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여 독립하라~~!!

김종빈 검찰청장, 장렬히 전사했다. 그러나 그의 초개와 같은 산화는 검찰 독립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남한 사회에 남겼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행사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사상 초유 지휘권행사와 김종빈 검찰총장의 결연한 사퇴는 남겨진 화두들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코메디다. 우리는 언제나 수준 높은 정치코메디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검찰청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법 제8조). 일반적 지휘라는 것은 쉽게 말해 검찰행정에 관한 사무감독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직장 상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다는 부분, 이거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핵심사안이다.

 

원래 피의자에 대한 모든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다만, 도주나 증거인멸 등의 위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구속수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구속영장에 대하여 실질심사나 적부심을 하는 이유가 그 구속이 정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될 수 있는 한 부당한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이라는 요사스러운 나라에서는 구속이 하나의 처벌로 간주되면서 특히 사회적으로 지탄이 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일단 구속하지 않으면 수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진보고 보수고 간에 공통된 인식으로 가끔 발현하는데,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진보진영의 투쟁구호 중에 하나로 '전두환 노태우 구속수사'라는 것을 기억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하는 보수진영에서 무작정 구속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일단은 멋적은 일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라는 것이 바로 근대 법질서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가 투영됨으로서 확립된 원칙이기 때문이다. 한편 진보진영에서 역시 무슨 일만 터지면 구속수사하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가당찮은 이야기다. 인권이 무기일 수밖에 없는 진보진영에서 '구속'수사라는 수사를 그렇게 쉽게 사용한다는 것은 인권이라는 것을 매우 제한적이고 편협하게 해석한 결과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보수던 진보던 간에 '엄정한 수사' 또는 '철저한 조사'를 요구할 수는 있어도 '구속수사'를 요구할 일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일반의 인식이 이렇다고 할지라도 수사기관이 스스로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지킨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그들의 특성상 불구속수사보다는 구속수사를 원하기 마련이다. 외부와 격리된 곳에서 집중적인 추궁을 할 경우 자백의 확률도 높고 외부변수를 이용해 증거나 증인을 인멸할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법원도 문제인 것이 특히 시국사범의 경우 엔간해서는 구속영장발부를 기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에 대한 구속영장기각이 늘고 있다고는 하나 그거야 하도 말이 많으니까 눈치보는 차원에서 약간 여지를 두는 것이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강정구 교수,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검경이 구속수사원칙을 세우는 한 구속상황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리하여 천정배 장관, 전가의 보도를 빼어들고 사상 유래 없는 법무부장관의 검찰지휘권을 발동했다.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개인적인 의지의 작용과 함께, 작년 겨울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일종의 부채의식도 작용했으리라. 천장관의 심리를 읽을 독심술이 지금 필요한 상황은 아니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간에 천장관은 검찰총장에게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강정구 구속하지 마란 말이야~~!!"

 

검찰 안에서 반발은 일파만파, 검찰의 독립이 깨진다느니 지휘권 남용이라느니 벼라별 소리가 다 나온다. 그 결과 지휘권을 수용하겠다는 김종빈 총장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다. 지휘권을 수용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겠다는 것인지 자기 거취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청와대는 사직서를 한 번도 반려함 없이 바로 수리했고, 한나라당은 이때다 하고 들고 일어나 천장관의 동반사직을 요구하고 나선다. 장내는 바야흐로 아비규환.

 

천장관, 법리적 해석으로는 가능한 일을 했는지 몰라도 별 쓰잘떼기 없는 일을 해서 문제를 자초했다. 검찰청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체적 사건의 지휘·감독"은 누구 구속해라 마라 하는 정도의 지휘권을 행사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소권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에 대해 실질적인 견제방법은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기소가 된 이후에 법원의 판단에 따라 그 기소가 적절했던 것인지 부당했던 것인지가 확인될 뿐이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현행법상 유일하게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법무부 장관의 검찰지휘권 행사 규정이다.

 

그렇다면 실제 "구체적 사건"이라고 했을 때는 정치적 판단과 사회적 이해, 공소유지에 대한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 및 기소독점주의의 폐해가 예정되는 개별 사건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삼성 일가의 편법증여사건 같은 경우 검찰이 지지부진 시간을 끌면서 삼성이 빠져나갈 기회를 만들어주던 때에 삼성에 대해 엄정 수사를 지시하고 이에 대한 감독을 하겠다고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천정배장관이 저지른 실수는 여기 있다. 강정구 교수 이후에 국가보안법 사범이 발생할 때마다 불구속 수사를 검찰총장에게 지시할 것인가? 차라리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전혀 없는 강정구 교수를 검찰이 구속했다면 천정배 장관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있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가정은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판단이라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철폐가 그토록 중요한 사안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천정배 장관의 행위는 별로 신통한 처사가 아니었다.

 

이번 사태의 실질적인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검찰의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 또하나는 국가보안법.

 

그중 첫번째, 검찰이 얼마나 지들 멋대로 지들 스스로를 옴파로스로 여기고 있는지를 널리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떡값을 챙기고 그 급부로 독점재벌에 대해서는 온갖 편의를 봐주던 검찰. 자본에 종속되어 그 자본의 이해관계 속에 자신들의 독립성을 온전하게 갖다 바쳤던 그 검찰. 군부가 집권하면 군부의 하수인이 되어 독재정권의 '시다발이'로 긍지를 드높이던 그 검찰. 이 검찰이 불구속 수사 지휘 한 건에 독립성을 운운하면서 떼거리로 몰려나와 안면근육을 뭉치고 있는 것이다. 그 경직된 안면근육의 긴장감이 그들 스스로는 매우 진지한 것인지 몰라도 그걸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유치하다.

 

검찰 독립을 이야기하려면 진짜 독립적인 모습을 좀 보여주어야 한다. 어디 이 참에 삼성을 비롯한 비윤리적 재벌 일가의 전횡들을 얼마나 파헤치는지 잘 지켜보자. 시국사범 만들어내던 그 솜씨로 노동자 탄압 일삼고 있는 악덕 기업주에 대해 얼마나 강력한 칼날을 휘두르는지 살펴보자. 좀 신뢰를 주고 나서 독립성 운운할 일이다. 그 굳어진 얼굴로 '검찰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두 번째, 국가보안법. 이거 계속 남아있어봐야 국민들 정신사납게만 만들고 국제적으로 개망신만 당할 뿐이다. 강정구가 6·25를 통일전쟁으로 규정하던 김일성을 신으로 모시고 굿을 하던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만일 강정구가 6·25를 통일전쟁으로 규정하자마자 갑자기 조갑제 등 이에 동조하는 일당들이 총칼을 들고 광화문 앞으로 뛰어나와 "북진통일 하자"고 설치더라도 도로교통방해죄나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하던가, 아니면 곱게 정신병원에 입원치료하도록 주선하면 될 일이다. 국가보안법 남아 있는 바람에 강정구과 조갑제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악수를 못한 채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고 있는 거다. 이 둘을 만나게 해주려면, 그리하여 그들만의 쌩코메디로 계속 남아있게 하려면 조속히 국가보안법, 이거 없애야 한다.

 

(사족) 천정배 장관, 앞으로는 자뻑하는 일 없길 바란다. 그렇게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싶었으면 작년, 그 쪽수 많았을 때 밀어 부쳐서 없앴어야 한다. 이제 와서 불구속 수사 지휘 하는 쑈는 생뚱맞다. 법무부 차원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안을 제출하던가. 그게 더 멋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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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7 15:35 2005/10/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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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앗, 방금 미디어다음 이메일시험봤는데 이 주제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나왔어요... 행인님 블로그를 읽어봤더라면 잘 볼 수 있었을텐데... --;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답글 남기네요.

  2. 안녕하세요 ^^
    무슨 시험을 미디어다음에서 보세요 ?? 0,.0
    혹시 다음에 취업이라도... (^^;;;)
    간만에 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뵐께요~~

  3. 이 사건으루 이젠 제발 사무실에서 전화좀 안받았으면 ㅠ.ㅠ

  4. 검찰은 형사상 기소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일 뿐인데 마치 지고지순한 존재인양 착각하는 검사들이란... 이 모든 게 검찰권력의 핵심인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를 건드리지 않은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원죄 아닐까요?

  5. 정양/ 10월 26일이 지나면 나아질거에요 ^^
    야스피스/ 검찰의 기소독점을 해체하려면 먼저 헌법개정부터 해야합니다. 좀 복잡한 문제가 있기는 하죠. 하지만 검찰 민주화는 사법시험제도가 남아있는 한 요원하다고 봐요. 법전검색기계들을 만드는 이 제도 하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은들 법전 밖으로 얘들 생각이 뻗어나가질 못하거든요. 공안문제만 봐도 그렇죠. 법철학에 대해 약간의 소양만 있다면 국가보안법 적용 검사들이 안 하게 되죠. 그런데 안그렇거든요. 닭들은 어쩔 수가 없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