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물신주의의 또 다른 사례
앞서 선거법 관련하여 제도물신주의의 일단에 대한 비판을 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패스트트랙에 보면 선거법 말고도 관심을 유발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검찰개혁이다. 이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사람들이 꼽은 것이 바로 공수처. 그런데 공수처 역시도 제도만능주의 또는 제도물신주의에 빠진 가치를 몰각한 입법이 아닐지 의심스럽다. 관련해서 비슷한 생각이 있어서 연결.
홍성수: 직권남용죄 등과 공수처(제목은 내가 임의로 달은 것이며 원 글에는 제목이 없음)
공수처 관련 법안의 내용에 대해선 홍성수 교수와 많이 다른 의견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식에 대해서만큼은 전적으로 같은 의견이다. 이게 법을 아무리 만들어놔봐야 결국 누가 공수처장이 될 것인지, 정권이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에 결과가 달라지게 될 수 있다. 문제의식의 근간에 대해서는 연결한 글을 보도록 하고.
그렇다면 유독 이번 20대 국회 말기에 들어와서 이런 류의 법안들이 계속 걸리는 이유가 뭘까? 얼핏 보면 이것은 제도화의 문제이므로 의회정치의 단면일 뿐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법을 만드는 과정은 정치적 과정이며, 현 상태는 정치적 과정이 작동하는 일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화의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기 위하여 사투를 벌이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정치라고 여길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은 게, 바로 이러한 과정이 정치의 상실이며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유발하는 실증적 사례이다. 정치의 결과물이 비록 다수의 견해가 최대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다수가 패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소수의 이해를 가능한 한 수용하는 전제에서 결과를 창출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의회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정반대로 정치가 그토록 회피해야만 하는 패권의 작동이다.
말이 좋아 패권(覇權)이지, 이거 그냥 까놓고 말하면 조폭의 논리다. 이긴 놈이 다 먹겠다는 거. 진 놈이 다시는 눈깔도 치떠올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 이건 정치가 아니다.
패권의 작동을 정당한 정치적 과정으로 포장하는 것이 바로 제도다. 법은 얼마든지 법의 얼굴을 하고 나타날 수 있다. 통상의 법률처럼 조문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패권의 작동을 숨실 수가 없다. 무서운 점은 대중은 패권의 작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대중의 정치혐오가 발생한다. 대가리수로 밀어부치는 것에 대해 대중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냥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때 바로 '그놈'들이 지들이 한 짓을 정치라고 우겨대니 대중이 정치를 곱게 볼리가 없다.
난 공수처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이게 '사직동팀'과 뭐가 다르냐고 항변했었다. 그럴 거면 사직동팀은 왜 없앴던 걸까? 어차피 똑같은 짓 할 거 그냥 놔두지.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면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한 형법 교수 한 분은 나의 질문에 대해 "그래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두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지금 검찰은 견제장치따위 아무 짝에도 소용 없을 정도의 권력을 가졌다. 견제가 아니라 아예 권력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견제가 아니라 권력을 죄다 분산시켜버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걸 견제한답시고 제도를 약간 바꾸는 것으로 해결하겠다는 나이브한 발상에 동의하진 못하겠다. 그 제도, 어차피 정권 바뀌면 말짱 도루묵이다. 제도를 넘어서는 정치, 그 정치에서 만들어진 최소한의 결정체를 제도화하는 정치, 지금 그 방법을 시급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