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은 누구에게 손해인가?

내가 정치를 실무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후, 매우 모순적이지만 바로 정치의 목적에 따른 가장 합리적 정의라고 생각했던 건, 정치는 갈등의 폭로과정인 동시에 갈등의 해소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적 자원의 합리적 분배과정이 정치라는 고전적인 정치의 정의와는 달리, 나는 그 과정은 갈등에 의하여 드러나게 되고 그 갈등을 어떻게 사회구조적 합의 안에서 해소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느 것이 정치라고 이해했다.

그러다보니 정치판에서 서로 치고 받는 것은 그 나름대로 정치의 과정이고, 동시에 실컷 싸우는 듯 싶더니 서로 웃고 악수하는 것도 또한 정치의 과정일 수가 있었다. 이런 이해가 된 이후에야 나는 비로소 당장 죽일듯이 드잡이를 하다가 뒤로 돌아서 형님 아우 하는 저 희안한 정치인들의 행동까지도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게 그저 쑈로 끝나는 것이라면 그건 쑈일 뿐 정치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정치는 그래서 한 큐에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과정은 될 수가 없다. 지난한 과정과 상호 간의 노력에 따라 진보의 입장에서는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고, 보수의 입장에서는 그 변화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겠다. 상대가 있기에 정치가 있는 것이고, 그 상대는 나름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편을 보다 보면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만, 그래도 그것마저 정치라고 생각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힘겨루기의 양상 속에서 지배적인 힘을 가진 당사자가 정치라는 명목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주체를 배제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패권의 작동이다. 패권적 강압행위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정치라는 고유의 작동원리는 사라진다. 그저 생존경쟁만이 남게 될 뿐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스레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원리가 관철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정치의 원리에서 보자면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연 어떤 정치주체가 득을 보았으며 어떤 정치주체가 잃은 것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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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만을 놓고 보면 더민당과 자한당의 패권주의로 인하여 정의당이 독박을 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전반적으로는 원래 안보다 대단히 후퇴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의당이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의당은 더민당이 제시하고 있는 50% 연동과 30석 상한(cap) 안에 따르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자한당이나 더민당의 입장에서는 여론의 질타를 우회하면서 자신들의 의석을 최대한 확보했다는 성과를 거뒀다. 어찌 보면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누가 완전 손해고 어느 누가 다 먹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정의당의 불만과는 별개로, 이번 선거법 관련 소동은 좌우의 이해득실로 봤을 때 제로섬게임이었을 뿐이다. 어차피 저 구조 속에서 진보가 덕을 보는 수준이라면 보수 또한 덕을 보게 된다. 이건 가치관의 관철이 달린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세력분점의 방식을 변경하는 것일 뿐이니. 오히려 이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들은 유권자들이다. 

여러 요소 중 하나의 중점적 요소를 주제로 갈등을 폭발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다른 요소,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이라든가 노동환경 개선 등과 같은 사안들은 오히려 방기되거나 개악되는 일이 벌어졌다. 현실정치권의 선수들로 봤을 때는 태산이 요동을 치는 듯한 난장판의 외관에 비했을 때 까놓고 보니 별 일 아닌 수준의 주고받음이 있었을 뿐이고.

그리하여 전체적인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둘러보면, 이번 선거법 개정과정은 다른 주요 문제들을 덮어버림으로써 기성 정치세력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던 반면, 조금이라도 나아진 세계를 바라는 다수 대중의 입장에서는 뭐 하나 해본다고 하다가 다른 건 다 놓쳐버린 상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시적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정의당의 윤소하가 말했다는데, 이게 뭐 말인지 됫박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이번주 한 주가 누군가에게는 엄청 긴 한 주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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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4:10 2019/12/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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