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사라진 이야기들

면적 22만여 평방킬로미터. 원명 잠무 카슈미르 Jammu and Kashmir.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진도 7.6 이상의 강진으로 인해 추정 사망자만 8만~10만에 달하고, 이재민만 수백만명이 발생한 나라. 경제적으로 빈한한 나라여서 구호활동에 자체적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고, 고산지대인데다가 곧 다가올 겨울로 인해 최악의 참사까지 우려되는 지역이다.(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300만불이라는 '거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 허리케인 피해를 입자마자 3000만불이라는 약소한 지원을 약속했던 전력이 있다.)

 

언론의 매일같은 뉴스특보를 보면서 삼풍백화점 무너졌을 때와 비슷한 일희일비를 느낀다. 처참한 죽음과 망자 가족들의 오열을 보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고, 다른 한편으로 기적적으로 생환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가족이 살아돌아온 것같은 기쁨에 전율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보도를 보면서 갈수록 답답해지는 것은 이렇게 한꺼번에 수만의 희생자가 나와야만 저 가난한 곳에 카메라가 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때문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이 지역은 종교분쟁과 민족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다. 제국주의의 장난질로 인해 엉성하게 정리된 국경을 놓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무력충돌이 계속 되어 왔던 것이다. 한 해 수천명씩의 양측 정규군 또는 반군이 사망했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총성 속에 사라져갔다. 몇 차례의 전면전도 있었고(1948년, 1965년, 1971년 양측간의 충돌이 대표적이며 이후에도 전면전에 버금가는 전투들이 몇 차례 더 있음), 급기야 20세기 말에 파키스탄마저 핵무장을 하게 됨으로써 이 지역의 긴장도는 그 어느때보다 높은 실정이다. 일부 논자들은 파키스탄의 핵무장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건 놀라운 궤변이다.

 

'지상 천국'이라고 칭해졌던 이 지역이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오가는 과정에서 세계의 관심은 단지 그 땅이 누구에게 귀속될 것이며, 핵개발의 향방이 어떻게 될 것인가 등에만 집중되었을 뿐이다. 반군이 테러를 하고 고위급 인사의 가족을 납치했을 때나 국제적인 뉴스로 등장했을 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당시에도 그 이유나 그 현황이나 그 사정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지진사태가 있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지역이 그토록 숱한 세월동안 포성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던 지역이었으며, 세계의 지붕 한 자락에 위치한 곳이며, 세계에서도 가장 못사는 지역 중의 하나라는 정도임을 알게 되었다.

 

가당찮게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인도 파키스탄 간에 평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파키스탄이 인도에 은근슬쩍 원조를 요청하고 있고, 인도는 이 기회에 인심쓰겠다는 듯한 형국이다. 글쎄다... 내내 지진이야기만 하면서 그동안의 문제는 쏙 빼놓고 있다가 갑자기 왠 평화?? 언론의 이 뜬금없음이여... 지진이야기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지진여파가 어느정도 수그러진 후 또다시 이 지역에 총성이 울려퍼질 때 이놈의 언론들은 또 어떤 자세를 취하게 될까...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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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7 11:29 2005/10/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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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10/17 18:02

    미국은 돈이 많은 나라다. 그래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개와 고양이들을 구조해서, 각각 조그만 우리에 담아 대형 여객기로 나라 이곳저

  1. 그러게요, 좀 씁쓸한 이야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