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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주의자가 고민하는 광장의 ‘비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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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혁 / <전쟁없는 세상 World Without War> 회원
나는 비폭력주의자다. 태생적으로 곱디고운 정서를 가져서 비폭력주의자가 된 게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고 내 안에 내재된 남성성과 폭력성에 대해 성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비폭력주의자가 되었다. 말이 대체로 명령형으로 끝난다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의 폭력성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까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이었다. 항상 상대를 고압적인 태도로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문장의 서술어 하나 고치는데 한참이 걸렸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자신을 돌아봤다. 처음에는 억지로 눌렀고, 그 다음에는 조금 자연스러워졌고, 어느새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 되었다. 비폭력을 좋아한다는 말과 비폭력주의자라는 말은 다르다. 이 글은 요즘 한국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려오고 있는 비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2차 촛불집회에 갔을 때 골목길을 따라 청운동 동사무소 앞까지 갔다. 그곳이 최전선(?)이었다. 조금이라도 청와대 가까운 곳에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슷한 생각으로 모인 사람이 이삼백 명 정도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고 나면서 구성이 바뀌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애국가를 부르자 했고 누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고 했다. 더러는 애국가가 불편하다고 항의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발언이 길면 짧게 하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불편한 단어가 들어가면 박수를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룰을 정해가며 스스로 광장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그 날 최고의 갈등요인은 비폭력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몇 사람이 경찰차벽을 넘어가려 하자 차벽위로 경찰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내려오라 했다. 누군가는 프락치라고도 했다. 차벽에 오른 사람들은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모일지 모른다. 오늘 넘어가야 한다고도 했다. 경찰은 차벽에 오른 몇 사람을 이유로 고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찰 간부가 일부 시민들과 함께 비폭력 운운하는 장면도 나왔다. 혼란스러웠다. 평소 그렇게 외면 받던 비폭력 저항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이었는데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비폭력이란 뭘까?
현재 한국사회 통용되는 비폭력이란 말은 개념이 너무 왜곡됐다. 대표적인 비폭력 저항인 시민불복종은 법이 정의롭지 않으면 그 법을 어겨서라도 싸우자는 거다. 시민의 정의가 법보다 우선하니까. 부패한 권력은 대개 합법적으로 유지된다. 정치인, 재벌, 검찰, 보수언론 등 부패한 권력의 카르텔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비등해지면 더러 특정한 사람을 처벌하고 솎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 자체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대체로 위협받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는 『공화국의 위기』에서 “시민불복종은 뜻있는 시민들이 정상적 통로로는 변화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호소가 거부당하거나 실행되지 않는 경우, 또는 그와 반대로 정부가 그 적법성과 합헌성이 심히 의심스러운 일을 주장하여 추진하거나 변경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을 확신했을 때 일어난다.” 고 말했다. 따라서 시민불복종은 형식상 불법이 될 수밖에 없으나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 사회적 정의 등을 구현하려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건강한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인 비폭력 투쟁의 사례를 들어보자. 비폭력의 상징으로 인정받는 간디의 경우 평생 수많은 투쟁을 전개했는데, 그 중 많이 알려진 것이 소금행진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소금 생산과 판매는 전적으로 영국 정부가 통제하고 있었다. 그 통제는 소금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인도인은 높은 세금을 내면서 소금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저항하고자 간디는 소금을 스스로 생산하겠다며 단디 해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처음 몇 십 명으로 시작한 행진은 마을과 마을을 지나며 계속 불어나, 단디에 이르렀을 때는 행렬이 2마일에 이르렀다. 결국 육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소금법 위반으로 투옥되었다. 간디 자신도 투옥되었다. 하지만 비등하는 국제여론 때문에 결국 그 이듬해 소금법은 폐지되었다.
이 투쟁은 간디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절대 평화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서 막았다. 법도 동원했다. 하지만 간디는 그냥 걸어갔다. 사람들은 때리면 두드려 맞으면서도 그냥 갔다. 자신들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가하면 흑인민권운동의 서막을 알린 몽고메리 버스투쟁은 어떤가.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는 흑인이 버스에 타는 경우 좌석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가 있었다. 심지어 만석이 되어 자리가 모자라면 흑인이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거부하면 강제 하차 당했다. 1955년 3월 2일, 당시 15살이었던 클로뎃 콜빈이 백인 남자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항의로 로자 파크스는 조례를 거부하는 직접행동에 들어간다. 이 단순한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동참으로 이어졌고 흑인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그 조례는 폐지되었다.
‘비폭력=합법=국가가 정해 놓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란 등식이 대단히 잘못되었다. 이것은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나 검찰, 경찰 등이 설정해놓은 프레임이다. 광우병 촛불집회 초반을 떠올려보라. 저들이 불법이라 말하고 잡아가면 닭장투어라 조롱하면서 기꺼이 잡혀가던 그 용기가 정당성을 키웠고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비폭력 투쟁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더 좋은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온 결과물이며 대부분 다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왜 비폭력을 주장하는가
우리가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서다. 모든 싸움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즉 이기기 위해 비폭력을 고민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정서, 언론과 경찰의 공격 등을 고려해 효과적인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지 권력자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이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으려 비폭력을 고민하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차벽도 넘을 수 있고 파업도 할 수 있고 점거나 봉쇄도 할 수 있다. 비폭력 저항은 권력자들이 말하는 질서유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경찰병력을 물리력으로 이기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인지가 의심스럽고 그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 차벽을 넘어가는 건 전혀 폭력이 아니다. 강제집행 들어오는데 스크럼 짜고 버티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 백만 명이 모여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싸울 필요는 없다. 방식이 다양해질수록 권력자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우리는 경험을 늘려가며 무엇이 효율적인지 판단하면 된다. 무엇이 효과적인지 토론하면 된다. 이를테면, ‘차벽을 넘어가면 청와대로 갈 수는 있나? 그 과정에서 대부분 연행될 게 뻔한데 그냥 몇 명이서 청와대 앞까지 가면 뭐 할 건가?’ 이런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 그렇게 다수가 연행을 각오하고서라도 왕창 넘어가면 당연히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도 있다. 분노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말릴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방법이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저들이 설정해놓은 선을 넘어가면 폭력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 다음으로 비폭력이 중요한 이유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 주도하는 저항을 하기 위해서다. 80, 90년대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농담처럼 이제 화염병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주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본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이 호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폭력 프레임에 시달려 온 역사 때문에 위축되어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특정한 누군가를 배제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온전히 저항이 시민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직접 판단하고 행동하는 행위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시민들의 저항으로 형성된 공론장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이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비폭력, 평화시위를 다시 생각해보자.
비폭력은 갈등을 감추고 다 좋게 좋게 지내자는 게 아니다. 갈등 해결수단으로 타인에 대한 직접적 폭력을 쓰기보다 다른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가끔 집회를 가보면 경찰들도 똑같은 시민이다. 그들을 비난하지 말자 이러는데.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동등한 시민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백 번 양보해 강제로 끌려간 의경이야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병역거부를 하라고 까지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경찰간부들은? 저 부역자들 누구 하나 양심선언하거나 처벌 받은 경우가 있나? 아이히만도 공무원이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개인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다 불쌍하고 어쩔 수 없다고 봐주면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나? 자발적 부역자와 권력자들은 어떻게 처벌하나? 공권력을 남용하고 시민을 적으로, 범법자로 여기며 권력자 하수인 노릇만 해 온 경찰의 역사가 있다. 개개인에게 증오를 품자는 게 아니고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고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도 평화시위 난리를 치니 꽃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걸 또 의경들이 안됐다고 대신 떼어준다니 이 정도면 강박이다. 권력자를 절대 불편하게 만들 생각 없이 썩은 권력을 도려낼 수는 없다. 잘못된 국가와 시스템에 저항을 하는 것이라면 의경을 걱정해서 스티커를 떼어줄 게 아니라 의경을 시위현장에 내모는 국가 시스템과 경찰 우두머리를 손봐야 한다. 의경에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줘야 한다. 애초에 의경의 역할에 대해 성토해야 하고 최대한 의경이 되지 말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부당한 시스템에 부역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
애초에 고민은 모두가 함께, 이기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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