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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3
    [특집] ‘밀양과 핵발전’ 집담회 <밀양과 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특집] ‘밀양과 핵발전’ 집담회 <밀양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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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행사 전 사전모임을 가졌을 때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참을 이야기 나눴었다. 마무리를 하는 지금, 밀양집담회는 저 구호를 채우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란 누구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했는지, 그들이 만난 밀양은 어떤 모습이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이야기 하면서 밀양을 각자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모호하고 추상적일 수 있는 물음을 이야기 손님들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이 과정을 함께 하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음에 심게 된 것 같다. 저 말은 무겁지만 그것에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집담회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다. 1부는 쌍용차해고노동자 문기주님, 기본소득청년네트워크 백희원님, 연분홍치마 김일란님, 녹색당 고이지선님이 밀양과 함께했던 경험과 그것에서의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2부에서는 대안적인 삶에 대해 양미님의 여는 말로 시작해서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마포 민중의 집에서 진행된 집담회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빙 둘러앉은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사회를 맡은 NGA의 나영님이 이야기 손님들에게 어떻게 밀양과 함께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1>

만남

 

 

 

 

문기주

:밀양과 만나게 된 계기는 201245날 대한문에 분양소를 설치하고 그다음에 용산과 강정이 같이 결합해서 천막을 치고, 그리고 조금 더 몇 개월 정도 지나서 밀양 분들이 잠깐 와 주셨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20121220날 제가 평택공장 앞에 송전탑에 올라갔을 때인데 거기에 올라갔을 때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와서 밀양에 대한 설명을 쭉 해주셨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양산이라, 그 밀양과 양산이 가까워서 더 호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철탑 농성 끝나고 나서 밀양 희망버스 다녀오고 한 것 같아요.

:그 때 당시 우리 쌍차의 상황과 똑같이 완전벽과 싸우는 상황이라 연세드신 분들이 실질적인 극한의 투쟁을 해나가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고 가능한 한 밀양을 자주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죠.

 

희원

:밀양이 전체 에너지 이슈랑 관련 되어있는 투쟁지역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전 되게 늦게 서야 가게 되었어요. 10월에 행정대집행 한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희망버스 조직돼서 내려가고 할 때 그 때 SNS로 현장에 계신 분들이 올린 상황사진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견디기가 힘든 이미지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일단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막연하게 갔다가 밀양에 계신 나이가 많은 주민 분들을 만나 뵈었는데 그 분들이 무작정 와줘서 고맙다고 손을 잡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사실 그 말을 다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자꾸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가장 인상적인 게 처음 밀양 갔을 때 밤하늘이 너무 어둡고 깜깜하고 별이 많고 동네 전체가 너무 적막했던 거랑 할머니 주민 분들 눈동자였던 것 같아요.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웃음) 근데 좀 그냥 울분이 진짜 많이 쌓여서 물기가 있는 그런 표정이었어요. 저도 가늠하기 힘들지만 너무 힘드셨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고맙다는 말을 듣는데 너무 역설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전기 문제는 서울 문제이기도 하고 또 에너지 문제는 나중에 되게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 자원문제는 더 큰 큰 이슈가 될 문제기 때문에 청년이슈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 왔는데, 거기 계신 분들이 우리가 싸우는데 와줘서 고맙다고 하니까요. 사실은 우리가 고맙고 죄송하다고 말씀 드려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와서 무얼 할까 생각을 하는데 그 때 마침 서울에서 대책위가 막 꾸려지고 있었어요. 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지만 일단 같이 결합해서 우리 같이 젊은 사람들한테 우리 이슈다. 저기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한테 더 가까운 이슈다하고 설명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어요.

 

일란

:저 역시 밀양에 대해서 가깝게 경험하게 되었던 거2012년 대한문에 쌍차 해고자 분들뿐만 아니라 소위 SKYMJ 라고 해서 강정, 용산, 밀양이 함께 살자 농성촌을 꾸리게 되면서였어요. 같이 있음으로 해서 어떤 의미의 힘들을 생산하고 조금 더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위치와 경험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희망버스 말고 본격적으로 결합을 하게 된 부분들은 아까 이제 잠깐 얘기하셨던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예요. 밀양투쟁 전체 의미를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고 계시는 할매, 할배들의 경험과 생애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활동가 분들이 모여 기록화 작업을 하며 시작됐어요. 그 과정에서 작업 자체를 기록하는 미디어 활동가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고이지선

:제가 지금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예전엔 다른 환경단체에 있었어요. 언제 처음 봤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2006년도에 지금 삼성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가 있잖아요, 그 앞에서 뵈었어요. 당시에도 송전탑이 몇 개의 지역에서 문제가 되었어요. 진도에서도 오셨고 밀양이랑 제주에서도 오셨던 거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아니었는데 같이 지역에서 올라오신다고 하니 환경단체에서는 활동가들이 다 지원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리고 수년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이치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 그분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구나하고 되게 놀랐었어요. 진도 같은 경우는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들었는데, 밀양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그리고 나서 다시 지금 대책위나 주민 분들을 만난 것도 한전 본부 앞이었어요. 20122월 본사 앞에서 농성촌을 차리고 단식농성을 릴레이로 하셨을 때에요.

: 저는 밀양 주민들이 우리 땅의 후쿠시마 주민들처럼 느껴졌어요. 농촌에 사는 여성농민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지점에서 약자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분들이 국가 권력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 대단했고 한편으로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분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왔던 삶의 지혜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고 일단은 그런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뭔가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제가 밀양의 탈핵전도사들한테 전도를 당했다고 소개했는데, 후쿠시마이야기를 알고 있고 핵발전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제 삶에 잘 와 닿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송전탑문제를 보면서 정말 핵발전은 있어서 안되겠구나 많이 느꼈어요. 할머니들은 그걸 되게 잘 아시더라고요. 핵발전 신고리 5,6호 공청회 장소에 가서도 계속 반대활동을 하시는걸 보면서 활동가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아닐까하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네 분의 이야기 손님이 밀양과 함께 하게 된 계기나 모습들이 조금씩 달랐다. 밀양 주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송전탑에 오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만나는 모습이나 밀양에 연대하러 온 청년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는 모습, 농촌마을의 농민이면서 한전 본사 앞 농성촌을 지키는 모습. 밀양 주민들이 오랜 시간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싸워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밀양 투쟁의 주체이자 상징인 할매에 대한 질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호칭이 아니라, 밀양투쟁의 주체로서 할매는 어떤 분들일까. 그 분들의 삶의 경험이 운동을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구술사프로젝트를 기록하고 있는 김일란님에게 순서가 돌아갔다.

 

 

 

할매, “순사는 무서웠고 경찰은 억울하다

 

 

김일란

:투쟁이 진행되는 한가운데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그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가장 떠오르는 질문들 중에 하나 일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은 문기주 지회장님도 무지하게 많이 받으시죠? 해고 전부터 어떤 삶의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계속 투쟁을 하는지, 그 힘이 뭔지 이런 것들이 대개 많이들 궁금하실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대략짐작은 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깊게 다가오기도 하고 알고 있었음직한 이야기조차도 새삼스러운, 그런 게 많죠. 이렇게 이야기 할 정도로 할매들을 곁에서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할매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놀랍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셔서 지금까지 밀양에서 쭉 한평생을 살아오신 할매들에게 장난스럽게 약간 까불면서 옛날의 순사가 무서워요, 지금 경찰이 무서워요?” 하고 물어봤더니 한 할매가 순사는 무서웠고, 경찰은 화가 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 그래서 순사는 왜 무서웠고 경찰은 이제 왜 화가 나는지 다시 여쭤보고 맥락을 따라가 보니 그 감정이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한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자신의 삶을 살아왔을 때 어떤 불행한 일들, 억울하고 힘든 일들을 겪을 때 그것을 팔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떤 할매 같은 경우에는 위안부로 끌려갈까봐 무서워서 급히 결혼을 하셨던 분도 계시고 아니면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이 되게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이었고 여러가지 살면서 겪은 일들이 전부다 개인적이 불행으로 느끼신 거죠. 어떤 할매는 그런 개인적 불행에 대해 삶이 참 어지러웠다, 늘 어지러웠다라고 표현하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경찰은 화가 난이 말의 밑에 있는 감정은 더 이상 어떠한 불행의 일이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는 것, 팔자가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서 되게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는 자각이 깔려있어요. 내가 겪지 않아도 되는 어떤 부당한 일에 저항한다고 자신의 삶을 점차 다르게 바라보시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 박정희 때도 뭔가 국가정책이 있어서, 90년대 초반 같은 경우는 밀양댐이 건설되면서 주민들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때는 그렇게 생각이 안 드셨대. 유달리 송전탑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유달리 송전탑이 그런 것이 아니고 할매가 바뀌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할매가 송전탑 싸움을 하시면서 송전탑에 대한 분노나 억울한 것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또 다르게 보시게 되는 거예. 그래서 경찰하고 싸울 때도 할머니들이 옛날에 시어머니에게 당했던 일들을 막 쏟아내시면서 경찰한테 분노를 터트리시기도 한데요. 경찰하고 막 싸운 다음에 다듬이질 할 때의 느낌 같은 것으로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고. 경찰 멱살 잡으신 다음에 돌아서서 씩 웃으시기도 하세요.

 

 

 

밀양의 힘

 

 

 

김일란

:경찰들이 할매들한테 박카스도 사다주고 그래요. 수고하신다고. 좀 신기한 풍경인데, 늘 경찰들을 만나다 보니까 할매들이 말을 거시는 거예요. 밥은 먹고 여기 서있는 거냐고요. 경찰 중에 직급이 있는 사람은 전근을 가면 사람이 바뀌잖아요, 그럴 때는 잘 가라고 하세요. 새로운 사람 오면 뭐 할라고 왔냐고 하면서 잘해보자는 말씀도 하시고요. 그런 정서는 다른 투쟁현장에서 별로 못 봤던 것 같아요. 할매들의 삶의 경험, 나이든 여성의 삶의 경험에서 기반을 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밀양 싸움이 훨씬 더 서럽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쌍차가 어떤 충돌을 할 때 서럽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때로는 힘과 힘이 부딪히는 느낌이 있어요. 특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쌍차 분들이 또 잘생기기로 유명하고 체격도 되게 좋으세요. 우리 지회장님은 좀 다르시지만(웃음) 덩치들도 좀 있다 보니까 힘과 힘으로 쨍하는 느낌이라면, 할매들과 경찰들은 좀 다른 느낌인데 그것은 할매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경험과 어떤 마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밥을 챙기시는 모습이며 경찰들에게 밥 먹었냐고 하시는 모습도 좀 다른 측면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면서요, 이 아마 구술사 프로젝트도 그런 부분에 주목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년의 나이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계속 의미화하면서 국가에 저항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부당함에 저항한다, 이런 것이 제 마음에 되게 많이 들어오는 모습들이었어요.

:제가 말씀드린 부분들은 한창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싸움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이에요. 할매들이 이 싸움을 자신의 일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그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인 것 같고요. 할매들이 사투리를 쓰시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많지가 않아요. 주민분들이 통역을 해주시기도 해요.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어요. 마치 외국어를 듣는 중에 알아듣는 단어가 있는 것 마냥. 그게 국가 폭력, 자본주의, 핵에너지, 고리원전, 단어들이에요. 나머지는 사투리라서 잘 못 알아들어요. 할매들이 그런 생뚱맞은 단어들로 자신들을 막 말도 안 되게 설명하세요. 근데 논리가 맞다, 안 맞다를 떠나서, 자기의 감정이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시고 그리고 그 언어를 배우려고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말을 배우신다고 할까?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들을 배우시는 모습들이 이 싸움을 지탱하는 여러 힘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이지선

:밀양에 가서 현장을 보기도 하고 서울에서 집회현장도 보고 하면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어요. 밀양 너른 마당이라는 촛불집회를 하고 나서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 사전 준비모임을 할 때, ‘참여하고 싶은 주민들은 다 회의에 오세요라고 얘기했는데 엄청 많은 분들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냥 회의에 참석하는 마을 대표 한 두 명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 둥글게 얘기하는 구조들이 놀라웠거든요. 매일매일 현장 상황들이 바뀌고 급박함에도 불구하고 단체들도 그렇고 많은 조직에서 효율성 때문에 회의를 몇몇 사람들이, 대표자들이 결정하는 구조를 가져가기 쉽잖아요. 그런데 밀양 대책위도 그렇고 주민들의 모습도 별로 그런 것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렇게 둥글게 앉아서 얘기하는 구조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적응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마이크를 가져가야 하는 순간에는 사실 남자들이 얘기가 많아지잖아요. 다 같이 동등하게 얘기할 때는 여성들이 나와서 얘기도 많이 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고 그게 평등한 구조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런 것이 밀양의 힘이 아닐까 싶거든요. 가장 크게 와 닿는 건 그런 의사결정구조인 것 같아요. 진짜 싸움이 최고로 다다를 때 국책사업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협상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런 건 비밀처럼 진행이 돼요. 주민들도 모르고. 어느 순간에 합의안이 발표되면 같이 연대하던 사람만 황당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도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밀양은 그런 구조를 가지기 힘든 싸움이 아닐까 싶어요. 마을별로 합의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상황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그것과 다르게 전반적으로 주민들이 송전탑에 대한 견고하게 가지고 있는 마음이나 태도, 입장들은 한순간에 바뀌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해요.

 

영화 <밀양>에서 한 할매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강하다고 하는데 엄마 다음이 할매이니 할매는 더 강하다나는 이 말이 모성이란 단어가 포괄할 수 없는 오랜 세월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할매들은 스스로를 현재 속에서 의미화하며 투쟁과 삶이 별개가 아님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삶의 자세가 존경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할매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밀양투쟁 자체 역시 다르게 만들고 있었다. 사전모임 때 김일란님이 말씀해주신 이야기도 덧붙여 보면, 경찰과 한전 사람들을 비롯한 주변의 안녕을 걱정하는 할매들의 마음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대립 그 자체를 무너뜨리기도 하며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이 된다고 한다. 밀양에서 할매들은 단지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상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주체이자 밀양투쟁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고이지선님의 말처럼 밀양의 힘은 이런 할매들과, 밀양 주민들의 지지 않는 견고한 마음일 것이다.

마침 집담회 자리에 구술사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희정님이 함께 하고 계셨는데 밀양 주민들이 이 싸움에서 지키고자 하는 땅의 의미에 대해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희정

:밀양이 하나의 덩어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지역도 넓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고 투쟁 상황, 진행 정도 이런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느낀 상황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다양해요. 그 부분을 이해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재산권 침해라는 부분, 그러니까 땅을 빼앗긴다는 것이 단지 어떤 재산, 돈의 침해가 아니에요. 주민분들이 가지고 있는 땅에 대한 의미라는 것도 굉장히 다양해요. 그 땅이라는 것은 내가 건강하게 죽는 날까지 살아가야 하는 땅이기도 하지만, 외지에 있는 손자손녀들이 놀러왔을 때 같이 여기가 어떤 놀이터가 되어줄 수 있는 땅이기도 하고, 뭔가 자식들한테 금전적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팔아서 보태줘야 하는 땅이기도 하고, 그 의미들이 굉장히 다양해요. 또 어떤 분들의 경우에는 정말로 몸이 아파서 쉬러온 땅이기도 하고 외지에서 쉬러 와가지고 여기서 온갖 고생들을 겪을 때 강에 가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이라면 추억일수도 있고 역사들이 얽혀있는 땅이거든요. 재산권을 뺏긴다고 할 때 그 권리의 뺏김이라는 것이 복잡한 다층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걸 알면 좋을 것 같아요.

 

땅을 개발의 터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추억이고 역사고 삶일 수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인 것일까. 그들은 땅, 마을, . 주민들이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주변의 모든 것들에 깃든 시간성과 역사성을 개발의 이름으로 쉽게 밀어버리고 부정한다.

땅을 침범당하고 박탈당하는 주민들의 절박함을 상상해본다. 아래의 일란님과 문기주님의 대화는 2부 때 나왔던 것이지만 밀양 주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의 고통을 다 표현했음에도 듣지도 보지도 않을 때, 오히려 입을 틀어 막힐 때의 억울함이란 것을 상상해보지만 그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억울함

 

 

 

김일란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극단의 경험들을 하잖아요. 극단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되게 절대적이죠. 자신의 인생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송전탑싸움을 볼 때 굉장히 끔찍한 상상들을 하시는 것을 봐요. 힐링캠프에도 가셨던 분들인데, 101번인가? 지금 막 송전탑이 들어서려고 하는 곳의 움막 안에 사슬을 다 묶어 놓으신 거예요. 움막 기둥에 쇠사슬과 허리를 보호할 때 쓰는 두꺼운 벨트들을 다 묶어 놓으셨어요. 장난으로 까불면서 이거 뭐예요?’ 물었어요. 용역이나 경찰이 들어오면 각자 쇠사슬로 몸을 묶으시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 상상을 더해서 벨트를 목에다가 묶으실 예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끌어낼 때 두꺼운 벨트를 목을 묶었기 때문에 자르기가 굉장히 힘들고, 도구를 사용할 때 위험하게 만들어서 저지를 할 요량으로 묶으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늘 죽음의 끝까지, 그 끝까지를 상상하시면서 움막을 지키시는데 그런 것은 우리가 한진 희망버스를 타고 김지도가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그리고 지회장님이 철탑에 올라가셨을 때도 마찬가지로 본 것 같아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상황마다 달라요. 그렇지만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시고 극단을 상상하시면서 싸우는걸 보면 무거운 마음이 든다이건 뭐 너무 그렇고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거워지는데, 어떤 과정으로 거기까지 감정이 갈까 생각해 보게 돼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쭉 이렇게 쌓이면서 거기까지 상상하시는 거잖아요. 그것을 대비하면서까지 싸움을 이겨야겠다는 마음,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잘 와 닿지도 않는 그 이긴다’, ‘해내야 한다라는 것을 어디까지 상상하시는 걸. 어디까지 상상하는 지는 조금은 알겠는데, 어떤 마음이 거기까지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소위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표현으로도 다 표현이 안 되는 그 목숨을 걸고 올라가시게 될까. 그 마음을 항상 갖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힐링캠프를 갔을 때 터뜨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은 잘 상상도 안 되고 (문기주님께) 받아주세요 빨리 (웃음) 마무리를 못하겠어요. 지금.

 

문기주

:모르겠어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나의 불편함, 내가 겪는 고통을 다 얘기했고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달라고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통만 가중되고 또는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니까 더 이상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 24명의 죽음 중에서 반 이상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다 그런 생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의 억울함을 명확하게 다 얘기해줬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러냐하고 그냥 말아버리면,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줘야 되는지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이런 것들이 필요한데 그러냐? 너 힘들겠다.’ 또는 쌩까고 모른체 해버리면, 이 사람은 자기가 할 것을 다 했는데 그런 상황이오면 나의 억울함을 죽음으로 풀든, 나와 똑같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부의 큰 흐름 하나가 지나가고 밀양과 나라는 주제에 조금 더 근접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삶과 밀양을 연결하면서 생긴 고민들과 밀양과의 연대의 경험이 던진 문제의식을 어떻게 자신의 세계와 운동에서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먼저 문기주님이 이야기를 이어주셨다.

 

 

 

밀양과 나

 

 

 

문기주

: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환경이나 탈핵 이런 것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요. 나름대로 산이 좋아서 산에 갔을 때 가능한 한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낚시가 좋아서 낚시 갔을 때도 그렇고요. 91년도에 양산으로 강제 전보로 당해서 양산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거기서 바다낚시를 배워서 동해에서 낚시를 했어요. 고리 원전과 제가 살고 잇는 곳이 직선거리로 30미터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리원전 터지면 직방으로 작살나는 곳이고, 일본과 연결된 지진단층이 양산을 통해서 가요. 고리를 비켜서 지진단층이 쭉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진 이런 게 있을 때 마다 양산단층을 TV에서 억수로 많이 보여주잖아요, 내가 많이 위험한 곳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죠. 고리원전자체가 터지면 양산뿐만 아니라 울산, 부산 다 포함되는 위치에요.

:기존에 있던 원전들을 냉각하기 위해서 계속 바닷물을 끌어와 쓰잖아요. 바로 그 옆에가 울산 석유 화학단지고요. 거기도 마찬가지로 냉각시키기 위해서 바닷물을 순환시키는데, 그 두 군데는 낚시하려 가보면 기형고기들이 많아요. 또 겨울인데도 여름고기가 잡혀요 항상 물이 따뜻하니까. 밀양에 대해서 희망버스도 타고 여러 가지 나름대로 알아보니까 지금 있는 고리 원전만 가지고도 충분히 전기를 송전도 가능하고 우리나라에 생산하고 있는 전체 전기량을 생산하고도 남는다고 해요. 이것이 과부화가 걸리는 것이 여름인데,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전자공장, 삼성전자등 대규모 전자공장, 그다음에 자동차 석유화학단지 등 큰 데가 전기를 너무 많이 가져다 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서민들이 보는 거예요. 서울 같은 경우 네온사인 등이 너무 강렬해서 하늘에 별도 안 보이는 이런 상황이죠. 이런 것들에 대한 규제 없이 전기를 더 보내려고 하니까 문제에요. 물론 뭐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팔아먹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기를 더 많이 보내는 이유는 그런 거걸랑. 유성이 얘기했듯이 밤에는 잠 좀 자자’, ‘야간에 일 그만하고 주간연속 2교대만 하자고 하면 전기가 그만큼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죠. 사실 만들지는 않고 정비만 하는 사람인데(웃음) 밀양하고 뭔 상관이 있을까? 이런 말이 영화에서도 나와요. 해고 복직 판결났으니 복직이나 하면 되는데, 밀양 가서 싸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데 거기서 얘기했던 것이 억울하니까 그런다, 억울해서에요. ‘나도 억울하고 밀양 사람들도 억울하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였어요. ‘내가 밀양이다는 말을 저는 우리가 국가의 피해자들이다라고 다시 번역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요. 똑같은 자본과 정권에 의해서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같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서 싸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연대하러 가는 것이 아니겠냐고 정리하고 싶네요.

 

백희원

:제가 활동하는 단체가 기본소득청년네트워크인데요. 밀양에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건 굉장히 쉬워요. 우리가 미래세대이고 에너지가 미래세대의 문제고요, 기본소득이 소비적인 삶과 결합할 때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비적이지 않은 방식, 에너지 분배와 관리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시스템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뚜렷하게 있었어요. 밀양 이슈가 전체 국가 에너지 사업문제랑 원전 수출과 다 엮여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밀양에 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저희한테도 밀양이 어떤 반가운 손님같은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반가운 손님이었는데(웃음) 밀양에 가서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되지? 지금 당장 여기서 투쟁이 막 벌어지고 있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또 나오는 전쟁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여기부터 완전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거예요.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 하면 막막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되기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밀양에 함께했던 것이 내가 있는 자리로 돌아 왔을 때 어떤 식으로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방향을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뚜렷하게 서사화 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하는 얘기가 절망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기만적인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지만 결국 저희의 입장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 같아요. 휘양찬란한 네온사인, 편안한 아이폰 대신 다시 호롱불을 쓰자고 말하진 않겠지만 전기가 아닌 다른 쪽으로 가는 삶도 멋있고 그것도 미래에, 창조경제 좋아하시는 분들 식으로 말하자면 비전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해요. 젊은이들이 집을 나갈 때 2, 3만원 짜리 가구로 방을 채워요. 그게 아니라 10, 20년 쓸 수 있는 가구들을 내 힘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어떠할까, 사회 전체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과 내 삶의 방식을 장기적으로 꾸려 나가는 것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방향전환이 되었고 관련 활동들을 좀 더 기획을 하고 있어요.

 

고이지선

:아까 문기주 지회장님도 얘기하셨지만, 실제 핵발전소를 본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송전탑도 밀양 때문에 많이 알려졌지 매일매일 지나면서도 그게 어떤 존재인지 몰랐던 것이잖아요. 밀양주민을 통해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삶이 있다는 것이 환기됐어요. 우리가 밀양이다라는 구호에서 주민들의 역할은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밀양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진짜 화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그게 뭘까?’라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가해자라서, 공범이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쓰고 주민들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의 공범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이 연대를 한 사람으로서 라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분들은 밀양의 손을 잡았는데 그러면 이 시스템을 없애기 위한 우리의 액션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지원이 되게 필요하고 밀양에 가는 것이 분명 필요하죠. 하지만 이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서 해체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게 뭘까 이런 고민들이 계속 드는 것 같아요.

핵발전소의 반대말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유기농이라는 얘기들을 하거든요. 인공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핵발전은 운영될 수가 없으니 그런 삶이 아닌 것은 유기농이라는 거죠. 땅과 같이 하는 삶을 지향하는 게 사실 밀양할머니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탈핵전도사라는 건, 핵발전소 얘기를 해서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핵발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고 우리도 화답할 때가 되었는데, 그게 삶으로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해요. 2부에서도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나눈다고 했잖아요. 이런 얘기들이 풍성하게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자리가 있고 구술사프로젝트가 있는 것이 무척 좋아요 기대되고. 풍성한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게 밀양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힘을 가진 운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밀양의 문제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당위적으로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야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밀양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는 너무 쉽게 스스로를 수혜자 혹은 가해자의 위치에 세운다.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민이라는 게 이유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전기의 사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밀양을 둘러싸고 작동하는 구조를 세밀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

밀양의 문제가 내 문제인 이유는 전기를 많이 쓰는 수혜자이거나 도시에 사는 주민이라는 이유를 넘어, 밀양의 문제를 만든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속에서 나는 어떤 위치라도 될 수 있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람이거나 저항하는 사람,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밀양 주민들은 역할을 다했다’, ‘우리에겐 숙제가 남았다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왠지 침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2부는 어떤 실천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에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고 계신 양미님의 이야기로 2부가 시작됐다.

 

 

 

 

 

<2>

 고민은 거대하지만 실천은 구체적으로

 

 

 

 

양미

:저는 일반 직장생활을 오래 했었고, 여성노동운동을 했었고 지역비정규노동 운동을 한 경력이 있고요. 지금은 그런 활동들을 굳이 이름붙이지 않고 내가 마음가는대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밀양과 나를 생각했을 때 혹은 어떤 투쟁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와 닿는 지점이 있어요. 그 지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에 따라 다른 스위치일 것 같은데 건드려지는 부분에 따라서 느껴지는 바도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스위치로 작용했던 부분이 추방, 혹은 수탈, 희생양 이런 것들이었어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끊임없이 수탈이 되는 과정이기도 했었고 추방의 과정이기도 했어요. 그것이 투쟁으로 가장 크게 보여지는 것이 지금의 밀양, 강정, 쌍차, 용산이기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김일란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당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했어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보자해서 시작했던 것이 비정규노동자의 싸움에 연대하는 것이었고 2007~2008년까지 있었던 이랜드 홈에버 투쟁에 지원 대책위 활동이 그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나서 남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고민을 저에게 남겼는데 이렇게 열심히 쌔빠지게 싸워가지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싸움의 궁극적인 이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싸운다는 것 자체도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보통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 분노부터 느끼기보다는 공포부터 느끼지 않나요?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접했을 때 저는 공포들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스템으로 이것을 완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사회가 나에게 사실은 콕 집어서 양미 너는 이렇게 부당하게 당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인 거죠.

그런 공포에 부딪칠 때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잇을 것 같은데, 하나는 순응이라는 이름으로 운명이나 팔자로 보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부당하기 때문에 분노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싸움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있어요. ‘가장 먼저는 저항이긴 한데 그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는 방식자체가 저항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나와 같이 희생양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추방자를 계속 만들어내는 이 시스템을 극복하지는 못하겠지만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이런 고민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고민은 거대하지만 실천은 구체적이잖아요.(웃음)

자본주의가 이전 사회와 다른 점은 필요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죠. 소비하라고 계속 재촉을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산자로서의 정체성, 창조자로서의 정체성 이런 것들을 버리고 소비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그리고 소비자 외에는 자신을 상품화할 것을 요구하는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필요한 것을 원하는 만큼만 생산하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생활 시스템을 스스로 최대한 구축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옷을 만들어 입어야겠다 싶어서 아는 지인을 통해서 옷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어요. 우리가 전문가를 요구하는 이유는 전문가로써 나를 어필해야지 다른 사람이 그것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궁극적으로 제가 만들어서 제가 쓰는 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질은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간단하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방법을 추구해요. 제가 아토피가 있어서 천연화장품이나 비누를 만들어 쓰거든요? 비염이 있어서 비염연고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고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이런 식으로 노트도 재활용해서 만들어 쓴다거나 옷을 만들고 남은 원단을 가지고 간단한 소품 같은 것들을 만들거나 해요.

함부로 대량으로 만들어서 대량으로 소비하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그러면서 나를 대상화하고 수단화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대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만 있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실천하는 것에서 다른 것이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보니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내가 갖는 지향점에 대해 위배 되는 부분이 많은 거예. 이를테면 순환할 수 없는 시스템인거죠.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쓰레기를 생산을 해내야하는, 다른 것은 생산하지 않고 쓰레기만 생산해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도시가 땅이 없잖아요. 뭔가를 재배할 수 있는 땅이 없고 그러다보니 순환 구조에서 자꾸만 빗겨나가게 되는 그런 구조여서, 그런 구조에서 살지 않으려면 일단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귀촌, 귀농한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유랑생활을 하려고 준비 중이고요

도시라는 공간이 저 같은 개인에게는 자유롭기도 하거든요. 왜냐하면 관계가 주는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여성에게 요구되는 돌봄이라든지, 나이를 몇 살에 먹었든 간에 상관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치권력이 생기는 문제들이 계속 있고, 나의 타자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나 이런 것들이 공동체 안에서 계속 부딪히는 걸 발견해요. 때문에 대뜸 시골에 정착해서 살아야겠다고 하기엔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저에게 맞는 방식, 적응하기 좋은 장소를 찾을 때 까지 일단 유랑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르고 대안적인 삶

 

 

 

문기주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본에 대해 길들여진 세월이 많은데 밀양이든 강정이든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가든 돈이 없으면 생활하기가 불가능하죠. 자급자족도 불가능한 것이 땅이 있다고 한들 씨앗을 사야할 뿐더러 거름이나 비료를 안주면 키울 수 없는 조건이 있잖아요. 결국은 돈 때문에 다시 또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거나 아니면 내가 돈이 풍부하거나 이래야하는데 과연 그게(양미님의 실천) 가능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백희원

:질문을 하려는 건 아니고 저도 말을 보태면, 자급자족을 삶에 들이고 자립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할 때 늘 같이 고민해야하는 지점이 자립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자립하면서 고립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아까 내가 만든 가구로 집을 채우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 집을 채울 수 있는 가구를 만든다면 나에게 좋은 옷을 만들어줄 친구라든지, 나와 함께 교육적인 관계를 맺을 친구라든지, 그런 고립되지 않는 자립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게 중요한 문제일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다가 저희단체에서 화두로 삼는 것이 개인과 공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을 것인가 하는 거예요. 여기서 개인은 사람들이 개인적이야, 파편화 되었어할 때의 그 개인이 아니라 정말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로서의 개인이에요. 그런 개인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나 과계에 있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고 책임을 지는 바가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주장하지 말고 사회에 저거하자이런 뜻이 아니에요. 사실은 이미 사회가 개인들을 그렇게 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고, 개인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시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보상금을 달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다는 식으로 국가가 말해버리는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 그래 보이지 않더라도 앞으로 사회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이 결국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기본소득 운동에 있어서도 우리가 생존 가능한 만큼의 돈을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돈을 주면 생기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에게 기여하는 삶으로 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게 자본주의적인 소비방식과 분리되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네온사인대신에 LED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상상해보는 그런 이야기들과 실천이 모이면 좋겠어요.

 

 

양미

:제가 이 실천을 하면서 제일 먼저,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숙제이면서 잃어버리자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원칙이, 개인을 생각하는 공동체라는 거예요. 자본주의 이전사회라고 해서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그때는 다만 돈 자체가 교환의 매개물로만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화폐와는 다른 개념이거든요. 저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걸 돈 없이 살겠다는 것처럼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것은 다른 문제에요.

또 한 가지는 이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에서 특히 저같이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에게, 연고가 없는 여자들에게 굉장히 잔인한 곳이었다는 것을 저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경험했는데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에요. 그런 사회에서 도시화라는 것은 어떤 판타지적인 공간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자본주의가 진보라는 이름과 평등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도시화와 함께 묶여서 이야기가 됐던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있었던 그런 모양의 공동체, 우리가 도망 왔던 탈출했던 그런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자는 방식으로는 저는 아유 싫어요이럴 것 같아요. 개인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전에 탈출해왔던 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대안으로서의 공동체, 그 안에서 내가 소수자가, 약자가 외면 받거나 약탈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곳을 어떻게 상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보고요

이 실천을 시작하고 나서 뼈저리게 느끼는 건데, 다들 이렇게 가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늘 파시즘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사회에서 살다보니까 또한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쉬운 선택을 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들이 계신 거예. 그런데 저도 밀양이나 강정이나 비정규직 투쟁을 하시거나 해고 싸움을 하는 분들만큼 제 삶을 걸고 치열하게 하고 있는 실천이거든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 절 밀어내고,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또 은연중에 어떤 말씀을 하면서 저를 밀어내는 경험을 늘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실천들을 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나의 이 고립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혹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이것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투항을 하게 되면 병행을 하겠죠. 돈을 벌면서 할 텐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어요. 나름 치열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고 저는 사실은 항변을 하고 싶어요.

 

자본주의는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구분 짓고 획일화한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폭력이 가해지는데 밀양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가 개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는 바를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백희원님의 말이 와 닿았. 양미님과 백희원님이 가치에 대해 말을 이었다.

 

 

 

무엇을 가치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양미

:옛날에 새만금 옆을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새만금 싸우고 있는 저기 사람들 다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 그때 화를 못 냈던 게 아직 마음에 남아있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저렇게 악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 그리고 밀양도 마찬가지고 해고싸움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자영업자분들이 수탈되고 쫓겨날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의 기준은 거기에 있는 사람이 쫓겨나는,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다고 하는 자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삶의 어떤 것들을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다 대체 가능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면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백희원

: 그 싸움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돈을 어떻게 볼 것이고 무엇을 가치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요. 밀양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가치나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팔기위해서 신고리 원전을 세워야 해서 밀양에 송전탑이 지나가야 되고 증명을 해야 하고 그런 연결이 있었죠. 반면에 원전수주 뉴스가 되게 자랑스럽게 터졌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원전 수출국이라는 걸 사실 좀 민망해해야하는 분위기, 가치관이 생기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밀양의 문제를 어떻게 우리 삶으로 끌어와 실천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양미님의 저항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개인을 생각하는 공동체, 사회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게 했다. 이 개인은 능동적 주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동시에 사회적 개인일 것이다. 구체적인 사회적 지점에 뿌리를 두고 존재하는 개인들.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란 어떻게 가능할까. 문기주님과 일란님은 연결발견이란 단어로 이를 설명했다.

 

 

 

연결과 발견

 

 

 

문기주

: 전반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우리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내가 이 나이 먹고 살면서도. 귀족노동자라고 하는데 20년 해도 연봉 4500밖에 안 되는데 그것은 많다고 볼 수 없는 거. 내 노동력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되냐, 나는 반문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각 분야별 산업별 다 연결고리로 되어있는 거거든요. 사회구성이라는 것은 각각 흩어져있지만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굴러갈 수밖에 없는 거라는 거죠.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고민들을 해야 해. 이것들이 선행이 되면 실질적으로 밀양 같은 문제가 생길 일이 없고, 쌍차 같은 문제가 생길일 없다고 생각해요. 자본의 속물근성이 이윤추구에만 있기 때문에 무조건 힘으로 억누르려고 하고 과잉생산과 지역감정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교육들이 필요한 것이고 우리들 각자 내면적 삶 속에 내가 중심이고 내가 우선일 수 있지만 양옆을 보고 같이 살아 갈 수 있는 방안들이 뭔지 이것을 고민하는 그런 것들이 심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란

:양미님이 나도 나의 삶을 걸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정말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 안에 어떠한 실천들은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누군가 알아줄만하지 않고 어디 가서 자신 있게 말할 만큼은 아니라도 할지라도 작은 부분에서 실천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에 연분홍치마 활동가 중에 지우라는 활동가가, 쌍차해고노동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해고라는 삶에 젖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의 그 말 자체에도 탄복했고 해고노동자들 투쟁의 모습 속에서 가치 있는 어떤 모습을 발견해낸 그 마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자신의 삶에 젖어들기 쉽잖아요, 그런데 젖어들지 않으려는 작은 지점들에 대해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죠. 제가 카메라를 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타인의 실천을 발견해주는 것도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어떤 긴장을 가지고 노력하는지 해석하거나 발견하거나 의미를 찾아주는 것들 있잖아요. 그러면 좀 덜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양미님의 삶을 걸고라고 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절박함이나 서운함이나 왜 내 뜻을 잘 전달받지 못하지?’하는 부분이요. 저는 아무래도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기록하거나 뭐 하는 직업적인 혹은 활동적인 측면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있을 때 그게 성에 차서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미를 북돋아 주는 것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자신의 삶을 공동체와 계속 연결시켜 가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측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양미님의 자신의 삶을 걸고라는 말에 꽂혀가지고 하게 되었어요. 왜 그 말이 저에게 쑥 들어왔는지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뭐 나도 그런걸 하고 있어라는 제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거겠죠(웃음) 얼굴도 빨개지네. 어쨌든 그러한 시선, 타인의 삶에서 발견하는 시선이나 아까 희원님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물건을 만드는 것같이 생활의 그런 것을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의미를 같이 채워주는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출판노동자 계영

:문기주님이 말씀하신 나는 남한테 얘기할거 다하고 할 말을 다 했는데 아무도 안 들어주고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비난할 때는 정말 끝까지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 뿌리 뽑히는 경험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에서든 해고든 많은 싸움들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책을 한번 언급하려고 합니다.(웃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피해 생존자 직업이 선생님이라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나중에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을 때는 나를 땅에 던져놓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저만 책을 읽으면서 화내고 넘어갔는데, 처음에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가 너무 공포스럽고 그 순간에 생각나는 다른 사람이 없고 그때 조직이 힘든 때라 외부에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같이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그나마 SOS를 했는데 그 사람이 와서 했다는 말이, 거실에서 자는 가해자를 보고 어 자네 나도 자야지라는 거예요. 최근에 인권운동사랑방에서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 했을 때 성차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는지 그 사람을 이해 해보려고 노력을 하는 거예. 사람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이나 합리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 거. 혹시 그 사람이 너무 많이 취해있었거나? 피곤했나? 하는데 이미 불합리한 일이 터졌을 때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잖아. 그때 제가 비유를 이렇게 했는데 지금 누가 우리 집에 침범해서 칼로 나를 찔렀어라고 얘기를 했을 때도 과연 똑같이 택시를 타고 달려온 사람이 가해자가 지금은 안 찌르고 있으니까 나도 자야지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바꾸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생각 드는 게 자본주의가 내면화되고 뿌리 깊게 내린 공포심이라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 것 같아요. 좀비나 로봇처럼 프로그래밍된 것에 성찰 없,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휘둘려서 상처를 주는 것도 있지만 내가 분명 종속되어있는데 내가 종속되어 있는 수많은 것을 내가 보기도 두렵고 인정하기도 두렵고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아빠는 여전히 조선일보밖에 안 봐요. 제가 본가에 안 살아서 망정이지 살았으면 집안이 맨날 전쟁 나고 (웃음) 맨날 다른 거는 읽지 않으면서 컴퓨터 포맷하고 바이러스 설치하는 것과 똑같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으세요. 본인이 그런 계급이 아님에도 그렇고 뉴스에서 노숙인 나오면 엄청난 혐오감을 표출하며 천박한 욕을 해요. 정확히 거지새끼들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때 저는 너무 상처 받고 더 이야기 못한 게 억울하고 화나기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빠에게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거예요. 본인이 가난하게 살고 하루하루 걱정했지만 자기는 열심히 살아서 저 사람처럼 안 된다는 식의 사고를 해요.

:각자의 조건과 계급과 경험과 문화적 차이와 여러 가지 서로 처한 다른 조건을 넘어서 대등한 친구가 되는 게 가능할까? 이런 게 계속 고민이거든요. 생각할 시간이 많이 없는 사람도 있고 방식이 다를 때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나영

:밀양과 나라는 주제로 시작을 했지만 얘기를 하다보니까 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렇게 좀 정리가 되는 그런 것 같아요. 오늘 나온 이야기들은 처음에 기획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거든요. 밀양과 에너지 문제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고민을 할 때 생태적인 삶, 텃밭을 가꾸고, 에너지 소비를 적게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그런데 그런 실천들만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노동과 실천의 의미들을 서로 찾아서 같이 연결하고 그리고 그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보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었어요. 사실은 정보를 마주하는 차이도 너무 크잖아요. 트위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은 굉장히 다른데 그러면 우리가 실천하는 새로운 삶, 대안이 우리끼리 하는 삶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닿으려면 또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사실 문기주님이 아까 얘기해주셨던 각각의 영역, 산업이라고 표현을 하셨지만 그게 산업이기도 하고 삶의 영역이기도 할 텐데 그런 것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찾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마무리 멘트를 해주었던 NGA 나영님의 말처럼 집담회는 밀양에서 시작해 , ‘가 있는 사회로, 관계로 이야기 주제를 뻗어나갔다. 여기에는 밀양에 연대해야 하는 구체적 근거나, 부당함이 상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삶의 이야기는 풍부했던 것 같다. 꾸준히 애정을 가져야 보이는 밀양의 이야기가 있었고 거기에서 새로운 밀양의 모습이 보였다. 이 싸움을 함께 하려는 삶의 기획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 계셨던 분들의 실천이 삶의 구조에 대한 변화를 향해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힘을 생성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 그러면서 보이는 것은 밀양을 둘러싼 어떠한 체제였다. 현재의 산업체계는 전기의 대량생산과 소비에 기대어 있고, 이를 위해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농촌 혹은 자연이 끊임없이 개발의 대상으로만 위치지어 진다. 할매들이 일궈온 것과 평생의 노동의 가치는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한다. 국가와 자본이 세우려는 송전탑은 할매와 같이 나이든 여성, 가난한 농민의 삶 위에서 가능하다. 결국 노동, 여성, 농촌, 환경. 등의 의제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밀양에서 응집된다. 나는 연결이라는 단어로 밀양을 본다는 것은 자본주의적이며 가부장체제적이고 인간중심적인 현 체제를 동시적으로 인지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겠다. 밀양을 모르는 사람, 한 번 정도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 서울에서 계속 연대하고 있는 사람, 어떻게 밀양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 등 모두가 이 글을 읽으면 좋겠다. 지금 들려오는 밀양의 소식이 긴박하다. 움막의 강제 철거를 예고했다고 하니 글을 정리하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밀양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가는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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