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서는 안되는 데, 가끔 건망증처럼 잊어버리고 마는 것 열정을 잃지 않고 오직 그 길을 홀로 가야한다는 걸 깨우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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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ひとりぼっち おそれずに
살아가자고 꿈을 꾸었어 いきようと ゆめ みてた
쓸쓸함을 억누르고 さみしさ おしこめて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つよい じぶんを まもっていこ
컨트리 로드 カントリ- ロ-ド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このみち ずっと ゆけば
그 마을로 다다를 것 같은 あの まちに つづいてる
느낌이 들어, 컨트리 로드 きが する カントリ- ロ-ド
걷다 지쳐, 잠시 서 있으면 あるきづかれ たたずむと
떠오르는 고향 마을 うかんでくる ふるさとの まち
언덕을 휘감은 비탈 길 おかを まく さかの みち
그런 나를 꾸짖고 있어 そんな ぼくを しかっている
컨트리 로드 カントリ- ロ-ド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このみち ずっと ゆけば
그 마을로 다다를 것 같은 あの まちに つづいてる
느낌이 들어, 컨트리 로드 きが する カントリ- ロ-ド

아무리 절망적일 때라도 どんな くじけそうな どきだって
결코 눈물은 보이지 말아줘 けっして なみだは みせないで
생각탓인지 발걸음이 빨라져 가네 こころなしが ほちょうが はやく なっていく
추억을 지우기 위해 おもいで けすため
컨트리 로드 カントリ- ロ-ド
이 길이 고향으로 이어져 있어도 このみち ふるさとへ つづいても
난 가지 않아 ぼくは いかないさ
갈 수 없어, 컨트리 로드 いけない カントリ- ロ-ド
컨트리 로드 カントリ- ロ-ド
내일에는 여느 때의 나야 あしたは いつもの ぼくさ
돌아가고 싶어, 돌아갈 수 없어 かえりたい かえれない
안녕, 컨트리 로드 さよなら カントリ- ロ-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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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3:27 2012/01/09 13:27

이거, 제목을 달고 나니 좀 이상해졌습니다. 요즘 알라딘에서 "성"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걸 보고 저도 한 번 동참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어슐러 르귄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마치 신앙인들이 힘들 때 그들의 성서를 펼쳐들둣, 저도 뭔가 안풀이거나 힘들면 가끔(아주~ 가끔)펼쳐 들고 무작정 타이핑을 합니다. "빼앗긴 자들"이라고 번역된 이 책은 사실, "소유하지 않은 자들"(The Dispossessed)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의 한 축인 아나레스(Anarres)에는 성과 종교를 빗댄 욕이 없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 "지옥에나 가라" 등. 사실, 대부분의 욕이 성적 비유나 종교를 빗댄 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없는 아나레스에서 아이들은 대개 사춘기가 되면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집니다. 단지 자제가 권장되긴 하지만요. 얼마나 멋진 곳입니까? 아, 제겐 천국의 다른 이름이군요. 그냥 소설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즐감하시길~


그는 그녀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집적거렸고, 이번에도 그는 간단히 응수했다. 그들은 밤에 평원으로 나갔고, 거기서 그녀는 그에게 살갗의 자유를 선사했다. 그것이 그녀의 선물이었고, 그는 받아들였다. 아나레스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그도 소년 소녀 양쪽과 자유로운 성경험을 나누었지만, 그나 그들이나 어렸다. 그 때 누린 쾌락이 전부라고 여겼고 그 이상의 것은 경험하지 못했다. 베션은 희열의 전문가였다. 그녀는 그를 성행위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원한도 어리석음도 없는 곳, 서로에게 합쳐지기 위해 싸우는 두 개의 육체가 싸우는 순간 자체를 파괴하는 곳, 자아를 넘어서고 시간을 초월하는 곳으로.
이제는 바깥 별빛 아래 따뜻한 먼지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편하고 사랑스러웠다. 낮은 길고 뜨겁고, 밝았으며 먼지에서 나는 냄새는 베션의 살내음 같았다.
...
쉐벡이 쓰는 언어이자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언어에는 성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데 있어 소유적인 관용구가 없었다. 프라어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진다>는 말이 뜻이 통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어휘는 <성교하다>에 가까운 의미였고, 그와 비슷한 두 번째 용례는 <저주>라 할 수 있었고, 특수한 경우에 쓰였다. 바로 <강간>을 의미하는 경우였다. 오직 복수형만을 취하는 보통 동사는 <결합하다>와 같은 중도적인 말로만 번역할 수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뭔가를 의미했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하거나 가지거나 하는 일을 뜻하지 않았다. 이런 언어 구조는 다른 언어만큼이나 경험을 총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고, 쉐벡은 제외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분명치는 않았지만. 분명 그는 더스트에서 별이 빛나던 그 밤들 중 어느 순간에는 베션을 소유했다고 느꼈고, 그녀는 또 자신이 그를 소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 다 틀렸고 감상적이기는 했어도 베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미소지으며 그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보내주었다. 그녀는 그를 소유하지 못했다. 처음 터져나온 성인다운 성적 열정 때문에 사실상 그의 육체가 그를, 그녀를 소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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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3:22 2012/01/09 13:22

나는 한겨레신문을 잘 안 본다. 물론 창간 초기에는 열심히 봤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한겨레신문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바보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어른거리고 몇 년 전부터는 노무현 현 대통령의 심술궂은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들으면 참을 수 없는 짜증으로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피해다닌다. 제발 빨리 신문과 방송에서 사라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겨레 신문을 펼쳐 읽었다. 가끔 이 코너에서 배울게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민중(民衆)이란 그다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인민(人民)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민중이란 단어는 마치 대중(大衆)이란 단어처럼 익명적이고 낯선 무매개적인 사람들, 좀 무리해서 말하자면 어중이떠중이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인민은 김수영의 시 “풀”에서 처럼 바람보다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고립을 깨고 자기의식적인 연대를 통해 뭉친 사람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민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내포와 외연이 일치하는 개념이다.

요즘은 또 다른 단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본다. 다중(多衆)이라는 단어다. 개념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의미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끊임없이 그 내포와 외연을 다듬어가는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개념의 창안이라고 했다지만 그가 사용하는 개념들 중에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단어를 주워 모아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그런 “새로운” 개념은 하나도 없다. 하나의 개념이 역사성을 가지는 것은 개념이 현실에 대한 실천적 반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레카] ‘피카소’와 ‘인민’ / 07. 10. 10

1969년 6월7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크레용 제조업체 삼중화학공업 사장 박진원씨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 회사가 8개월 전 내놓은 크레파스와 그림물감 등의 상표로 프랑스 화가 ‘피카소’의 이름을 쓴 게 문제였다. 공안당국은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고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을 그린 좌익 화가라며, 그 이름을 상표로 쓴 것은 “국외공산 계열에 동조하고, 찬양고무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피카소 크레파스’ 등의 상품 광고를 더는 못하게 하고, 시중에 이미 풀려나간 제품에서도 ‘피카소’란 이름을 모두 지우게 했다. 검찰은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에 ‘피카소’란 별명을 가진 등장인물을 기용한 제작자를 불러 조사하고, 쇼 프로그램에서 “피카소 그림같이 훌륭하다”는 표현을 쓴 사회자를 소환해 ‘의도’를 캐묻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 공안당국은 ‘노동’이나 ‘인민’같은 단어를 쓰는 것도 ‘불온’하게 봤다. ‘노동’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에, ‘인민’은 인민군, 인민공화국에 들어간 단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노동’은 반공을 앞세운 이승만 자유당을 만들면서 애초 그 이름을 ‘노동당’이라고 지으려 했을 만큼 누구나 자연스럽게 쓰던 표현이다. ‘인민’도 조선왕조실록에 ‘국민’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단어로, 영어의 ‘피플’에 가장 잘 맞는 표현이다.
피카소의 이름이나 이런 단어에까지 ‘불온’ 혐의를 씌운 것은 일종의 강박증일텐데, 치유가 참 어려운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주 방북한 길에 서해갑문을 들러보고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썼다. 그러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전유물처럼 돼 버린 용어를 썼다”며 트집잡는 이들이 또 나왔다. 그들은 아마 지금도 ‘피카소’의 이름을 결코 입에 담지 않을 게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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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3:19 2012/01/09 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