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과 디클로로메탄의 거리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타인의 심리는 누군가에게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반도체 세척제로 쓰일 정도로 강력한 유기용제인 페놀은 비너스의 영약으로 둔갑한다.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페놀이 안면 피부조직을 용해시켜 평생을 돌이킬 수 없는 수치로 남을 때 문제가 된다. 그 전까지, 강남의 소문난 피부과 전문의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기 주머니를 두둑히 불릴 수 있었다.

 

신문은 대서특필, 방송은 동영상까지 동원하여 이 "참사"를 보도한다. 사람들은 혀를 차고, 한 번에 천 만원 이상을 들여 자기 몸을 망가트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현재를 안도한다. 행여 한 번이라도 그 유명한 병원을 찾으려 생각했던 사람은 물론, 시술을 받기 위해 돈까지 모았던 사람들은 철렁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욕망은 여전히 심장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그들은 페놀이 아닌, 이제와서 새삼스레 합법성을 쟁취한 다른 시술방식에 새로이 눈을 돌릴 것이다.

 

페놀만큼이나 위험한 유기용제인 디클로로메탄이 연일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지금 이 순간 경찰특공대는 화생방에 대응할 수 있는 방호구를 완벽하게 갖춘 채, 도장 2공장의 옥상으로 안착했다. 디클로로메탄을 피할 수도 없었던 쌍용의 농성자들은 이제 자신들과는 다른, 공권력을 상징하는 제복들이 휘두르는 곤봉 아래 쓰러져야할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수십일 간 파르티잔이었던 그들은, 당연히 파르티잔의 최후를 맞이한다. 합법의 징표로 제복을 입은 자들은 제복을 입지 않았던 사람들을 불법의 상징으로 처단한다. 분쟁의 과정에서 잠시 이루어졌던 노사 간의 협상은 처음부터 노조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없었다. 협상이라는 제스추어는 단지 노조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정부와 검경과 용역과 구사대와 사측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제의에 불과했던 것. 오히려 협상의 타결이라는 것은 파르티잔들에게 합법성을 부여하게 된다. 저들은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 편이 아닌 한, 파르티잔은 테러범일 뿐이다. 불법적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로 단죄해야만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자신들은 합법성을 획득한다. 그것이 곧 "법"이다.

 

언론은 도장공장 안에서 디클로로메탄에 녹아버린 살갗의 고통따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론은 경찰특공대의 활약상을 라이브 생중계한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찾던 70년대의 멘트만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들에게 농성과 진압은 일종의 게임이다. 아니 게임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것이 전투로 보여지는 순간, 대중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길을 잃게 된다. 적이 설정되어야 하는 전투가 개시되었을 때, 대중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보다는 유탄이 자신의 집으로 날아들지 않기를 먼저 염원하게 된다. 정부의 입장에서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다. 대중은 알아야만 한다.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 그것도 공포를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이 사태는 반드시 게임이어야만 한다.

 

페놀에 놀란 가슴들은 디클로로메탄에는 관심이 없다. 낙동강을 더럽혔던 페놀이 내 얼굴도 아닌 남의 얼굴에, 그것도 수만명도 아니라 기껏 십 수명의 얼굴에 떨어졌다 한들, 그것은 혹여 내 얼굴에도 떨어질 수 있는 공포로 전환된다. 하지만 도장공장에 갇힌 채, 씻어낼 물도 없는 상황에서 빗물처럼 쏟아져 내린 디클로로메탄으로 샤워를 한 수백명 노동자들의 고통은 나의 일이 아니다. 왜? 내 몸에 디클로로메탄이 떨어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파르티잔이 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합법성의 범주에서 제복에 의해 보호받을 것이다.

 

강남은 가깝고 평택은 멀다. 강남 대로변에 그럴듯한 간판을 내건 어떤 박피시술원은 내 삶의 연장선상에서 한 구획을 차지하고 있지만, 평택 언저리 317번 국도변 논밭에 둘러싸인 한적한 촌구석에서 벌어지는 잔혹극은 내 발걸음이 지나치지 않는 곳에 있다.  그것은 페놀과 디클로로메탄이 사용되는 용도의 차이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다.

 

그러나 그 간극을 인식하고 있는 사고의 기저에서, 두 가지 물질이 모두 검은 황금에서 함께 웅크리고 있었던 동족이었음은 망각된다. 서울의 강남이나 경기도의 평택이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언젠가 한 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던 바로 그 협소한 공간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애써 기억에서 지워진다.

 

그리하여 공포는, 내 발길이 머물 수 있는 장소 안에서 현현한다. 그 경계를 벗어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경계 바깥에서 벌어진 참혹한 공포의 살육이 언젠가 그 경계 안으로 들어올지라도 지금 이 순간, 격지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생한 일들은 모두 남의 일이다. 내일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은 혹여 그것이 내 일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외면은 죄가 안 된다. 그리고 그 외면은 정부에 의해 보호되고 보장된다. 정부는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거기에 합법성을 부여한다. 가책에 못이겨 외면을 거부한 채 현장으로 달려가는 순간, 거기서 불법성이 발견되고 정부는 가차없이 이를 단죄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피켓을 들었던 사람들이 끌려 나가듯이.

 

조만간, 살육의 공포는 잊혀질 것이다. 당사자들이 가슴 속에 안고 살아야 할 처절한 트라우마는 오직 당사자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겉으로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것이다. 물론 오늘 이 암연 가득한 폭력의 난무 후에, 누군가는 음흉한 웃음을 뒤로 흘리며 두둑해질 주머니를 만지작 거릴 것이다. 몇 백명의 눈물은 어차피 중무장한 제복의 힘으로 억압될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 한 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에게 볼트를 날린 사람들은 새롭게 창출되는 이윤을 위해 현장의 부속으로 자기 운명을 허락할 것이고.

 

유난히 긴 장마는 페놀과 디클로로메탄과, 그리고 눈물들까지 씻어갈 것이다. 터질듯한 분노는 남겨줄 아량을 베풀어 줄 것인지. 그 분노마저 희석되고 용해되어 씻겨 나갈지. 잘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8/04 14:37 2009/08/04 14:37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216
  1. 동료에서 적으로 돌아서버린, 구사대들 참 거시기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되는것이겠지만.. 그 사람들도 다 해고당했으면 좋겠네요. 참..

    • 글쎄요... 저는 차마 "니들도 당해 봐라"라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오히려 살아남은 안도감이라는 것의 뒷면에서 씻을 수 없는 죄스러움을 간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같이 살아야 하는데... 너무 슬프고 힘든 시간이네요.

  2. 에휴 ㅠ_ㅠ 요즘엔 퇴근하고 맨날 평택가네요; ㅠ_ㅠ;

  3.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민주노총 중앙..

    쌍차 동지들은 싸울만큼 최대한 잘 싸우고 있습니다. 단전 단수가 되는 상황에서도 경찰과 용역깡패의 폭력을 몇번씩이나 격퇴 시켰습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 원칙이 굴절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에서 소위 운동좀했다고 하는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입니다. 대중을 이끌기는 커녕 대중을 막아서는 민주노총 정말 지도력 없는 집행부의 무능함이 이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 쌍용차 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보여준 여러 문제에 대해선... 답답하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그나저나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군요.

  4. 디클로로메탄..저거 그냥 하수구로 흘러들어가겠죠? ㅠ.ㅜ

    • 글쵸... 노동자들의 몸을 훑고 하수구로 흘러들어 강물을 타고 대양으로 들어 가겠죠.

      오랜만이네요. 자주 뵈어여.

  5. RSS를 쓰니까 글만 읽고 덧글은 안남기게 되더라고요..저는 행인글 꾸준히 잘 보고 있삼~ 제 블로그 포스팅이 워낙 지지부진하여 오랜만이라 느껴질듯도..쿨럭~

    • ㅎㅎ
      알겠심다. 본지도 오래되고 아무튼 넘 반가웠어요. 블로깅할 시간도 없이 바쁘셨다고 알겠습니다. 날도 더운데 건강하시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