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 없다만
어제 페북 복귀 여부에 대한 고민이 좀 들었다. 실은 조금이 아니라 많이. 고민의 계기는 어제 오전에 진행한 노동정치사람 유튜브 파일럿 녹화였다. 원래 노동정치사람의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 유튜브 채널을 활성화시켜보자는 취지와, 이를 위해 조금은 가볍게 요즘의 사안들에 대하여 만담처럼 해보자는 취지로 일단 파일럿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러가지로 모자란 부분이 많다. 아무리 가볍게 그냥 만담하듯 요즘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위한 것이므로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실 이러한 준비를 충분히 하기에는 나도 그렇고 역량이 많이들 부족하다. 최소한의 시놉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미리 꺼내놓았던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는 아예 이야기 꺼내기조차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뭐 어쨌거나 일은 시작했고, 그렇다면 이 일이 잘 진행되도록 해야 할 판이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서 만들었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좀 알려야겠는데 방법이 없다. 이걸 무슨 광고처럼 "~에게 참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말 할 수가 없네" 뭐 이런 시덥잖은 태도로 일관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기껏 생각나는 게 페북이라도 다시 들어가 포스팅을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던 거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페북에 들어가 대체 사람들이 뭔 소리를 지껄이고들 있는지 들여다고본 한다. 게중에는 좋은 글들도 보이고, 몰랐던 정보도 보인다. 그런 글들은 슬쩍 긁어다가 갈무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페북은 자의식 과잉의 조울증세를 보이는 자들의 아무말대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거기 낑궈 들어가서 "제가요, 이번에 유튭을 하는데요, 한 번 봐주세요" 이러는 것도 거 참 낯간지럽고...
기실 이렇게 뭘 하다 만 곳에 다시 발을 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난 더구나 페북 더 들여다봤다간 뚝배기가 깨질 것같아 원래 고향인 진보블로그로 도망친 것인데, 여기 돌아와보니 이렇게 뻘쭘하게 '귀향'하는 것도 썩 좋은 모습은 아닌 듯 하다. 내 비록 온라인에서 키배를 하며 키워로 자라왔지만 그동안 온라인에서 학을 뗄 일들 숱하게 겪은 터라 더 이상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엮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이 블로그 다시 운영하면서 트랙백과 덧글을 막아버렸다. 그냥 내 일기장에 내 이야기 쓰는 걸로 만족하고 싶어서.
소통의 장이라고 온라인을 추켜세우지만, 소통은 뭔 소통. 온라인이 뭔 소 여물통도 아니고... 온라인이 소통의 장이라는 말은 내가 볼 때는 조국이 정의롭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자기확신의 재생산만이 무한반복되는 확증편향의 파편화가 오히려 온라인의 특성이라고 보이고, 되려 이젠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투쟁보다는 소통에 더 적절하다는 믿음이 쌓여가는 중이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쥐뿔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어쩌구 하는 통에 좀 이상하게 되긴 했다만.
그저 온라인의 플랫폼 한 두군데 전전하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하물며 자신의 한 시절을 통으로 갖다 바친 곳에 대한 애증이 있을 때 그곳을 떠나기도 어렵고 그곳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난 노동당이라는 이름에 대해 누구보다도 애착을 갖고 있지만, 지금의 노동당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며 그 당에 나의 지지를 보내지도 않을 거다. 아직도 그 당에 남아 저 부역자치들 틈바구니에서 고역을 치르고 있는 장규형에게는 무척 미안한 일이지만, 난 장규형이 노동당을 지지하라는 저 요청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녹색당이 더민당 위성정당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기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의원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의원 하나 만들기 위해 양아치의 가랑이를 기던 한신의 심정으로 더민당 위성정당에 들어간단다. 글쎄다. 그 효과가 과연 그들이 기대한 것처럼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더민당의 그늘로 들어가면 다시 독자적인 녹색의 깃발을 들기는 대단히 어려워질 거다. 그렇게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정치적 인간의 유물론에 대해 고 이재영은 뼈때리는 말들로 채찍질 했더랬다.
재영형은 이 글에서 "사람의 이념과 정책과 문화와 소신과 언행이, 처한 곳의 향취에 젖는다. 이것이 돌의 물리학과 인간 유물론 사이의 차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렇게 그는 노회찬과 주대환으로 상징되는 떠나간 자들의 이후를 예언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노회찬은 아예 세상을 떠나버렸고, 주대환은 재영형의 예언을 실현하고 있다.
시일의 촉박함은 결단의 순간을 기다리지 않으므로, 민중당은 더민당 위성정당에 합류하기가 어려워질 듯하다. 기본소득당은 아직까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제 아침 노동정치사람 유튭 파일럿 녹화에서 했더랬다. 진도가 어떻게 나갈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예측을 할 수 없다. 파일럿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고 아예 깔끔하게 폐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면 다시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거다. 뱉은 말엔 책임이 따르고 면책을 위한 시간의 되돌림따위는 현존하는 어떤 우주물리학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의 계절엔 언제나 절망과 회한이 함께한다. 아예 등을 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처절하게 뛰어들 수도 없는 경계에서 나는 다시 재영형의 글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