고 받고 하면서 공동체의 자체 의견들을 강화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조직을 만들어 뭘 할지 생각해보고 실천하고 실험해보고 하는 이런 것들이 축적되면 구조적인 악에 맞서 대항할 씨앗 같은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 바람은 그렇고 해서, 대표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압박을 하는데,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해요. 그러면 결국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또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고 계속 끌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들의 자치회이니까 잘못된 판단이든 실행이든 당신들 몫이다, 판단하고 실행을 해보고 틀리면 수정하고, 이렇게 가야 조직의 힘이 조금씩은 더 강해지지 않겠냐고 말을 해요. 어려운 환경이지만 지금 노동자들이 조직해서 만든 새로운 조직을 응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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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에서 김이찬씨의 사진을 찍었다.

빨래대에 널려있는 것은 <지구인의 정류장> 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옷가지들.

 


지구인의 정류장 유투브: https://www.youtube.com/user/Earthian2012
지구인의 정류장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Earthian.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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