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와 노동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교과서에 나오는 교과서적 논리를 반복했다. 이렇게.

"대의정치가 충분히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들 때, 국민들이 직접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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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기실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대의정치"의 상징 중의 상징인 대통령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남새스런 일이다. "대의정치"의 교본이 되어야 할 자신이 결국 민의를 반영하는데 실패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지금 문통이 할 일은 거리로 뛰어나와 양쪽으로 갈려서 난리가 난 시민들을 상찬할 일이 아니라 뚝배기 찧어가며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도 해야 할 일이다.

헌법 교과서는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직접민주적 절차의 도입을 제시하곤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의 3종 세트인데, 현행 헌법에는 국민투표만 있고 다른 건 없으며, 그나마 국민투표도 대통령이 하고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거라 본래적 의미는 없다.

문통의 발언이 헌법교과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문제인게, 헌법교과서는 절차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이렇게 양분된 국론이 집단적으로 진영을 이뤄 직접적 물리력을 동원한 내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법전문가인 문통은 정치적 위치에 걸맞지 않은 견강부회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곡학아세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통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직접 목소리를 내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린다"고 까지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문통이 추진하는 건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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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애로영화 폭발하는 소린지 모르겠다만, 기업의 애로화를 위해 노력하라는 문통의 발언 중 특기할 것은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기존의 방침을 뒤집어 엎겠다는 것이다.

200년에 가까운 노동운동의 핵심 테제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다. 이게 옛날 18세기에 하루 16시간을 감금상태에서 피죽도 안 먹이면서 등골을 빼먹었던 당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발전의 임계점에 도달하여 경제위기에 봉착한 현재에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지속을 위해서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게 노동시간 단축이다.

노동친화적 정부를 모토로 등장한 문통이 결국 추진하는 건 노동시간을 지난 정권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건데, 아니 뭐 이따위 발상을 하면서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칭찬하고 있는 건지. 문통식 발상이 정상추진되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시간과 비용이 없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거. 그렇게 되면 직접민주주의의 긍정적 측면 따위는 그냥 개소리가 된다.

이런 식의 기만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모르겠다만, 문통의 태도를 보더라도 지금 거리의 난장판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국 인선이나 검찰 개혁은 이 땅에 실존하는 삶들의 실질적인 존망과는 거리가 멀다. 이건 오히려 시민들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고, 누차 이야기하지만 결국 기득권 간의 세력분점을 재구성하는 과정일 뿐이다. 거기에 수백만이 휩쓸리는 이걸 광기라면 광기라고 할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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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8 13:24 2019/10/0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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