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는 절망의 벽, 어쩌면 보상심리
냉소와 비난은 그동안 많이 했으니 잠깐 쉬자. 나라고 뭐 남들 비아냥대는 게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당분간 현장을 떠난 입장이지만,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아프니 그런 거다. 그렇기에 난 앞으로도 아플 때마다 뭔가를 냉소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은 좀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자.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분당하자마 치른 그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2.94%의 지지를 받았다. 지역구는 모두 낙선. 그나마 단 1석의 의석이라도 바라봤던 정당명부 투표에서 진보신당은 0.06%가 모자라 의석을 만들지 못했다. 독자적인 진보정치의 기획(그 당시 진보신당은 이를 '진보의 재구성'이라고 했지만, 난 '재구성' 따위를 믿지 않았으니)과 실천이라는 의욕과 의지는 그 이후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불과 3년만에 당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갈갈이 찢겼으며, 노심조는 도로민노당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 선거결과가 좋게 나왔더라도 어쩌면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방향은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어차피 진보신당을 일종의 가설정당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았던 심상정 등이 진보신당을 완전체로 성장시킬 수 있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쨌거나 그 당시, 선거가 끝난 후 엄청난 상실감을 맛봐야 했다. 술을 끊고 있던 중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아마 술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노심조가 떠나간 후, 홍세화 대표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심정, 오르기 싫은 자리에 오르는 심정으로 억지로 대표를 떠맡은 상황에서 진보신당은 19대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1.13%. 처참할 지경이었다. 기독당보다도 저조한 득표율. 당의 존재의의에 대한 대중의 문제제기였다.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당 조직의 문제, 대표단의 성격과 활동방향, 사회당과의 합당 등 여러 요인이 과연 이 당이 선거를 치를 생각이 있는 당인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의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실망하지 않으려 해도 실망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결과였다.
2014년 지방선거는 추락한 당의 위상을 재확인하게 만들었다. 이 지방선거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나중에 회고록을 쓴다면 반드시 빼먹지 말고 끼워넣어야 하는 부분이 되었다.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꾼 상태에서 진행된 이 지방선거는 정의당과 통합하자는 자들의 사보타지, 선거방침을 수시로 어기면서 당론과 배치되는 행위를 자행하는 사회당계와 그 부역자들(이자들이 지금 노동당 대표단 등을 맡아 개혁을 운운하고 있다), 산술적 계산조차 무시한 망상적 선거공학을 과학이라고 밀어부치던 기획자들(이들 중 상당수는 정의당으로 갔고), 네임드 하나 없이 맨땅에 박치기 하듯 진행된 선거운동, 게다가 직전 터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신적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정당지지율 1.17%를 받았고.
2014년 지방선거 직후 선거참패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했다. 당시 당 대표였던 이용길 대표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이야기였다. 난 두 가지 이유에서 이를 반대했고, 당대표의 임기를 채우기를 요구했다. 첫번째 이유는 지금 물러나게 되면 정의당 결집파와 구 사회당계의 지원을 받는 소위 독자파 간의 충돌로 인하여 당이 초토화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그 어려운 상황에서 정당지지율을 노심조가 있을 때 치룬 총선보다 더 많이(불과 0.04%에 불과하지만) 얻었다는 것은 오히려 선방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부 논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역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개표 직전 동네 민중의 집인 랄랄라에 모여 단체로 개표방송 시청을 준비하던 중 한 당원이 "이번에 정당지지율은 몇 % 나올 거 같나?"라고 질문하기에 "솔직히 말해 1%를 넘기면 잘 나온 거다"라고 답했다. 그 때 그 당원의 얼굴 표정은 아마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그 이후 그 당원은 탈당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을 군소정당의 당원들이라면 수도 없이 겪었을 터이다. 가루가 되다시피 쪼그라들어 진보신당과 합당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구 사회당도 그렇고. 진보신당과 마찬가지로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당명까지 내릴 뻔했던 녹색당도 그렇다. 언더에 프락션을 일삼던 부역자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를 바꾸겠다고 뻘소리를 하고 있는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노동당은 더민당 위성정당 논의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쓰는 듯하긴 한데. 오히려 기본소득당은 묻어가고파서 틈을 보는 것 같다. 이야, 자본가 김길오가 제 세대에서는 망했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의원 하나 배출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하물며 자본이나 인물 없이 그저 의욕만으로 신생정당을 건설한 사람들로서는 아마도 이 3%의 벽이라는 게 넘지 못할 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물론 선거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종교적 열망에 사로잡혀 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허본좌당 같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이 공포의 벽 앞에서, 아마도 미래당이나 녹색당 같은 정당의 구성원들은 우회를 고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중당 역시 어떨지 모르겠다. 현역의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민중당은 그나마 있는 의석마저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그나마 한자리 하던 떨거지들 죄다 끌어모아놓은 민생당도 덜덜 떨면서 마빡을 싸매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들의 절망이 결국 더민당 위성정당이라는 유혹에 눈길이 가도록 만든다. 저기라도 가서 있으면 그나마 자리보전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저주받을 3%의 벽을 우리 힘만으로는 넘기 힘들지만 더민당 시다바리 노릇이라도 하면 좀 어떻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꼴랑 의석 하나라도 건져보겠다고 저 난장판을 치는 건 그냥 이념과 가치가 없는 자들의 허접함일 뿐이다. 아, 의석지향이 그들의 이념이고 가치일런지는 모르겠다만. 뭐 어떻게 해서 언급된 이 모든 당들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 더불어녹색기본소득민중민생미래당, 줄이면 더민당 위성정당이 만들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진입장벽을 없앨 거냐 말 거냐, 둔다면 어느 정도로 할 거냐는 건 제도의 문제이다. 원칙이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 번번이 절망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은 위축되기 십상이다. 그 위축의 결과는 이념이고 가치고 다 버리고 저 담장을 한 번 넘어보는 것만으로 소원성취하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신념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저나 냉정하게 이야기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키보드 두드리다보니 또 시니컬해지누만. ㅆ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