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의 일상을 나 몰래 낱낱이 촬영을 한다. 촬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편집을 하기로 한다. 어떤 방향을 설정할까? 그 사람은 나의 일상을 썩 좋지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편집해서 극장에서 상영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극장에 앉아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본다. 썩 좋지 않은 일을 중심으로 편집을 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어떤 장점이 있다. 그건 나의 삶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일상이란 그물과 같다. 나는 관계들의 총제이기에 나는 관계의 그물을 타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닌다. 관계를 계열화한다면 하루를 어느 정도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크게는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로 나누고, 좋은 일들에서 또 아주 좋은 것과 적당하게 좋은 것을 나누고 또 이것을 더 세분할 수도 있겠다. 나눔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인과적인 서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면 드라마와 다를 것도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함께 있다 떠나면 그리운 법이다.
그립다는 말에는 옅은 안개처럼 사물을 덮고 경계를 식별하기 어려운 모호함이 묻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매번 매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불현듯 이 녀석이 생각났다. 아마 냥이의 새끼들이 점점 자라 핑이가 놀던 공장 마당을 뛰어 다니고 그늘에 함께 서로 기대며 누워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어미에게서 떨어져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 핑이.
사람들 사이에서 먹고 자면서 어미를 잃어버린 핑이.
그리고 때가 되어 그냥 슬쩍 떠나 버린 핑이.
박사(博士)는 대학원에서 특정한 전공으로 받는 학위를 말한다. 박사학위를 마치 무슨 열매처럼 '박사학위를 받다'라고 말하기보다 박사학위를 '딴다'고 말한다. 말이야 어떻든 博은 '넓을 박'을 말하는데,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전공 이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전공만 깊이 파고드는 경우가 더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소 읽는 책이 어떻게 하다 보니 전공 관련 책이 아니면 소설 책만 읽는다. 해서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쌓기 위해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전공과 무관한 논문을 읽기로 하고 개시 논문으로 이 논문을 검색해서 찾았다.
<영화의 롱테이크와 상호매체성>. 일단 재미가 없었다. 글은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 논문은 그런 재미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라 비난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이 논문은 특정 목적을 위해 쓴 논문인데, 특히 돈과 관련된 논문, 사실 대학에서 생산하는 모든 논문은 어떤 경우든 돈과 관련이 있다. 전임교수는 연구비를 받고 인사에 반영되기 때문에 쓰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런 논문은 빨리, 급하게 대충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논문을 다 읽고 좀 놀랐다. 논문 투고일이 2019년 1월 29일이고 논문 심사일이 2019년 2월 11일인데 논문 게재 확정일이 2019년 2월 11일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일 심사해서 당일 확정했다는 말이다. 아마 이건 표기상 오류(오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논문을 실은 학회지는 좀 심각하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논문 투고와 심사 확정까지 14일만에 이루어졌다. 거다게 2월 2, 3, 4, 5, 6일은 설날 연휴였다. 이게 한국 대학의 연구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