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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25
    영어수업(1)
    hand
  2. 2005/10/17
    참으로 황당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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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10/03
    늦은 행진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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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9/02
    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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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8/30
    그냥 풍경사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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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8/21
    그냥 풍경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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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8/11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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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8/09
    8월 6일 오전 8시 15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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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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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7/18
    샌디에고 여행2(2)
    hand

영어수업

별로 쓸 말도 할 말도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너무나 기가찬 일들이 벌어져도 볼때만 잠깐, 어이구 이런, 아니 이런 나쁜 놈들 하고는, 바삐 일에 매몰되어 간다. 인수위에 대학총장이란 자가 위원장인데, 그가 영어수업에 대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대학에 있으면 교수들 아들, 딸들이 외국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주변에 불쌍한 아버지들이 넘쳐 나겠지. 그러니 그들이 불쌍해서라도 영어수업을 하겠다는 건가? 그런데, 그들이 뭐 자식들 영어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된건가? 박사학위를 받아도 영어때문에 주눅드는 박사학위자들을 보며 참으로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었나 보나.  그래서 전국의 고등학교의 영어.수학.과학을 점차적으로 영어로 가르치겠단다. 허.. 인수위원장이 몸담고 있는 대학교의 교수들부터 그렇게 한 번 수업해보라고 해라.

철학이 없으니 즉물적이고 그러니 행동과 말들이 치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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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황당하다

행인님의 언론에서 사라진 이야기들과 관련이 있는 글입니다. 미국은 돈이 많은 나라다. 그래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개와 고양이들을 구조해서, 각각 조그만 우리에 담아 대형 여객기로 나라 이곳저곳으로 보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거나 동물 보호소로 보낸다. 몇 주 동안 그 불쌍한 개와 고양이들을 맞이하는 지역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TV로 계속 보여주니, 그 아름다운 마음씀씀이에 나도 새로운 반성을 하게 된다. 개와 고양이를 더욱 사랑하자. 미국은 역시 돈이 많은 나라다. 허리케인으로 수많은 빈곤한 흑인들이 돼지우리같은 실내경기장에서, 옴싹달싹 할 수 없는 낮은 가옥에서, 지옥도와 같은 비참함을 맞보았고, 그 장면을 본 많은 나라에서 긴급구호 식량을 보냈다. 그렇지만, 40만개의 달하는 영국의 비상식량은 영국에서 잡은 소고기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창고에서 그냥 썩어가고 있다. 영국 군인들은 매일 그걸 먹는다고 하니, 그들이 참으로 걱정이다. 비록, 처음에 '각 개인의 대피 프로그램을 발동하라'며 무관심을 보여준 정부당국이었지만, 결국 그들의 장기적인 건강을 걱정해 광우병의심 쇠고기를 몽땅 버리는 그들의 마음씀씀이에 나도 다시 새로운 반성을 하게 된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 쇠고기를 이제 더 이상 먹지 말자. 미국은 돈도 많고 통도 큰 나라이다. 군사독재, 전근대적인 사회계급제도와 전쟁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의 민중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우방으로 인정하며 그 나라의 독재자를 초대해 연회도 배풀어주고 무기도 지원해주는 그들의 통큰 마음 씀씀이에 나는 새로운 반성을 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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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행진이야기

지난 주 9월 24일 반전시위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에야 씁니다. 이런 저런 상념이 많았던 일주일이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오전에 친구녀석과 같이 샌프란시스코의 돌로레스 공원이란 곳으로 갔었습니다. 11시까지 모이라는 전단을 받았지만, 지리가 어두워 조금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이 돌로레스 공원은 샌프란시스코 도심 경치와 근처의 다리들이 내려다보이는 멋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습니다. 여러단체들이 연합해서 만든 집회라서 그런지 넓은 공원 한쪽에서는 녹색당사람들이 모여서 사전집회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 연단을 마련하여 사전집회를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곳저곳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 반전단체들이 몸에 붙이는 스티커도 나눠주고 있었고, 곧 있을 캘리포니아 특별선거에 대해서 안내 전단을 나눠주는 단체도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피켓이나 치장을 한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떤 사회주의자들의 단체에서는 삼행시 같은 재미있는 피켓도 만들어 왔더라구요.(Bush는 징후, 자본주의는 바로 그 질병, 혁명은 그것에 대한 치료) 2003년 2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반전시위에 참여했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인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그때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행진이라고 하더라구요. 시위나 집회가 잦은 샌프란시스코라서 그런지, 경찰들도 시위자들도 일상다반사처럼 느긋하고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특히, 이런 곳에 오면 어디에 있는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급진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신문잡지를 파는 단체와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내용을 설명하고 신문을 팔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The Militant(투사들)"라는 신문을 하나 샀습니다. 미국 곳곳의 파업투쟁소식과 국제정세에 대한 해석들이 있는 그 신문은 특이하게 12면 중 뒷 4면은 스페인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나면 이 신문의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2시간 정도의 사전집회겸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행진은 공원에서 시작해서 Market Street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를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잘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진의 원근점에 있는 곳이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여객항구랍니다(역시 여전히 관광객모드를 버릴 수가 없네요, ^_^;;).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시위자 중 누군가 'What do you want?'하고 외치면 'Peace'라고 답하고 'When do you want peace?'하고 외치면 'Now'라고 화답합니다. 그래서 자세히 듣지 않으면 시위자들이 'Peace Now'라고 크게 외치면서 걷는 것 처럼 보인답니다. 2시간 조금 넘게 걷는 행진이지만, 쉬지않고 정열적으로 라틴음악을 연주하면서 걸어가는 그룹들도 있고, 뒤따라 가면서 춤추며 가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평화적인 시위만 하지말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키마스크를 쓴 일련의 집단들도 보이고

가면쓰고 풍자극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샌프란시스코 시청을 빙글 돌아서 근처 언덕에 있는 공원에서 정리집회를 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정리집회에서도 사람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습니다. 이번 시위의 목표는 이라크 전쟁중지-군대철수, 아이티, 필리핀의 민주주의 투쟁 지지, 푸에르토리코 진보주의자들의 투쟁지지등 전세계에서 미군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만행에 대한 고발과 투쟁이었습니다. 연설들을 무척이나 설득력있게 잘하였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굉장히 리듬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예전에 대학집회에서 자주 듣던 웅변 스타일의 사자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10월 중순에 또 한 번의 대규모 반전시위를 주최측에서 예고하는 방송도 있었습니다. 정리집회에서 한 흑인 운동가가 나와서 미국자본의 야만성과 침략전쟁을 비판한 후, 엘고어, 존캐리, 힐러리 등등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민주당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의 이득을 대변하며 세계를 침략하는데, 지금의 공화당집권자들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고 말하니 일순간 환호와 박수, 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정리집회에 앉아있다가, 차를 주차해놓은 출발점의 공원으로 다시 걸어돌아갔습니다. 또 한 번의 반전집회가 끝이 났습니다.

이런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은 말그대로 평화롭게 진행됩니다. 소수의 스키마스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라는 영화를 기억하나요? 리버피닉스가 아직 앳된 모습으로 나오는 그 영화말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반전운동중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지명수배당해서 정처없이 도망다니는 부모의 아들 역할을 했죠. 왜 갑자기 리버피닉스 이야기냐구요? 실제로 평화적인 베트남전 반전시위 와중에 결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부의 운동가들은 그들의 노선을 폭력투쟁으로 바꾸었답니다. 그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가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 'weather underground' 라는 단체입니다. 흑표범당은 반전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흑인들이 맞서고 있는 가난과 차별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광범위한 운동과 자위를 표방하고 나섰고 또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흑표범당은 결국 미국 FBI의 직접적인 살인(시카고 빈민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21살의 Fred Hampton이라는 젊은 운동가는 새벽에 잠을 자다 수십발의 경찰의 총알을 맞고 말그대로 살해 당했습니다)과 프락치투입, 폭력적 진압등으로 붕괴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폭력적 탄압과 베트남에서의 미군의 무자비한 살육이 진행되면서, 전국적 좌파 학생운동단체인 SDC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weathermen이라는 그룹이 weather underground라는 게릴라조직으로 바뀝니다. 위에서 언급한 Fred Hampton의 죽음도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당시 좌파들의 모토는 'bring the war home'이었고, 이들은 말 그대로 이 모토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시위를 다녀온 지 이틀 후에 미국공영방송 PBS의 독립필름을 방영하는 코너(Independent lens)에서 'The weather underground'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이 링크를 따라가면 보이는 웹페이지 오른편 중간쯤 보면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View trailer를 클릭하면 됩니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과 쇠퇴 그리고 자수와 체포로 이어지는 전과정을 차분히 보여줍니다. 멤버들의 현재 모습과 인터뷰도 보여주고요. 대부분이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자수를 합니다. 그 중에 결혼한 부부는 이곳저곳 떠돌아나디며 아이들을 키우다가 1981년이 되어서야 자수를 하죠(허공에의 질주와 아주아주 유사합니다). 수십건의 폭탄테러를 했지만 이들중 실질적으로 감옥에서 복역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추적하면서 FBI가 저지른 불법이 훨씬 많아서 그 불법을 통해 수집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60년대 FBI는 계획적이고 잔인하게 미국내 급진단체를 공격하였고 그들이 제출한 계획은 COINTELPRO 라고 불립니다). 계속 지하투쟁을 하던 사람들은 결국 모두 체포되어 한 명은 20년형을 살고 최근에 출소했고, 나머지 한명은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화창한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으면서 'Peace Now'를 외쳐보아도, 이방인이라는 느낌과 알수없는 나른한 무력감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참고로, weather underground 라는 조직의 이름은 Bob Dylan의 노래 중,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알려고 일기예보관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지(You don't need a weatherman to know which way the wind blows)"라는 가사에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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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끝없이 흘러나오는 허리케인 피해 뉴스를 보고 있으면, 특히, 많은 사람들이 대피한 superdome의 사진과 화면을 보고 있으면 1) 소말리아 난민촌(*)에 대한 기록영화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데, 특히 자가용이 없고, 다른 곳에 묵거나 호텔에 체류할 돈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다가 superdome으로 대피하라는 소리를 듣고 체육관에 모여든 사람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몇몇 허약한 노약자나 병자들이 체육관 구석 복도에서 그냥 죽어나가고 그 시체가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게 개인 소득 4만5천달러 국가인가 의심스럽고 2) 인터넷, 이동전화, 전화, 전기, 가스, 수도등등 소위 현대의 기계가 모두 먹통이 된 상태에서는 도시는 엄청난 오물과 독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쓰레기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의 식민지와 외부의 점령지를 가진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식민지 민중들은 교육도 복지도 '합법적으로' 소외되는 나라. 왜, 이런 나라를 따라 배우려고 많은 국가들의 지배계급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도 점점 훨씬 더 잘 이해가 된다.

 

 * 뉴올리안즈인구의 약 3분의 2가 흑인이고 그중에 약 30%가 극빈층이고 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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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후기(9월 8일)

TV에서 백인을 보여줄 때는 간절하게 살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과 서로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흑인을 보여줄때는 약탈하는 모습만 보여준다(ABC night line에서 한 번 이웃을 도우려 애쓰는 흑인들을 비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물론, TV를 하루에 거의 한시간 정도 보니..나의 판단은 11시 뉴스시간에 한정된다). 그래 그렇게 보여줘라. 원래 그렇게 지배해 왔으니. 물이 고인지 일주일이 지나니, 물이 아니라 독이 되었다. 세계 어디 도시든 그렇지 않겠는가. 이 넓고 넓은 땅덩어리에서 아주 티끌만한 작은 도시 하나가 망가졌을 뿐인데 품고왔던 그 모든 모순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세상에 퍼져간다. 내가 사는 곳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밀어닥친다고 하면 그곳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메트릭스 같은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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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풍경사진 2

일요일 마다 뒷산에 오르는 것도 이제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근처 샌프란시스코 해변가를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뛰기도 하고 그랬네요. 그때 찍은 사진 두장..뛰다 걷다 하다보니, 렌즈에 지문이 묻어버렸습니다. 여하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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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풍경사진

요즘, 오후에 안개가 태평양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저녁까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풍경사진입니다. 전체적인 색깔들이 많이 바뀌어서 white balance를 제대로 맞추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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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여름휴가를 가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상 포기하고 그냥 있기로 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 데, 그곳은 알라스카. 그 알라스카 중 제일 북단에 위치한 곳. 간단한 사진은 이곳에서.. 여기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시애틀까지 기차타고(또..^_^)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가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여름이 알라스카의 관광성수기라서 비행기 값도 비싸고 숙박비도 비싸고.. 이것저것이 너무 비싸다. 또 같이 갔으면 했던 사람이 못 온다고 해서.. 나중에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서 저축도 해서 가야겠다. 그래서 열심히 Lonely Planet Alaska를 읽고 있다. 그렇지만, 가려면 빨리 가야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알라스카 남쪽 지역에서는 빙하의 후퇴속도가 너무 빨라서, 10 여년전에 지어놓은 빙하관람용 전망대에서는 더 이상 빙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전부 없어지기 전에 가야한다. 오늘 영국신문 가디언을 보니, 서시베리아 동토가 아주 빠른 속도로 해동(thaw)되고 있다고 한다. 독일과 프랑스를 합친 면적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서시베리아의 땅덩어리에는 토탄 늪(peat bog)이 아주 많은데, 녹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메탄가스가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약 11000년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얼어붙어 지표면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이제 서서히 대기중에 흘러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더한 온실가스라는 점. 일종의 가속작용이 일어나겠구나. 이런 식으로 가면 지구가 많이 뜨거워 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여전히 지구온난화는 '논란'이 있는 '과학적'주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제발 그만). 그러니, 알라스카에 빙하가 전부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눈으로 봐야겠다. 미국에 있는 선군정치가들(특히 지금 여름 휴가 중인 수령과 그 일당들)은 중동의 민중들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인류가 살아 생전에 빙하를 볼 기회를 박탈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빙하가 사라지는게 먼저일까 인류가 지구상에서 의미가 없는 개체 수로 남는 것이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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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오전 8시 15분

언제나, 묵직하게 머리 속을 짖누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핵폭탄의 열폭풍으로 온몸이 가루처럼 날아가고 히로시마 교회당의 무너진 벽에 그림자로만 남은 사람들의 사진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 못 채워 나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도데체, 지난 200년간 무엇을 한걸까? 얼마전, 태어난지 두달이 지난 아기를 보고, 아기에게, 넌 2100년까지 살겠네, 그럼 그때는 자동차가 날아다닐까, 라고 이야기했더니, 옆에서 한 친구가 글쎄, 꼭 앞으로만 가라는 법은 없어, 라고 했다. 엉... 잠깐, 김치가 떨어져서, 나의 15년 된 1톤이 훨씬 넘는 낡은 차를 끌고, 30분을 달려 갔다 30분을 달려 왔다. 그래, 이것도 사실 앞으로 온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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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곳에 와서 처음 6개월간 매일 출퇴근때 걸어다니던 길에서 총기사망사고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라, 많이들 놀라고 있다. 학교에 인접해 있고, 커다란 대학기숙사 건물이 여럿 있고, 교회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길이다. 그래서 매우 독특하게도 금요일과 주말, 일요일 저녁 늦게까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많이 왔다갔다하는 활기찬 거리다. 그곳에서 새벽 1시에 자동차를 몰고 온 한 괴한이 기숙사 바로 앞 길거리에 친구들과 서 있던 여학생을 쏴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실은 아직 보도 되지 않고 있다.

 

처음에 미국에 올때는 총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사실, 점점 무감각해진다. 왜냐고? 자주 총기 사망사고 뉴스가 나오니까, 마치 한국에서 흉기로 위협하는 강도 뉴스랑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냥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마치 매일 사건사고 뉴스를 봐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감각해지듯.

 

한 3주전에는 인근 도시인 리치몬드에서 4-5일간 연달아 매일 매일 총으로 사람이 죽고, 죽이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런 정도의 총기 사망 뉴스는 그냥 '지역뉴스 local news' 다. 아마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가거나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그 지역은 또 그 지역에서 총맞아 죽는 사람 보도 하기도 바쁠꺼다. 그래, 전 미국에서 6시간에 1명씩 13세 이하 어린아이가 총기사고로 사망하는데, 그걸 전 미국에서 전부 다 보여주면, 매일매일 뉴스하기 힘들겠지. 매년 한 4만명 정도 총으로 죽는다는데, 웬만한 내전하는 나라하고 거의 비슷한 수준인 듯 하다.

 

글쎄,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워싱턴 근교에서 집에서 TV보다 길거리에서 벌어진 총싸움 와중의 유탄이 날아들어 총 맞아 죽어버린 사람같은 경우만 아니라면, 일찍 집에 와서 콕 박혀 있으면 무슨 일이 있겠는가.

 

이런 총기 사망사고와 지역의 연평균 소득과 엄청난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자료를 본 기억은 없다. 이곳만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리치몬드란 도시는 공장지대+흑인 밀집 거주지역이고, 위험하다는 오클랜드의 일부분 역시 가난한 지역이다. 반면, 오클랜드시에 섬처럼 붕떠 있는 백인부자들의 도시와 버클리의 북쪽지역의 부자 동네에서 위험지역과 총기사고 소식을 들어본 적은 없다.

 

4천만명이 의료보험도 없이, 서로 총으로 죽고 죽이고, 대규모 정리해고가 상시적으로 행해지는데도 LA폭동같은 것이 아주 가끔 일어난다는 것이 어찌보면 놀랍다. 아마도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종의 내부의 식민지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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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여행2

Getty Center가 있는 LA는 두번째 가본 것이긴 하지만, 갈때마다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드는 도시랍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 타운]이라는 영화를 보면 잘 나와있듯이 남 북아메리카 지역은 물이 매우 소중한 곳입니다. 그 곳에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천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거대 도시인 LA와 샌디에고 등등의 도시가 해안가를 따라서 형성되어 있습니다. 날씨가 좋긴 하지만, 강수량이 너무 적어서, 엄청난 토목공사를 통해 물을 확보한 후 일년 사시사철, 인공적으로 물을 뿌려대며, 푸른 잔디와 숲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언뜻 보면, 이곳이 원래 거의 건조한 사막기후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녹지와 잔디가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거의 모든 잔디밭에서 물을 뿌려대는 호스들을 보는 것도 처음에는 무척 놀랄 일입니다. 샌디에고에 사는 선배의 말에 따르면, 같은 기후에 비슷한 자연환경이라도 국경근처에서 바라보는 멕시코 해안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자본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추측은 해보지만, 가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추측으로 남겨둬야 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식의 커다란 도시를 이곳에 만들어서 유지한다는 자체가 이미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하튼, Getty Center를 둘러보고는 돌아오는 길에 LA를 벗어나 남쪽에 있는(도시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꽤 커다란 한인타운(Orange County 어쩌고 저쩌고 였는데...)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얻어먹고, 다시 샌디에고의 선배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간단한 샌디에고 주말여행을 끝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조금 더 일정을 늘려 잡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후회도 했지만, 나중에 한 번 더 찾아 오기로 하고는 간단한 술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하루종일 세아이와 함께 고생하면서도, 저녁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선배와 형수님께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언제 한 번 꼭 다시 찾아뵈어야겠죠.

 

출발하기전에 예매 한 기차표대로라면 아침 6시 45분에 샌디에고에서 출발하여, 2시간을 달려서 LA에 도착한 후 약 1시간 30분을 기다려서, 미서부 종단열차를 12시간 정도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밤 10시 도착, 버스를 타고 집으로. 새벽같이 근처 Amtrak역으로 가서 남쪽 도시와 도시를 잇는 Pacific Surfliner라는 기차를 타고, 정확하게 예정대로 LA에 도착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도시간 열차도 옆 사진의 대륙종단 열차처럼 이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전부 이층기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LA 역에서 보인 거의 대부분의 열차들이 이층이었습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뉴저지의 한 도시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이용했던 기차는 80년대 통일호 같은 것이었는데, 그런 것은 보이지 않더라구요. 사실, 샌디에고를 갔다가 기차로 돌아온다고 한 미국인 동료에게 이야기했더니, 경치가 대단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들리는 이야기로 "It's never on time (절대로 시간 맞춰 운행하지 않는다던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LA에 정시로 도착했었습니다.

역시,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하는 도시 답게 천만명이 넘게 사는 도시의 중앙역인 LA union station의 대합실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꽤 오래되어 대충 눈으로 보이는 곳은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즉, 조금이라도 구석진 곳은...--;;). 특이한 점은 보통 이런 공공시설에 허락받지 않고 물건을 팔거나, 노숙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경고 하기 위한 경고판에는 'xxx를 위반시 고소당할 것(prosecuted)'이라고 적혀져 있는데, 이 곳은 'xxx를 위반시 체포당할 것(arrested)'라고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많은 여행 가이드에서는, 왠만하면, 될 수 있는데로, 아니 다른 수단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LA 역 근처를 가지마라, 라고 되어 있어서, 내심 걱정했지만 이른 아침시간이라서 그런지, 혹은 몇일전 일어난 London 폭발사고 때문에 많은 경찰들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그렇게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름기 덩어리인 미국식 아침식사(계란+소시지+커피)를 하고, 30여분 쯤 앉아 있다가, 이제 출발할까 하면서 안내판을 보니, 기차가 40분 연착할 거란 안내문이 떴습니다. 흠..그래,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다시 가보니, 1시간 30분 연착할 거란 말이 들리고.. 어이구야, 정말 'never on time'이구나하고 생각하는데, 텍사스에서 출발해 LA로 도착하는 횡단열차가 예정시간보다 5시간 늦게 도착할 거라는 안내문을 보고는, 가장 단순하게 계산해도, 버스가 다닐 때 집에 도착하기는 이미 불가능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아는 후배녀석 전화기에 마중나와 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기차가 언제 정확하게 출발할 지 몰라서, 한 밤12시쯤에 도착하지 않겠냐며, 도착역의 역무원에게 전화로 물어보고, 꼭 와달라고 부탁한 후, 다시 가보니, 앗뿔싸, 2시간 연착 메세지가 떴습니다. 그래서 황망히, 시간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고 있으니, 방탄복에 온갖 총과 탄창, 무전기등등으로 완전무장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사진찍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왜 그러냐, 라고 했더니, 테러경보가 상향조정되어서, 역의 매점과 안내판등등을 찍는 게 금지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래도 찍고 싶으면 신청서를 내라고 하더라구요. 여하튼 신분증보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갔습니다. 처음에 갑자기 중무장 경찰이 다가와서, 뭐하는거냐 직업이 뭐냐라고 물어봐서, 당황한 나머지 직업을 'scientist'라고 이야기 해버렸더니, 경찰이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짓더군요.

결국, LA역에서 거의 네시간을 기다려 기차를 타러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출구로 와 몰려갔더니, 일단 좌석을 배정받아야 한다면서 한명씩 어디로 갈거냐고 물어보고는 이 쪽 칸으로 가라 저 쪽 칸으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 또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좌석을 배정받고, 기차에 탈 수 있었습니다. 테러 경보가 상향조정되어서 사진이 있는 신분증이 없으면 기차를 탈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역에서 계속 나왔지만, 2시간 연착에 정신없는 좌석배정때문인지, 신분증과 짐도 건성건성으로 보더니, 출발해버렸습니다.

 

 

이 서부 종단 열차는 해안가 주요도시를 연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차 노선이 해안가에 인접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차를 타고 천천히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좋았습니다. 물론, 곳곳이 외선 뿐이라서, 오는 기차를 기다린다던지 하는 이유로 무척이나 천천히 갔지만, 기차 자체가 이층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높은 곳에서 바라다본 태평양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산타바바라를 거져 지나가다 보면 왼쪽 태평양 쪽으로 무엇을 위한 건물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곳곳에 해안가에 집들이 있고, 반대편은 캘리포니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잡초로 뒤덮인 낮은 언덕들이 계속 이어져 있었습니다.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음에도, 기차 운행은 여유 만만. 중간중간 역에서 쉴때마다, 담배한대 피실분은 내려서 피고, 허리 운동도 좀하세요..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길게는 20-30분씩 쉬어 갑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구간과 자연환경이 나오면, 함께 동승한 국립공원 관계자가 설명도 해줍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지나고 있는 지역은 xxx 이고, 왼쪽을 보시면 xxx". 잠깐, 이 열차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가 햇갈리고, 단체 관광모드로 바뀌기도 하고, "자 이제, 전망열차(이층 객차의 창문과 지붕을 전부 유리로 만든 곳)와 식당에서, 오늘 저녁 영화 히치를 상영하니, 관심있는 분은 와서 보세요"라는 안내방송도 나오고.... 그렇지만, 예상도착 시간표를 왜 인쇄했을까 싶게, 기차는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서, 혹시, 내일 아침에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혹시, 후배는 대합실에서 저녁 10시부터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에.... 시달려 봤자, 달리 해결책이 없기에, 에이, 맥주나 한잔하고 경치나 즐기자며 일층 식당칸으로 갔습니다. 중국 컵라면 하고 달디단 빵으로 일단 허기부터 채우고, 맥주도 한잔하고, 창밖은 계속 태평양. 결국, 예상보다 4시간 20분 늦은 새벽 2시 1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역에 나와달라고 부탁했던 후배는 밤 12시경 역에 왔다가, 역무원은 다 자고 있고 안내도 없어서, 처음에 약간 황당했다가, 기다리던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2시쯤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에 다시 왔었다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미국의 웬만한 도시들은 열차를 이용해서 갈 수 있고, 그 대륙횡단 열차가 20세기 초반 미국자본주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죠. 지금도 아주 많은 화물들이 대륙횡단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를 보면 그 철도 건설 뒤에 얽히고 섥힌 자본가와 개척민들과 총잡이들의 서부개척 "로망"과 음모들을 볼 수 있답니다. 물론 배경화면으로 대륙횡단 철도의 서부쪽의 실질적인 철도 건설자인 중국인 이민 노동자들의 중노동도 보실 수 있습니다. 동부쪽은 대략 아일랜드 이미 노동자들이..

글쎄요, 다시 철도를 이용할 일이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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