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횃불 높이 들고~!

몸으로 애국애족 하시는 분들의 힘찬 투쟁이 시작되었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저 '원로' 어르신들의 힘찬 함성.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신 저분들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얼마 안 남은 여생을 바치시기로 결의하셨던 것이다. 어르신들의 숭고한 이상과 그 넘치는 정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불태우시는 장열한 희생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야 되는데 웃음만 나온다. 아직 건강은 여전들 하시구만. ㅋㅋㅋ

 

선거철인갑다. 10000명에 가까운 '원로'들께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386과 청와대의 배후"를 밝히자고 호소하신다. 노무현이 제 뜻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 친공세력들의 배후조종을 받아 움직인다는 것이 이분들의 판단이다. 배후의 치밀한 지도편달을 받고도 노무현의 정치가 이정도라면 그 배후 안 봐도 비디오다. 에구 못난 것들... 나는 이렇게 그 배후를 못난 것들로 생각하는 반면 원로들께서는 아주 불길하게 여기시나보다. 칠성판 지실 날이 머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유신공주,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구국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겠단다. 구국이라...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구국의 결단"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북한 괴뢰도당을 무찌르라고 쥐어줬던 총칼을 자국의 민주정부에 들이밀고 정권을 전복했던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구국의 결단"으로 일본과 굴욕적인 국교정상화를 단행했고, "구국의 결단"으로 민주인사들을 살인했으며, "구국의 결단"으로 유신헌법을 제정 선포하였다. 그 질기고 질긴 "구국의 결단"이 무려 18년이나 이어졌다.

 

이후에도 가끔 "구국의 결단"을 한 사람들이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참혹하게 학살하고, "구국의 결단"으로 부정선거를 통해 군사정권의 대통을 이었으며, "구국의 결단"으로 IMF까지 몰고 왔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 사람들이 "구국의 결단"을 할 때마다 나라가 결단나버렸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격언을 살피건데 오늘날 또 등장한 "구국의 결단"이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결단낼 것인지 걱정된다. 게다가 이번에 등장한 "구국의 결단"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강정구 하나 잡기 위해 "구국의 결단"씩이나 한단 말인가?

 

때는 바야흐로 선거철이라. 전국 4곳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벌어진다. 각 정당이 뭔가 정책을 제시하고 발전을 위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실상 뭐 더 할 말이 없다. 보여줄 것이 있어야 보여준다고 뻥이라도 칠 것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 "우리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자기 생존의 현실을 각인 시키고 "쟤들 나쁜 넘들이에요. 우리 찍어주세요"하는 소리를 지르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먼 태고적에 송장으로 처리되었어야할 색깔론이 또 다시 나타난다. 징글맞게 후진적인 이 땅의 정치현실.

 

오늘 여의도에서는 사학법개악을 저지하자는 취지로 모인 이 땅의 애국적 교육자들이 옴팡지게 몰려오시는 바람에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그들이 뿌려놓은 쓰레기와 오물로 인하여 상당히 미관상 안 좋은 모습이 장시간 지속되었다. 사학법 개정은 학교를 공산화시키는 것이라나? 아무래도 사학법 개정논의를 하기 전에 전국 사학재단에 대한 정밀감사를 먼저 했어야만 했다. 사학재단 중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곳이 몇 개나 될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학비리가 애국적 교육의 살아있는 실천이었나?

 

아무튼 여러분들이 구국을 하시던 애국을 하시던 별 상관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여러분들만 애국하시고 구국하실 것이지 괜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애국하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시지 않으면 좋겠다. 약간 맛이 간 눈빛으로 커다랗고 시뻘건 십자가 손에 들고 "예수천국 불신지옥"하는 사람들 보는 것 같다. 더러는 춘추 높으신 어르신들, 이제 망령이 드셨나 오해받으실 수도 있다. 그나저나 그놈의 구국의 "횃불"은 꺼지지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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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9 20:16 2005/10/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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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제쯤 저런 덜떨어진 코메디를 안보게 될건지..

  2. 행인님.다산의박진입니다.문화제준비하고 있는데요.잘지내시죠?ㅎㅎ올만의 인사드려요 음...블러그홈에 트렉벡놀이보셨죠?문화제때 뵈요.꾸벅

  3.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다만 평소 우리 어머님 말씀이 귓가를 맴도네요. <늙으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추해지고, 후손들 고생시키니...>(물론 못난 자식을 염려하셔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4. 8con/ 글게 말여요...
    박진/ 안녕하세요? 게으른 소치로 제대로 참여도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 이번에는 반드시 끝장을 내야겠습니다. 투쟁~!
    이재유/ 멋있는 '원로'분들도 많이 계시죠. 70평생 봉제공장에서 미싱 밟고 있는 우리 어머니나 이선생님 어머님이나 그런 분들이요. 구국하시는 분들이야 자칭 원로지 뭐 누가 원로라고 인정하겠습니까? 그냥 웃고 말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