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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행진이야기

지난 주 9월 24일 반전시위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에야 씁니다. 이런 저런 상념이 많았던 일주일이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오전에 친구녀석과 같이 샌프란시스코의 돌로레스 공원이란 곳으로 갔었습니다. 11시까지 모이라는 전단을 받았지만, 지리가 어두워 조금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이 돌로레스 공원은 샌프란시스코 도심 경치와 근처의 다리들이 내려다보이는 멋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습니다. 여러단체들이 연합해서 만든 집회라서 그런지 넓은 공원 한쪽에서는 녹색당사람들이 모여서 사전집회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 연단을 마련하여 사전집회를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곳저곳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 반전단체들이 몸에 붙이는 스티커도 나눠주고 있었고, 곧 있을 캘리포니아 특별선거에 대해서 안내 전단을 나눠주는 단체도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피켓이나 치장을 한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떤 사회주의자들의 단체에서는 삼행시 같은 재미있는 피켓도 만들어 왔더라구요.(Bush는 징후, 자본주의는 바로 그 질병, 혁명은 그것에 대한 치료) 2003년 2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반전시위에 참여했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인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그때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행진이라고 하더라구요. 시위나 집회가 잦은 샌프란시스코라서 그런지, 경찰들도 시위자들도 일상다반사처럼 느긋하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특히, 이런 곳에 오면 어디에 있는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급진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신문잡지를 파는 단체와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내용을 설명하고 신문을 팔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The Militant(투사들)"라는 신문을 하나 샀습니다. 미국 곳곳의 파업투쟁소식과 국제정세에 대한 해석들이 있는 그 신문은 특이하게 12면 중 뒷 4면은 스페인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이 신문의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2시간 정도의 사전집회겸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행진은 공원에서 시작해서 Market Street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를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잘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진의 원근점에 있는 곳이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여객항구랍니다(역시 여전히 관광객모드를 버릴 수가 없네요, ^_^;;).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시위자 중 누군가 'What do you want?'하고 외치면 'Peace'라고 답하고 'When do you want peace?'하고 외치면 'Now'라고 화답합니다. 그래서 자세히 듣지 않으면 시위자들이 'Peace Now'라고 크게 외치면서 걷는 것 처럼 보인답니다. 2시간 조금 넘게 걷는 행진이지만, 쉬지않고 정열적으로 라틴음악을 연주하면서 걸어가는 그룹들도 있고, 뒤따라 가면서 춤추며 가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만 하지말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키마스크를 쓴 일련의 집단들도 보이고

가면쓰고 풍자극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샌프란시스코 시청을 빙글 돌아서 근처 언덕에 있는 공원에서 정리집회를 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정리집회에서도 사람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습니다. 이번 시위의 목표는 이라크 전쟁중지-군대철수, 아이티, 필리핀의 민주주의 투쟁 지지, 푸에르토리코 진보주의자들의 투쟁지지등 전세계에서 미군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만행에 대한 고발과 투쟁이었습니다. 연설들을 무척이나 설득력있게 잘하였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굉장히 리듬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예전에 대학집회에서 자주 듣던 웅변 스타일의 사자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10월 중순에 또 한 번의 대규모 반전시위를 주최측에서 예고하는 방송도 있었습니다. 정리집회에서 한 흑인 운동가가 나와서 미국자본의 야만성과 침략전쟁을 비판한 후, 엘고어, 존캐리, 힐러리 등등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민주당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의 이득을 대변하며 세계를 침략하는데, 지금의 공화당집권자들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고 말하니 일순간 환호와 박수, 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정리집회에 앉아있다가, 차를 주차해놓은 출발점의 공원으로 다시 걸어돌아갔습니다. 또 한 번의 반전집회가 끝이 났습니다.

이런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은 말그대로 평화롭게 진행됩니다. 소수의 스키마스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라는 영화를 기억하나요? 리버피닉스가 아직 앳된 모습으로 나오는 그 영화말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반전운동중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지명수배당해서 정처없이 도망다니는 부모의 아들 역할을 했죠. 왜 갑자기 리버피닉스 이야기냐구요? 실제로 평화적인 베트남전 반전시위 와중에 결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부의 운동가들은 그들의 노선을 폭력투쟁으로 바꾸었답니다. 그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가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 'weather underground' 라는 단체입니다. 흑표범당은 반전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흑인들이 맞서고 있는 가난과 차별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광범위한 운동과 자위를 표방하고 나섰고 또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흑표범당은 결국 미국 FBI의 직접적인 살인(시카고 빈민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21살의 Fred Hampton이라는 젊은 운동가는 새벽에 잠을 자다 수십발의 경찰의 총알을 맞고 말그대로 살해 당했습니다)과 프락치투입, 폭력적 진압등으로 붕괴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폭력적 탄압과 베트남에서의 미군의 무자비한 살육이 진행되면서, 전국적 좌파 학생운동단체인 SDC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weathermen이라는 그룹이 weather underground라는 게릴라조직으로 바뀝니다. 위에서 언급한 Fred Hampton의 죽음도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당시 좌파들의 모토는 'bring the war home'이었고, 이들은 말 그대로 이 모토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시위를 다녀온 지 이틀 후에 미국공영방송 PBS의 독립필름을 방영하는 코너(Independent lens)에서 'The weather underground'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이 링크를 따라가면 보이는 웹페이지 오른편 중간쯤 보면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View trailer를 클릭하면 됩니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과 쇠퇴 그리고 자수와 체포로 이어지는 전과정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멤버들의 현재 모습과 인터뷰도 보여주고요. 대부분이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자수를 합니다. 그 중에 결혼한 부부는 이곳저곳 떠돌아나디며 아이들을 키우다가 1981년이 되어서야 자수를 하죠(허공에의 질주와 아주아주 유사합니다). 수십건의 폭탄테러를 했지만 이들중 실질적으로 감옥에서 복역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추적하면서 FBI가 저지른 불법이 훨씬 많아서 그 불법을 통해 수집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60년대 FBI는 계획적이고 잔인하게 미국내 급진단체를 공격하였고 그들이 제출한 계획은 COINTELPRO 라고 불립니다). 계속 지하투쟁을 하던 사람들은 결국 모두 체포되어 한 명은 20년형을 살고 최근에 출소했고, 나머지 한명은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화창한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으면서 'Peace Now'를 외쳐보아도, 이방인이라는 느낌과 알수없는 나른한 무력감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참고로, weather underground 라는 조직의 이름은 Bob Dylan의 노래 중,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알려고 일기예보관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지(You don't need a weatherman to know which way the wind blows)"라는 가사에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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