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버지

만화와 에니, 간혹가다 상영관 영화나 혹은 어둠의 경로를 통한 영화 감상, 내지는 쓰리쿠션 죽빵 정도를 문화생활의 대부분으로 여기며 살았던 행인. 그러나 환경의 변화는 삶의 질도 변화시키기 쉽도다. 풍부한 문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짝꿍 덕분에 공연예술의 세계로 문화생활의 저변을 확장해가고 있는 행인.

몇 편의 연극을 보면서 몇 명의 아버지들을 보게 되었다. 문득 이 아버지들을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1. 벽 속의 아버지(벽 속의 요정)

- 그가 벽 속으로 들어가게 된 시대적 배경은 분단과 전쟁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스페인 내전이지만. 이 아버지는 시대의 혼란함 속에서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간의 문제를 모른척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되고,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정치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죽음이라는 탄압의 종국을 맞아들여야 할 결정적 원인이 된다.

그는 자신의 집 벽 속으로 숨는다. 정치적 박해를 피한 도피. 그의 집은 이제 그의 피난처이자 동시에 유배지가 된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아내가 겪는 고통과 자신의 딸이 커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가족들에 대해 미안함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특히 딸에게 있어 그는 일종의 수호천사이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다. 그는 철저하게 시대의 희생양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신에게 용서를 빌기 보다는 자기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가족들에게 용서를 빈다. 기본적으로 그는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애정이 벽 속에 위폐되었고, 벽은 그에게 보호막인 동시에 그의 애정을 덮어버린 무덤이었다.

결국 그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였지만 요정이었을 뿐이고, 요정은 동화의 세계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다. 예외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거세당한 아버지. 그의 슬픔은 거기서 발현한다.


2. 경숙이 아버지(경숙이 경숙이아버지)

- 이게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것은 몰랐다. 드라마를 보지 않는 행인이지만, 아마 드라마로 방영되는 것을 알았다면 봤을지도 모르겠다.

경숙이 아버지는 일제시대와 분단, 전쟁, 그리고 전후복구시대를 걸치며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다. 격심한 사회적 혼란기를 거치지만, 그에게 이 사회적 혼란기는 가족과 집을 떠나기 위한 핑계이며 장치이다. 그에게 있어 사회적 문제는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탈출에만 묶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다. 그에게 있어서 집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때때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그 집은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 결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즉 돌아갈 곳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반드시 떠나야할 곳이다.

그의 가부장성은 독특하게도 유아적 아집에 사로잡힌 철저한 자기중심성에서 발현한다. '싱글'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가족을 통해 그 외로움을 치유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가족의 삶을 항상 곤궁하게 만들면서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가족이 자신의 삶을 방해한다고 여길 때마다 가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 적개심은 강렬한 지배의지로 표현된다. 아내와 딸은 자신의 말을 따라야만 하는 존재이며, 자신을 거추장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할 존재이다. 성장한 딸의 대학 졸업식장에 몰래 찾아와 선물을 전달하려는 그의 행동은 자기 반성의 한 상징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일종의 의례였을 뿐이지 결코 가족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아니었던 듯 하다.

그에겐 성장기에 가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관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신에 대한 관심과 그 관심을 충족시키고자하는 충동이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이면서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그의 슬픔은 가정사적 배경과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는 그저 아버지라는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경우에 성장이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3. 코델리어의 아버지(리어왕)

- 리어왕은 영국 어느 왕조시대의 왕이다. 권능을 가진 왕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 즉 모든 것을 다 가진자로서 리어왕의 자부심은 끝 간 곳을 모른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지위에 대하여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다. 다 가지고 있지만, 한시라도 그 사실을 주변에서 인정해주지 않으면 불안한 삶.

결국 그는 그 자신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린다. 왕의 지나친 인정욕구와 이를 둘러싼 갈등. 이러한 권력관계의 문제는 일개 범부의 가정사로서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체를 흔들고 전쟁을 유발하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리어왕 본인의 문제로 국한시킨다. 리어왕, 그는 자신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에 대한 의식보다는 자기 자신의 성찰쪽에 관심을 집중한다. 글쎄... 이렇게만 본다면 그가 왕의 자격이 있는 자인지조차 의심스럽다만...

그에게 있어 집, 혹은 궁정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에겐 그가 지배하는 모든 곳이 집이며 궁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왕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두 딸에게 나누어준 그 순간부터 그는 갈 곳을 잃는다. 애초부터 돌아갈 곳으로서의 집 혹은 궁이라는 것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그는 한 순간 돌아갈 곳을 찾게 된다. 여기서부터 그의 고난이 시작된다.

그의 가족, 즉 딸들(세 명이다)은 애정의 종착이자 분노의 발원이다. 지극히 사랑했던 막내딸은 자신의 귀에 달콤한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쳐진다. 막내딸에 대한 분노는 첫째딸과 둘째딸에 대한 권력의 분할로 귀결되지만, 비극은 여기에서 극단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가부장성을 삶 자체에서 드러내보였던 그는 바로 그 가부장성으로 인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한다. 물론 리어왕의 박탈당한 가부장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첫째딸의 사위와 대신의 아들이다. 이 묘한 아이러니. 그가 끝내 살아서 다시 누리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세 딸과 자기 자신의 비극적 죽음 위에서 왕실이라는 집단적 가부장성으로 되살아난다.


4. 세 아버지

아버지가 되고자 했지만 타의에 의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빼앗겼던 벽 속의 아버지, 아버지임에도 아버지라는 역할을 전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경숙이 아버지, 딸들에게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그 권위로 인해 스스로가 속박되어버린 리어왕.

문득 드는 생각은, 내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하는 것.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는 어떤 사람들일까라는 궁금증. 혹은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어떤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뭐 그런 것들이다. 이 세 아버지의 유형과는 다른 그 어떤 아버지였을 테고, 그런 아버지일 것이고,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겠다만, 과연 얼마만큼 다른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5. 그리고...

세 아버지가 각기 다른 유형의 아버지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 가지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아버지를 정점으로 묶여 있었던 가족의 문제다.

비록 사회적 탄압에 의해서였다고는 하나, 벽 속에 숨어있던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경숙이 아버지는 말 할 것도 없고, 리어왕 역시 자신들의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의 일정한 희생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아, 뭐 이 세 아버지는 다 옛날사람들이다. 옛날 사람. 이거 중요하다. 요즘 세상에서도 이 세 아버지처럼 가족들의 희생을 음으로 양으로 뜯어먹는 아버지가 있지는 않겠지. 그랬다가는 아버지고 뭐고 걍 문전박대 내지 쪽박이 되지 않을라나. 시대가 어떤 시댄데. ㅎㅎ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짝꿍님의 덕분. 이 자리를 빌려서 공개적으로 감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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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1 14:55 2009/03/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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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 연애를 해야......(ㅠ_ㅠ) 오랜 만에 놀러왔습니다. 잘 지내시죠(^-^)?

    • 무한한 연습/ 안녕하세요~~~~~~!!!!! 역시나 건재한 필력을 보여주고 계시더군요. 자주 들려주시고요, 저도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