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인환

일상 2019/07/14 19:28

남풍

거북이처럼 괴로운 세월이
바다에서 올라온다
일찍이 의복을 빼앗긴 토민(土民)
태양 없는 마레
너의 사랑이 백인의 고무원(園)에서
소형(素香)처럼 곱게 시들어졌다
민족의 운명이
크메르 신의 영광과 함께 사는
앙코르와트의 나라
월남 인민군
멀리 이 땅에도 들려오는
너희들의 항쟁의 총소리
가슴 부서질 듯 남풍이 분다
계절이 바뀌면 태풍은 온다
아시아 모든 위도(緯度)
잠든 사람이여
귀를 귀울여라
눈을 뜨면
남방(南方)의 향기가
가난한 가슴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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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19:28 2019/07/14 19:28

강사법 시행이 8월이라 몇몇 대학에서 강사 채용 공고가 났다. 6월 1일 고려대가 제일 먼저 시작했고 7월 초에 서울대가 공고를 냈다. 어제 동료 한 분이 부산에서 동아대가 채용 공고를 냈다고 알려 주어 한 번 들어가서 살펴봤다.

<강사 공채 인터넷접수 설명서>를 보니 가관이다.
연구실적과 강의계획서 외에
병역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가족사항을 입력해야 하고,
학력사항은 고등학교부터 입력한다. (왜 중학교와 초등학교는 없을까?)
최종 학격 후에는 신원증명서와 주민센터에서 발급하는 상세한 기본증명서(아마 주민등록등본보다 더 상세한 주민등록초본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흠 이 정도 요구면 거의 전임교수 채용 수준이다. 그럼 보수는 어떨까 찾아봤다. 임용조건에 이렇게 나와 있다.

"담당 강의시간(강의시간 산정은 본 대학교 지침에 따름)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며, 세부적인 금액은 본 대학교 내규에 따름"

그냥 강의 시수에 따라 강의료를 준다는 말이다. 동아대 강의료는 2018년 기준 1시수에 54,000원이다. 강사는 최소 4-5명이라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실도 없다. 각 단과대에 강사 휴게실이 하나 정도 있다. 썰렁한 공간에 테이블 한 두개 덩그러니 놓여 있고 봉지 커피와 정수기 하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채용 수준은 전임교수 급인데 급여는 강의 시수에 따라 준다.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걸까?

개정 강사법에 따르면 강사는 교원 규정을 받는 교원임에도 <고둥교육법> 14조2의 2항에 따르면 "강사는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및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을 적용할 때에는 교원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2011년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개악안이라 비판하고 강사라는 이름의 무늬만 교원, 반쪽짜리 교원, 시간제 교원 제도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현행 개정 강사법은 그 연장선에 있다. 법에 명시된 방중 임금은 (대학의 방학이 4달임에도) 2주(의 강의료)만 주기로 했단다. 퇴직금도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을 받지 못한다. 승급심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전임교수와 같은 보수와 복지 제도의 혜택도 없다. 당연히 연구실도 없다. 1년 단위로 세 번 채용 절차를 보장 받는다. 3년 연속 고용 보장이 아니다.

개정 강사법에 합의하고 개정 강사법 통과를 위해 국회 앞에서 농성까지 한 노조 관계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많이 불쾌하다. 이 사람들은 강사법으로 인해 강사의 지위가 높아졌으며 신분이 안정되었다면서 이게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되는 양 선전한다. 강사법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시간강사 노예로 살거냐고 따진다. 이거 참 웃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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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9 19:02 2019/06/29 19:02

누군가 나의 일상을 나 몰래 낱낱이 촬영을 한다. 촬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편집을 하기로 한다. 어떤 방향을 설정할까? 그 사람은 나의 일상을 썩 좋지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편집해서 극장에서 상영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극장에 앉아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본다. 썩 좋지 않은 일을 중심으로 편집을 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어떤 장점이 있다. 그건 나의 삶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일상이란 그물과 같다. 나는 관계들의 총제이기에 나는 관계의 그물을 타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닌다. 관계를 계열화한다면 하루를 어느 정도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크게는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로 나누고, 좋은 일들에서 또 아주 좋은 것과 적당하게 좋은 것을 나누고 또 이것을 더 세분할 수도 있겠다. 나눔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인과적인 서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면 드라마와 다를 것도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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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 19:19 2019/06/28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