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로다...

그랬다. 보궐선거 개표가 끝나자 마자 머리속을 스친 단어는 다름 아닌 "업보"라는 두 글자였다. 조승수 의원의 빈 자리는 그만큼 컸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당의 노력은 지나치게 급조된 것이었다. 결국 '실지회복'이라는 당의 사활을 건 보궐선거 총력전 역시 급조된 만큼이나 실익이 없은 것이었다. 울산북구의 패배로 민주노동당은 장래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장래는 없다.

 

선거를 앞둔 울산 북구의 분위기는 암울한 것이었다. '노-노갈등'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민주노동당 불신은 극에 달한 것이었다. 그 불신이 민주노동당이 특별히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치밀한 이간질 때문이었다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부터 민주노동당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소외시킨 것이었으니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작년 여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와중에 현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한 설움은 사측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조에 의한 따돌림과 멸시, 그것이 더욱 서러운 것이었다. 정규직 노조는 사측과 비정규직의 밥그릇을 놓고 협상을 했고, 그 결과 정규직의 고용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은 파리목숨으로 전락했다.

 

비정규 노동자가 분신을 기도했고, 급기야 지난 9월에 비정규 노동자였던 류기혁씨의 자살이 있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규직 노조의 연대투쟁은 겉치레에 불과했고, 정규직 노조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철폐구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가소로운 소리에 불과했다. 밥도 같이 먹을 수 없고, 작업복도 다르고 작업화도 지급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엄청난 임금차에 주눅이 들고,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해야하는 처지.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 무엇을 했던가?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 만들자는 당원의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어영 부영 세월만 보내다가 어거지로 만들었다. 울산 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현지 조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최고위원이 방문을 하고 의원이 가서 비정규직에 대한 강연도 하는 등 몇 가지 작업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게 뭔데? 비정규투쟁에 당이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에게 어떤 희망을 심어주었나?

 

솔직히 정규직 노조 눈치를 보면서 당원배가운동에만 열을 올리지 않았는가? "류기혁이가 무슨 열사냐?"라고 하던 정규직 노조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어떤 말로 이들을 비판했던가? 비정규투쟁을 왜곡하고 오히려 사측의 입장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민주노동당 당원이 있었다면 그들을 출당시키는 조치를 할 수 없었나? 지난 연말 현자비정규직 노조가 침탈당하고 간부가 구속되고 투쟁이 벌어지던 그 와중에 민주노동당, 국보철폐운동 하던 것만큼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었나?

 

노동자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 울산북구의 패배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가장 박해받고 서러움 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당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노동자의 정당이 과연 노동자의 정당인가? 민주노총의 눈치, 정규직 노조의 눈치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조합원이 아닌, 정규직이 아닌 저 밑바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 바로 그들이 우리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의원 한 명 없으면 어떤가? 우리가 의원을 내는 것이 목적이었던가 수단이었던가?

 

선거는 또 있다. 그러나 신뢰를 쌓는 것은 선거철 짧은 기간 동안에 공약 몇 개 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다 탈당하더라도 그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그정도로 망할 정당이면 빨리 망하는 것이 좋다. 민주노동당이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정당이라는 신뢰를 평소에 만들어놓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한나라당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철옹성 같은 자본가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혁명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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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7 02:32 2005/10/27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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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당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노동자의 정당이 과연 노동자의 정당인가? - 당근 아니죠...
    깨지기도 해봐야 어떻게 바꿀지도 알겠죠.. 근데, 저들이 그걸 알기나 할까요?

  2. 산오리/ 지켜봐야죠. 산오리님이 강력한 떼찌를 함 해주시면 정신을 번쩍 차릴 것도 같은데요... 어제 밤 보았던 '지도부'의 모습은 그저 차려놓은 밥상 숟가락질도 못하고 뺏겼다는 뭐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참 갑갑합니다. ㅠㅠ

  3. 이것이 민노당의 한계라고 봅니다. 올 것이 온 거라고 할 수 있죠. 이제 민노당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고 봅니다. 자본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투항하느냐, 아니면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느냐... 근데 전자를 택할 가능성이 짙다고 봅니다. ㅠㅠ...

  4. 이재유/그런데 제도권 정당이라는 것의 한계는 어느 정당이든 그 정당이 진행되는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거죠. 민주노동당은 그 오른쪽으로의 선회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우리가 오른쪽이라고 생각했던 것마저도 아직은 왼쪽의 것처럼 보이는 상태죠. 사실 이 부분에서 민주노동당은 과거 유럽의 좌파정당들과 같은 위기상황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모양이니... 소박한 바램은 처절한 투쟁까지도 말고 다만 상식이나 제대로 지켜줬으면 한다는 거죠. 에효...

  5. 이재유/ ↑ 답답한 맘에 그냥 자판기를 두드렸더니 무슨 이야긴지... ㅋㅋ 나중에 정리 좀 되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