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배신한 것인가, 노동을 배신한 것인가...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도공 점거농성은 어떤 수순으로 이어질까? 90년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일관된 수순을 전제로 예상한다면, 역시 지도부급 활동가들 기소 및 손배소, 업무방해죄로 처벌 및 손배가압류 결정, 이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면서 "노동친화적 정부"를 이야기했던 이 정권에서 뭐 앞서의 정권과 다른 태도를 취할까?

다시금, 법은 그것을 만든 자들의 이해에 복무한다. 그리하여 법은 자신을 창조해낸 기득권세력의 모든 행위는 합법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자신을 만드는 자들의 이해에 반하는 자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은 범죄자를 만든다.

"자본주의 민주국가에 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그리고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283쪽.

만일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들어서면서까지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포기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범법자가 된다. 21세기에 들어와서조차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속옷차림이 될 수밖에 없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처럼.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가난은 이제 범죄가 되었다"라고 탄식한다. 어디나 마찬가지다. 길거리의 노숙자들은 공안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범죄자로 처벌할 수 있다. 왜?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노동으로 세계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으로 밀려나고 밀려나 결국 여전히 노동하면서 그 노동으로 인해 범죄자로 처벌될 수 있다는 건 이 얼마나 놀랍고 어이없는 일인가?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이가 갈린다. 튀어나오는 욕설을 참는 게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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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14:30 2019/09/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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