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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살 먹은 여자가 말하는 노인 이야기] “도대체 왜 그렇게 할배가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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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살 먹은 여자가 말하는 노인 이야기]

“도대체 왜 그렇게 할배가 싫은데?”

[육십 살 먹은 여자가 말하는 노인 이야기.pdf (320.70 KB) 다운받기]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지난 11월 초에 출간된 내 책 ‘할배의 탄생‘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출간 20 여일 만에 2쇄를 찍었다는 소식에 우선 반가웠고, ’도대체 뭐지?‘ 싶기도 했다. ’박근혜 국정농단’으로 축약되는 2016년 11월 대한민국 깔때기 정국에서, 인문사회서적으로 분류되는 ‘가난한 남성노인의 구술생애사’가 잘 팔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11월 19일자 한겨레신문의 2면 짜리 인터뷰 기사 “대한민국 할배들은 왜 꼰대가 되었을까“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0993.html)가 판매부수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탄핵정국 난리판에 ‘할배의 탄생“이 잘 팔리는 이유

 

페이스북 친구들은 정치/문화적으로 유사한 성향이 높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일단 페이스북에 질문을 올렸다. 페친들의 댓글 중 본 글의 주제와 연관된 것들을 정리해 본다. (맞춤법 대강 무시^^)

 

■ 최현숙 : [와중에 자랑질 겸^^] 구술생애사가 많이 팔릴 거란 기대는 안하는데 '할배의 탄생'이 20 여일만에 2쇄를 찍었다네요. 흠;; 이유가 뭘까요? 이 난리판에.....

 

■ A : 트럼프!, 그리고 4%에 대한 궁금증. ㅎㅎ

 

독자로서 답을 구해보자면... 현재 쉬는 중인데... 안식년이라 페이스 북을 쉬는 것도 있지만 페이스 북 담벼락에 보이는 온갖 분석글 꼴을 갖추었으나 분석인지는 모르겠고 뭔가 훈계하는 듯 한 글을 보는 게 피곤하기도 했어요. 근데... 이 피곤함은 제가 지하철에서 만난 독고다이 노친네들에게서 느끼는 피곤함과 그다지 차이가 안 나더라고요. 아마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궁금함이 너도나도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게 제일 간단한 일이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하고 싫고... 그걸 저자님께서 대신해 주시니 감사하고 뭐 그런... ㅋㅋㅋ

 

최현숙 : 근데 내 책을 읽고 나서 이젠 할배들 이야기 좀 참고 들어야겠다고들 하더라구요~~ 편견을 좀 없애게 됐다고들...

 

A : 저도 그런 마음은 들었지만... 실제로 들을 엄두는 여전히 나지 않아요... ㅋㅋㅋㅋ

 

최현숙 : 승질만 죽이면 됨!!!! ㅋㅋ

 

A : 그게 어려워요... 어릴 적부터 버릇없다는 소리를 꾸준히 들으며 늙어온 저로서는... 미션임파서블... ㅠㅠ

 

최현숙 : 난 사람들 내면에 할배에 대한 호기심/궁금증이 이미 있다는 생각. 근데 싫은 마음이 그 궁금증을 덮어버린 거죠. 사실 베이비부머가 65세 되는 내년 이후로는 노인들 숫자나 비율이나 소리들이나 투표율이 훨훨 더 높아진다고. 그 양반들과 잘 해보지 않고는 젊은 세대의 미래가 더 깜깜해지는 거. 지금 박근혜 이것도 문제지만, 초고령사회로 갈수록 노인들의 투표가 넘넘 중요하거든. 그걸 싫다고 귀 닫아버리면 갈수록 깜깜 보수로만 간다고. 그러니 노인들을 쪼끔이라도 왼쪽으로 꼬셔내기 위해서라도 그 양반들 이야기를 잘 들으면서 이해도 좀 하고 소통을 해야 한다는 나의 소신...ㅎ 젊은 사람들 지네가 좀 살만한 세상을 위해서라도 노인들을 만나야지 어쩔 거야?? 그러니 박근혜가 지랄쳐서 노인들 마음까지 돌아서고 있는 요즘이 그 절호의 기회!!!

 

■ B : 배제를 넘어서서 혐오에 가까운 대상화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 같아요. 밀양 행정대집행 때 보면 "평생 1번만 찍더니 꼴좋다~ㅋㅋㅋ" 류 글들이 온라인상에 넘쳐났었거든요. 좀 옹호하는 거 같지만, 해방이후 한 세대 남짓의 시간들은 주체적인 시민이 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봐요. 국민총동원체제였고 가시적 양적 성장이 집단성찰을 가로막았고.....

 

최현숙 : 저도 혐오라고 느껴져요. 그러니 그 양반들은 젊은 것들한테 더 화가 나는 거고. 가난도 문제지만 배우지 조차 못하셨으니 정치적 깨달음의 기회를 갖는 것은 극히 소수만이죠. 저는 빈곤계층의 노인 중 정치적 올바름을 고민하는 분들의 생애사를 좀 써보고 싶어요. 생애의 어떤 맥락 속에서 정치적 /역사적 주체가 될 수 있었는지 세세히 알고 싶어서요...^^

 

 

■ C : 음...일단 개인적으로 요즘 '노인'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최근에 본 영화가 윤여정씨 나오는 '죽여주는 여자'이기도 한데... 그네들이 어떤 삶을 거쳐왔고, 그 삶에서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를 만들었고, 그 상처가 지금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요. 그런데 노인들, 특히 남성 노인들은 대체로 접근하기가 힘든 느낌이에요. 저희 집 같은 경우엔 손주세대뿐만 아니라 그 자녀세대, 그니까 제 부모세대도 그래서, 부모님한테 노인세대의 이야기를 물어봐도 아는 게 없으시거든요. 책을 보니 편견이었던 거 같지만요ㅎㅎ 그런 의미에서 요즘 '5%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옮아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어떤 문제의식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삶이라는 서사를 긴 호흡으로 유연하게 풀어내서 좋았어요ㅋㅋ 재미 포인트도 곳곳에 있어서 막 무겁지도 않고. 그래서 저는 구술사라는 형식을 좋아해요ㅋㅋ 문학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조화시킨 텍스트라는 느낌... 그 느낌을 잘 살린 책이었어요. 삶의 서사가 주욱 흘러가는데, 어떤 부분에 막 일부러 중점을 두지 않아서, 옆에서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듣는 느낌으로...

 

최현숙 : 이젠 노인문제를 국가고 시민이고 특히 젊은이들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요. 삶으로서의 관심도 그렇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관심도 그렇고...

 

C : 세대 간 갈등 뿐 아니라 같은 세대 안에서도 요즘의 예를 들면 '일베한다'같은 말은 하나의 낙인이고, 그 낙인이 찍히면 아무런 말도 안 하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지구 위에 같은 땅 위에 같은 사회 위에 살고 있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동시대인으로서 중요한 시도이고 윤리인 것 같아요

 

최현숙 : 조금 더 잇자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를 확장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고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상대일수록....^^ 제 출발은 호기심인 거 같아요. 윤리는 아마 좀 이후에 붙이는 명분 같구요...헤헤^^

 

 

■ D :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의 부제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 E : 지난번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책 소개할 때 '대한민국 할배들은 왜 꼰대가 되었을까?' 하는 문구가 확 땡기더라구요 내 생각엔 책 독자들이 대부분 여성이고, 중년 여성들이 나이 먹은 꼰대 남자 뇌구조가 진짜 궁금해서 책 사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 ㅋㅋㅋ 즉 녀자들이 가부장인간들이 하도 답답하고 속 터져서 사보는 거 아닐까요? ㅋㅋㅋ

 

최현숙 : 저자로서는, 할배 꼰대 그런 말들이 주인공 노인들한테 안좋게 들릴 거라는 생각에 그 단어가 전면에 나오는 게 좀 걸리기는 했었는데....(책 전해드리면서도 설명을 길게 했다는...ㅎ) 그래도 핵심은 그거라는 생각에 그 단어들 사용을 수긍했걸랑요.

 

■ F : 인간에 대한 이해의 보폭을 넓히겠다는 좋은 마음을 독자들에게서 최선생님이 꺼집어내신 겁니다. 촛불처럼 좋은 사회가 될 꺼라는 조짐 같아 보입니다.

 

최현숙 : '인간에 대한 이해', 맞아요. 저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고, 독자들에게도 그 노인들을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겉모습으로 규정해버리는 것과 다른, 삶의 내력과 내면을. 타인을 이해해야 나도 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같이 잘 살수도 있고. 근데 부자들에게 관심 쏟을 시간은 없으니 읎는 사람들에게만 관심 (이번 생에서는....^^)

 

■ G : 저는 누님 작업의 함의가 이렇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노년층 행태에 관한 문화론적 접근에, 특히 담론 분석식 접근에 대한 염증도 한 요인일 것 같아요. 이 꾸준한 작업, 존경합니다.

 

최현숙 : 학계 쪽이야 담론분석식 접근을 해야겠지. 근데 학계 안에서만 머무니 문제....그걸 잘 해석하고 가공해서 길거리와 골목의 언어로 풀어내줘야 하는데, 늘 그 괴리가 문제...우선 내 재미로 하는 일에 존경씩이나!! ㅋㅋㅋㅋ

 

■ H : 책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는데(할배들이 너무 미워요 ㅠㅠ) 그나마 저자가 중재자의 역할을 해 주어서 참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이 잘 나가는 까닭도 어쩌면 그냥 날 것으로 듣기에는 짜증나지만 귀 기울여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잘 들려주신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선생님의 내공에 감탄하고, 저의 밴댕이 같은 속알딱지가 문득 원망스럽더라고요. 그 내공은 어찌하면 기를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ㅠㅠ)

 

최현숙 : 오호~~ 벌써 다 읽으셨군효. 글쎄.... 제 생각에는 밉지 않고 승질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거리두기를 잘 하는 거라는 생각이에요. 내 감정이나 가치관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를 잘 관찰하여 알아내고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을 앞세우는 거. 저 양반은 대체 왜 저럴까....하는 궁금증....^^ 말씀하신 "이 책이 잘 나가는 까닭도 어쩌면 그냥 날 것으로 듣기에는 짜증나지만 귀 기울여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잘 들려주신 덕"이 아마 제 질문의 중요한 답이겠네요.

 

 

댓글들에 의하면 이 난리통에 책이 좀 팔리는 이유는, 박근혜 덕에 이어 트럼프 덕까지 있다는 거다. 독자들이 노인세대에 대한 이해를 좀 해보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것은, 이 책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2009년 이후 노인돌봄 노동현장에서 밥을 벌며 노인에 관한 기록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노인들의 구술을 근거로, 노인에 통상의 시선에 딴지를 걸고자 한다.

 

노인들도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다.

 

노인을 ‘문제 집단’으로만 보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노년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빈곤과 독거까지 겹친 노인은 불안을 넘어 두려움까지 갖게 한다. 두려움은 혐오의 뒷면이다. 섣부른 동정과 시혜 또한 혐오와 차별의 이면(裏面)이다.

 

남들 보기에 어떤지 몰라도, 혹은 남들 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누구나 제 사는 맛에 산다. 맨날 죽겠다고 하는 사람도, 제 사는 맛이든 이유들이 있어서 안 죽고 사는 거다. 빈곤한 독거노인들도 모두 제 사는 맛과 이유가 있다. 그 맛과 이유는 태어나서 팔구십이 되도록 이어지고 있는 사연과 처지에 연루한다. 지금의 모습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빈곤한 독거노인들은 심지어 전복(顚覆. 뒤집어엎음)적이기까지 하다. 하긴 밀리고 쫓겨난 밑바닥과 바깥에서라면, 생각도 삶도 전복적이지 않을 수 없고, 자유와 해방의 낌새마저 있다. 계속 빌어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훔쳐 먹거나 뺏어먹을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정 안 살고 싶으면 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노인들의 자살과 고독사는 무조건 막기부터 하겠다는 것은, 살아갈 놈들을 위한 면피다.

 

물론 노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의 확대는 절실하다. 하지만 복지는 권리의 문제다. 장애등급, 노인등급 등 온갖 등급을 먹여놓고 보는 정책도 문제지만, 시혜 역시 문제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다.

 

■ 보증금 없는 20만원 달세 쪽방에 사는 86세 여성 독거노인의 목소리

 

(한강 모래사장 위 천막촌에서 살다, 수재민의 집단 이주경로인 광주대단지 천막촌, 봉천동 달동네 하꼬방, 상계동 판자촌을 거쳐, 지금은 마포의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나는 평생 내 손으로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팔자였어. 지금이 외려 젤....... 머랄까...... 그래, 행복해. 그래가지구 인저....…혼자 사는 거는 괜찮아, 속 편하고. 허리 아프네 무릎 아프네 해도 지금이 젤 편해. 쌀 걱정도 안하고, 누가 한 포 갖다 주면 먹고, 식구들 멕일 걱정 가르칠 걱정 없잖아. 옛날에는 저녁 먹고 나면 아침 걱정, 아침 설거지 하면 저녁 걱정. 그걸루 세월을 보낸 거야. 근데 지금은 떨어질만 하면 어디서 주고, 아무 데서도 연락이 없다 싶어서 통장 찍어 보면 안 굶을 만큼은 들어 있더라구. 굶게 생겼는데도 없으면 달라고 하면 되지 멀, 하하하. 아무리 늙구 없이 살아도 무릎하고 틀니만 있으면 살만 해. 어디서 머 먹으러 오라 그러면, 틀니 끼고 나가야 할 거잖아. 무릎 더 망가지면 집으로 가져오라 그러지 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구, 내 꺼 없으면 남의 껄루 살면 돼. 나더러 목소리 크다고 죽은 영감이랑 애들이랑 평생 머라고 했는데, 나는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살아서 맺힌 게 없어, 하하하"

 

폐휴지 모으는 노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자기들 체면 생각해서 제발 좀 하지 말라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폐휴지를 모아 팔 이유와 맛이 그 노인들에게는 있는 거다.

 

■ 그럭저럭 살만하고 아들 며느리랑 같이 사는 82세의 여성노인의 목소리

(누군가 버린 유모차를 주워서, 그걸로 폐휴지를 모으러 다닌다.)

 

“아니 지네가 머 용돈을 제대루 주기를 해 어째? 지네 살기도 바쁘면서. 준다구 하드래도 머 하러 놀아? 죽으면 썩을 몸. 동네 챙피하다구 체면 어쩌구 하매 하두 지랄들을 해서, 깜깜할 때만 나간다니까. 위험한 거도 위험한 거지만, 그러느라고 낮에 가야하는 단골 가게들이 다 끊어졌어. 이르케 가꾸 모아서 손주들 용돈두 주구 할마시들이랑 놀러도 가고 그래. 며느리 병원 입원했을 때도 내가 한 봉투 내밀었고, 아들한테두 가끔 담배 한 보루씩 사주구 그래. 받기들은 잘 하면서 맨날 그만 좀 하라구 난리들이야.”

 

■ 자식네와 따로 살며 폐휴지를 모아 사는 75세 독거 남성노인의 목소리

(이 양반은 마포 독막로 대로에서 만날 때마다 폐휴지로 나온 만화책이나 잡지, 소설책들을 재밌게 읽으면서 ‘니아까’를 끌고 간다. 위험하지 않냐고 물으니, ‘지네가 알아서 피하겠지’ 한다.)

 

난 이거 안하면 못살아. 새끼들 있다고 생활보호(국민기초수급자) 그거는 안된대고, 노인연금 그 이십만원만 하고 새벽에 쓰레질(노인 공공근로) 해서 나오는 이십만원이 다야. 이걸 해야만 방세 내고 병원 가고 하지 안 그러면 택두 없어. 챙피하고 말게 머 있어? 내 몸 움직거려서 먹고 사는 건데. 불쌍하게 볼 것두 없구, 재활용품 값이나 좀 올리라 그래. 나 하는 게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거잖아. 그러면 좀 돈을 올려줘야지. 맨날 나쁜 거 만드는 일에나 돈을 많이 주구 말이야.

 

빈곤한 독거노인을 보고 속이 시끄러우면, 우선 자기 속을 들여다볼 일이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그렇듯 노인들에게도, 섣부른 동정은 혐오나 자기불안에 기인한다. 우리 같이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서, 까놓고 말해 ‘빈곤한 독거노인’은 많은 사람들이 최악이라고 상상하는 자신의 미래다. 늙음과 가난에 대한 동정과 혐오는, 자신의 나이듦과 가난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의 감정이다. 덜 늙은 게 다행이고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하는 욕망들의 자기방어적인 투사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긍심을 견지할 만큼의 물질은 필요하고, 가난은 구조적 문제다. 그렇다면 함께 마련하고 싸울 문제다. 당사자 앞에서는 동정과 시혜를 보이다가, 돌아서서는 자기 가슴을 쓰다듬으며, 냉큼 ‘돈이 최고’라는 결론으로 돌아가 버릴 일이 아니다. 돈이 주인이 아니면(욕망을 벗어났든 욕망이 삭제됐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정상이데올로기? 옳고 그르고 낙인이고 말고를 떠나, 끼고 살 수 없는 상황이다.

 

■ 기초수급자로, 쪽방 건물의 옥탑방에서 사는 79세의 남성독거노인의 목소리.

(3개의 암을 가지고 있고, 40대말 가족과의 단절의 원인인 ‘함께 바람핀 여자’와 계속 연애 중이다.)

 

“불효소송인가 하는 그 방송 봤지? 그거 보니까 아주 재밌더라구, 하하하. 만고에 내가 젤로 속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달라는 놈이 있기를 해, 보채는 년이 있기를 해? 줄 것도 없고 뺏길 것도 없어. 기왕 연락이 끊긴 거, 자식하고도 차라리 안보고 사는 게 신간이 편해. 자식들한테 연락이 오면 수급 짤릴까 봐 오히려 겁난다니까. 없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어. 호적에는 걔네들이 내 밑에 있잖아. '단절’인가 먼가를 증명하라구 해서, 글도 모르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있는 놈들은 있어서 불효소송이니 머니 지랄들이고, 없는 놈들은 없어서 또 부모 자식 간에 멀어지고. 그런 세상이 돼 버렸어.

 

갈수록 노인들이 정치권들을 결정할 거다.

 

아무리 싫어하고 피해봤자 노인들의 수적 비율은 점점 커질 거다. 소위 ‘베이비 부머’의 시작인 6.25 종전(1953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 내후년이면 만 65세가 된다. 지하철이고 공원이고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노인들은 이미 몰려와 있을 거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공짜다.

 

더 중요한 것은, 노인들은 가장 성실한 ‘한 표’라는 거다! 초고령화 사회일수록 노인들의 표가 정치권을 결정한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불길하게 예감되는 ‘박근혜 이후에 또 있을 절망’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노인들을 만나고 이해하고 소통해서 꼬셔야 한다. 노인들 표 때문에 선거는 매번 망하고, 중간 중간 촛불집회만 승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박근혜덕에 노인들도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친구한테 집회가자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노인들도 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4%를 놓고 마저 욕을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노인들과 잘 해볼 일이다.

 

하나 더. 할매는 왜 안 미워하나?

 

노인돌봄현장에서 살면서 보니, 보수 정치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는 할배보다 할매가 더 심하다. 그런데도 여성주의 진영에서조차 ‘보수 할매’ 소리가 안 나오는 것은, 여성노인을 정치적인 주체로 보지 않거나, ‘맞불집회‘ 등 눈에 뜨이는 것만 문제 삼는 태도다.

 

다행히 요즘은 할매들도 기가 막히단다. 어디 가서 혼자 몰래 욕이라도 실컷 하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은 이 난리판에, 독거 할매들과 둘러앉아 ’온갖 년‘을 다 끌어다 붙이며 욕 잔치를 벌렸다. 입에 착착 붙는 할매들의 쌍욕들을 나는 따라만 했을 뿐이다. 여성학자 권김현영도, 육십 넘은 여자들은 ’여성혐오‘니 ’장애인혐오‘니 ’동물혐오‘니 신경 쓰지 말고. 맘대로 욕해도 된단다. 절호의 기회에 함께 욕을 하면서 할매 할배들의 마음을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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