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끝 낙수물을 바라보며

잘 다니던 회사 갑자기 그만 둔 1992년 연말, 더럽게 추웠다... 몸도 춥고 맘도 춥고...

같잖은 월급이라도 나오던 회사를 덜컥 그만두고 나자 후회 막급이로다, 이럴줄 왜 몰랐던가. 그렇잖아도 하루 밥먹기 빠듯한 집구석에 처박혀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구석에 앉아 있는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인지 진정 몰랐었다.

 

그리하여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일당치기라도 있으면 감지덕지 쫓아 가고, 가서 세상 사는 모습도 보고. 그래도 웬만한 노가다는 이력이 나게 했는데, 해본 일 중에 딱 하나 그놈의 "세일즈"는 죽어도 못하겠더라... 완전히 맨땅에 박치기하는 일이었는데, 상품도 구질구지 한데다가 인지도도 없는 거 저가판매하는 거라 마진도 남는 게 없었고, 들어가는 곳 중 80~90%는 문전박대다. 화려한 욕지거리가 목구멍 언저리를 타고 돌아도 만면에 희색을 띠고 저승갔다 돌아온 자식얼굴 본 노인네처럼 희희덕 거리는 거 진짜 체질에 맞지 않았다.

 

겨울부터 봄까지 이일 저일 전전하다가 갑작스레 세상이 싫어졌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짐을 싸들고 고향 아버지 묘소 앞에 텐트를 쳤다. 민가에서 워낙 뚝 떨어진 깊숙한 산골이라 좋기는 했는데, 그놈의 날씨가 원수였다. 1993년 그해는 봄부터 여름 내내 가을까지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렸다. 해 뜬 날을 며칠 보질 못했으니까. 5월 31일날 산소 앞에 텐트를 쳤는데 6월 1일부터 그 지긋지긋한 비가 계속 내렸다. 아버지 산소는 잣나무밭 한 가운데 있는데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장고 치는 소리와 흡사하다.

 

촛불켜고 시묘살이 하듯 두달여를 개기다가 결국 버티질 못하고 들어간 곳이 한 7년 버려졌던 흉가다. 역시 마을에 뚝 떨어진 곳이라 조용하니 좋은데다가 무엇보다도 빗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아서 살 것 같았다. 뚫어진 벽을 신문지로 틀어 막고 벽지 떨어져 나간 곳마다 역시 신문지로 도배를 해놓으니 그럭저럭 살만했다. 마당은 풀밭이고 온갖 짐승들이 왔다갔다 한다. 산속에 있을 때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 집에 들어간 첫날 기절할 뻔한 일이 생겼는데, 다름 아니라 천정에 뭔가 엄청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 집, 원래 초가집이었던 것을 새마을 운동한다고 슬레트를 얹고 애초 없던 천정을 만들면서 왕겨를 잔뜩 깔아놓은 집이었다. 아시다시피 초가 걷어내고 슬레트 얹으면 단열이 되질 않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오지게 춥다. 아무튼 그렇게 왕겨를 깔아놓은 집이었는데, 밤중에 무엇이 묵직하게 왕겨를 끌며 움직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쥐가 돌아다니나 했는데, 이건 쥐들 돌아다니는 것과 전혀 다른 거창한 무엇이었다. 천정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나있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그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기겁을 하고 뭔가를 들어 구멍을 막았다. 손을 천정에 짚고 있는데 그 위로 이넘이 슬슬 움직인다. 나중에 안 거지만 그게 터주였다. 무식하게 큰 구렁이...

 

신기한 것은 그 구렁이가 집에 들어와 있을 때는 새 한마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거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천정에 쥐들이 돌아다니거나 마당 풀밭에 오소리며 너구리가 나타나면 이넘이 출타중이신 거다. 그렇게 이넘은 며칠씩 어딜 갔다 오곤 했는데, 나중엔 없으니까 더 아쉬웠다. 쥐들이 마라톤에 계주에 우당탕 거리고 천정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이넘이 있는 것이 훨씬 조용하고 좋았으니까.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도저히 촛불만 켜놓고는 살기가 어려웠다. 눈도 점점 안좋아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집이 북향이고 내내 비가 내리는 날씨가 계속되니 방 안이 대낮에도 어두컴컴 했끼 때문이다. 해서 서울 올라와 친구 하나 불러 전기코드며 전등이며 사 들고 내려갔다. 근처 논에 양수기 연결하는 배전반이 있어서 거기다가 전기선을 연결하고 집으로 전기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하필 그 날따라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서 전기설치해주러 그곳까지 따라 내려왔던 친구넘과 촛불을 켜고 밤을 보내게 되었다. 코펠에 찌게 얼큰하게 끓여서 내고 소주병을 까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어놓고 좁은 마루에 앉아 처마밑으로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를 풍악삼아 한잔 두잔 소주를 마셨다. 건너편 산이 시커멓게 서있는데 부슬비 부슬부슬 내리는 들판을 지나 보이는 산은 왜 그렇게 믿음직 하던지.

 

멀리서 잔뜩 덩치를 키운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비는 참 얌전하게 부슬부슬 계속 내리고 있었다. 소주를 몇 병이나 비웠는데도 둘 다 술이 취하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선까느라고 생 고생을 했는데도 전혀 취하질 않았다. 징글맞던 빗줄기도 오히려 그게 더 운치를 더했고, 나즈막히 부르던 노래들이 나직한 빗소리와 또 그렇게 어울려갔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아마 그 때가 가장 아무생각 없이 신선놀음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신선놀음와중의 백미가 바로 그 비오던 밤 빗소리 안주삼아 술을 마시던 그 날이었던 듯하다. 서러움도 없고 그리움도 없고 외로움도 없고 아픔도 없고 그냥 그 시간을 고즈넉히 느낄 수 있었던 그 때.

 

이 신새벽에 갑자기 그 때가 그리워졌다.

그렇게 또 산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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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1 04:15 2005/10/2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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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대학 4학년 여름 방학에 누님 계시던 곳에서 한 3개월을 모든 연락 끊고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제일 맘 편했던 것 같습니다. 실연, 전망 못 찾음.... 정말 서울을 떠나던 때는 정말로 모든게 힘겨웠었는데, 그렇게 보낸 3개월이 힘이 되더군요.

  2. 뭐 산속은 아니었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숨어 사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재미 있는 일은, 그때,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소일 삼아 스케치북과 색연필 들고 그림을 그리러 돌아다녔는데

  3. 어느날은 오래된 성당 마당에서 성당 건물을 그리는데, 자꾸 꼬맹이가 왔다 갔다 그림 그리는 것을 쳐다보다간, 가까이 다가와서 하는 말... "아저씨 화가예요?"... 그때 등으로 흐르던 땀... "애야... 저리 가라..." 그러고 말았습니다. ^^

  4. 저리 가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