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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섬

언젠가 인혜에게서 신촌의 섬 주인 아주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아마 간이 무척이나 나빠져서 회복가능성이 없다고 했었던 것 같다) 오늘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음... 가끔씩 찾아가던 뜨내기 손님이었지만, 맥주꺼내 먹고 팝콘 퍼먹으며 음악듣던 그 기억이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굉장히 강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던 곳.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그게 언제 였더라? 93년이던가? 한 선배를 저녁에 만나서 처음으로 술마시면서 느낀 그 강한 느낌의 술집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같이갔던 선배의 이름은 이미 잊어버렸어도. 술 다마셨어요. 하면 훠어이 훠어이 앉은 자리 털고 일어나 와서는 천천히 병을 세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친구분들과 술마시고 있을때도 안주 좀 않될까요? 하면 턱턱 일어나 두부 구워주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아마도 누구나 그곳을 잠시잠시 지나던 사람들은 잠깐 하던 일 그만두고 생각에 잠기지 않을까? 결국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섬을 찾은 강장관, 그리고 아름다운 섬 사람들

 

떠난 사람은 남은 이의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생채기를 남기기 마련이다. ‘운동권 사랑방’으로 불리는 서울 신촌의 까페 ‘섬’을 지키던 고 유향숙씨 역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마음에 추억 이상의 무언가를 아로새긴 듯했다.

게릴라성 장대비가 퍼붓던 지난 16일. 강 장관은 오랜만에 카페 섬을 찾았다. 이미 가고 없는 친구, 유씨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날 강 장관과 아름다운 재단은 신촌에 새로 옮겨 문을 연 섬에서 20여명의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유향숙의 섬 기금’ 기부약정식을 가졌다. 강 장관이 자신의 기부나 이번 행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섬 기금’은 강 장관이 지난해 11월30일 세상을 떠난 친구 유씨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재단에 기금 설립을 요청해 만들어졌다.

강 장관은 이날 약정식에서 고인을 추억하며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저와는 10년 지기 친구였습니다. 변호사 시절 만나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어요. 저는 빚 때문에 고생하고 그는 또 그대로 힘들어서 몇년 전부터는 자주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매년 12월31일마다 꼬박꼬박 섬을 찾았고 향숙이도 그날만은 저를 기다리곤 했습닌다. 자주 먹을 것을 싸주면서 이것저것 챙겨주곤 했는데….”

강 장관은 유씨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슬픔에 복받쳤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흐느꼈다. 보좌진에게 건네받은 휴지로 눈가를 찍어내던 그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음식 솜씨 좋았던 그가 나이 들어서는 한적한 곳에 밥집을 내고 싶어해 나중에 나도 신세를 좀 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씨를 일러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나 이외에도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 나눠주었을 것”이라고 했다.‘섬 기금’에 대해서도 유씨가 빌려갔다가 그의 동생들로부터 사후 돌려받은 돈의 일부라고 밝혔다.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던 탓에 유씨는 죽음을 앞두고 동생들에게 오래전 강장관에게 빌린 돈을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이날 강 장관은 내내 우울한 기색이었다. 약정식에 참석한 페미니스트 그룹 ‘언니네’ 회원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응하기도 했지만 매우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조용히 앉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차병직 변호사, 문학가 김정환씨 등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잔을 부딪치면서 가끔 고인에 대해 추억할 뿐이었다.

 

 

‘섬’은 강 장관과 인연이 깊다. 이곳은 80년대 초반 강장관의 전 남편인 출판인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씨가 처음 문을 연 것을 85년경 유씨가 인수한 뒤 운동권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으며 이름을 알렸다. 군부 독재라는 시대의 망령이 떠돌던 80년대부터 지식인들의 고담준론이 넘쳐흘렀던 ‘저항의 섬’이었고, 90년대를 지나면서는 과거의 아픔과 거리가 먼듯 흥청거리는 신촌 문화 속의 ‘섬’이었다. 그곳에 가면 말 수 적은 주인 유씨는 김민기, 한대수, 김광석의 엘피판을 올려 놓고 조용히 손님을 맞았고, 손님은 제 손으로 냉장고에 든 맥주와 잔을 가져다 술을 마시면 됐다. 돈이 없을 땐 외상을 그어도 좋았고, 안주 값이 없으면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공짜 안주, 강냉이며 새우깡을 무한정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섬’은 돈의 논리를 거부하는 자본주의의 ‘외딴 섬’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섬’을 사랑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 기형도, 문학평론가 이성욱이 한때 이곳을 거쳐갔고 공지영, 김인숙, 김정환, 성석제, 현기영 등 문인들과 운동권 사람들이 즐겨 찾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때론 통기타 반주에 맞춰 ‘운동권 가요’를 불러제꼈으며, 때로는 장탄식을 늘어놓으며 술을 마셨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그들 가운데 한명이었다. 특히 강장관과 유씨는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을 만큼 우정이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생전에 유씨의 습작시를 읽곤 했던 강장관은 채 피지 못한 문학도의 꿈을 헤아려 “이 기금이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지원에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관의 기금 출연에 이어 ‘섬’은 점점 나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해나가고 있다. 유씨의 사후 자칫 없어질 뻔한 이곳을 살린 것도 주변의 나눔 덕분이었다. 가게 건물의 철거와 이전에 따른 임대료 부족 등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평소 이곳을 사랑하던 지인 30여명이 쌈짓돈을 보태 자릴 옮겨 지난 13일 새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카페의 수익금 역시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진다. 손님으로 시작해 유씨의 뒤를 이어 세 번 째 운영을 맡은 박종만씨는 “수익금을 이 지역 독거노인 11분의 생계비 지원에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재단 역시 강 장관의 기금출연에 그치지 않고 섬 카페를 자주 찾았던 문인들을 중심으로 기금위원회를 구성해 기금 규모를 늘이고 지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인 유씨는 갔지만 그가 ‘섬’에 남기고 간 사람의 향기는 강 장관를 비롯한 ‘섬 사람들’의 기억에 시간이 갈수록 짙은 내음을 풍겨주고 있다. ?汰缺?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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