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할 수 있는 항의와 수렴할 수 없는 항의

밤 늦게 개설된 강의에 온 사람들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있어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낮에는 생업에 바쁘고, 남들이 일 끝난 후 한 잔 하거나 또는 일찌감치 쉬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뭘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투잡 쓰리잡을 뛸 수도 있는 시간. 그 시간에 책을 펴들고 강사의 구라를 들으며 필기를 한다.

다른 경우에는 휴일에 강의가 개설되는 때가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낮에 수업이 진행된달 뿐, 기실 그 휴일의 낮은 평일의 밤이나 매한가지고, 그리하여 휴일 낮에 수업을 듣는 사람들 또한 힘들고 고된 몸과 마음을 이기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다.

원래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르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잘 들으면 나중에 성적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성적이 안 좋게 나온다. 수업을 그렇게 진행하면 된다. 결국 출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충실히 했느냐가 관건이 된다.

하지만 출강하는 대학에서는 성적관리 등을 이유로 출결을 매우 엄격히 체크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거기에 맞춰준다. 시간마다 출설을 부르고 체크를 한다. 그러다가 지각한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출석으로 고쳐주고. 간혹 세 시간 연강 하다보면 사정에 따라 중간에 한 시간 정도는 출석을 건너 뛸 때도 있다.

한 반의 수업이 종료된 시점에서, 첫날 첫 강의시간에 지각을 하여 공지를 제대로 못 들었던 학생이 제출하라는 페이퍼를 모르고 있다가 끝날 때야 알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처해했다. 그래서 사정이 여하하니 메일로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하고 강의실을 빠져나오는데, 다른 학생이 막아서며 항의를 한다.

항의의 내용인 즉슨, 편의를 너무 봐주는 거 아니냐는 거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자신은 일하고 공부하느라 4시간 밖에 잠을 못자면서 보고서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메일로 내게 해주는 거, 게다가 그 사람은 지각을 해서 1시간 결석으로 쳐야 하는데 그것도 출석으로 해주면서 편의를 너무 봐주는 거 아니냐는 거다.

어이가 없어 잠깐 말문이 막혔다. 뭐 이런 저런 경우를 들어 따지기도 뭐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래서 성적처리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다른 사람들이 출석을 했느니 마느니 하면서 따지는데, 아, 이거 그렇다면 이 학생은 들으라는 수업은 듣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출석했는지 안 했는지만 보고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내가 체크를 했는지 안 했는지까지 확인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이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물론 그 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열심히 한 것에 비해 다른 이들이 덜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더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학생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애초 출결은 정확하게 체크를 했고, 다소 늦은 사람은 이미 출석부에 지각여부가 체크되어 있다. 일단 행정적으로 문제제기를 당할 이유가 원래 없었다.

그리고, 사정이 있어 메일로 대체하게 한 것을 편의를 봐줬다고 한다면 그 학생은 출석 다 했는데(지각은 있지만) 성적 받지 말라는 건가? 이런 저런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강사가 학생의 편의를 봐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 학생을 그냥 보내고 나서 한동안 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헌법을 강의하면서, 적어도 내 강의를 듣는 사람은 옆의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주변의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면서, 배려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강의해왔다. 그런데 이런 항의를 듣는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강의를 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나는 강읠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보다. ㅎㅎ

예전에는 웬만한 일이면 아무리 빡이 쳐도 한 5분 지나면 다 잊혀지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시간이 꽤 오래 가게 되었다. 간이 쪼그라든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만, 아이고, 이렇게 소심해서야 뭘 하겠다는 건지. 암튼 그건 그렇고, 항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그 항의는 수렴할 수가 없다. 나는 앞으로도 학생들의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고, 공부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나와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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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17:26 2019/04/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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