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구라5. 조국의 사명?
조국의 사명은 검찰개혁이지 뭐. ㅋ
아, 졸라 썰렁한 농담은 그만 두고. 현행 헌법은 조국(祖國)의 사명을 명시하고 있다. 바로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이다. 일단 민주개혁이야 뭐 예나 지금이나 양념처럼 낑궈 넣는 대목이니 그 의의와는 별개로 논의의 가치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니 여기선 제껴 놓고, 다른 문제와 결합해서 논의하자. 예를 들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이야기할 때, "민주개혁"이 그럼 뭘 의미하는 거냐를 따져보자.
자, 그래서 바로 "평화통일"로 들어가보면. 흥미로운 건 헌법 전문에서 "평화통일"이라는 단어가 처음 삽입된 건 유신헌법이라는 거다. 뻑하면 미친 개는 몽둥이로 때려 잡아야 한다면서 공산괴로도당 박멸을 공공연히 외쳤던 박정희가, 그것도 지 종신 대통령제를 획책하면서 만든 유신헌법에 "평화통일"이라는 구절을 집어 넣었다는 것이 여간 재밌지 않다.
유신헌법은 민주개혁이라는 단어는 없었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하여 평화적 통일이 조국의 사명임을 천명했다. 전두환이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했다. 예전 '국민교육헌장' 첫머리의 그 유명한 문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구절을 그대로 갖다 박았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나를 낳으셨는지는 부모님께 물어본 적이 없다만, 아무튼 국민학교 중학교 다니면서 이거 외우느라 뺑이 쳤던 걸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도대체 민족중흥은 왜 내 사명이 되어야 하는가?
그건 그렇고, 이렇게 군사정권에 의해 조국의 사명이 되어버렸던 평화적 통일은 현행 헌법 전문에서 그대로 존치되었다. 게다가 현행 헌법은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현행 헌법 개정시 처음으로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제헌헌법에서부터 전두환 헌법에 이르기까지 본문 규정으로 통일 내지 평화통일이 언급되지 않았다.
기실 이 조항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이전의 헌법을 만든 정권들과는 달리, 6월항쟁과 789대투쟁을 통해 탄생한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정권은 조선을 평화적 통일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서 진일보한 내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3조와의 관계에 있어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현행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되어 있다. 주권이 미치는 범위를 영토라고 할 때, 헌법은 엄연히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일대를 영토로 보고 있는데, 정작 휴전선 이북은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으로 존재하고 있다.
왜냐? 휴전선 이북을 조선이 실효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조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조선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불법 점령하면서 헌정체제를 위협하는 반역도당일 뿐이다. 어느 나라든, 반역도당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는 나라는 없다. 역도는 처단의 대상이지 화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여기서 멈추고.
그런데 제4조는 평화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제4조에 따르면 휴전선 이북의 조선은 평화통일을 논의하기 위한 파트너이고, 그 파트너가 평화적으로 동등한 지위에서 통일을 논의하려면 당연히 국가 대 국가의 지위에서 서로를 마주해야 한다. 더구나 한국과 조선은 이미 UN 동시 가입국이다. 국제적으로도 실질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거다.
그러다보니 제3조에 의하면 조선은 제압해야 할 반란세력이고, 제4조에 의하면 평화통일을 함께 할 국가 당사자이다. 이 모순은 현행 헌법구조에서 해결될 수 없다. 헌법학의 다수설이나 정치학의 일설에 의하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논리가 바로 남북한 특수관계론이다. 이 특수관계는 '남북화해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명정되어 있다.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
즉, 남북한 간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과 형성되는 국제관계에서 쌍방은 어떤 관계인가?
헌법학 다수설 등의 한계가 여기서 나온다. 이 다수설은 특수관계론을 통해 제3조와 제4조의 모순은 해결된 것이라고 하나 해결은 커녕 문제만 더 복잡해진다. 남북관계에 있어 조선이 '반국가단체'로 활동하는 규범영역은 제3조의 적용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통일의 동반자 협력자로서 활동하는 규범영역은 제4조의 적용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데, 이게 무슨 짬짜면도 아니고 반반치킨도 아닌데 어떻게 같은 대상에 대해 정반대의 규범설정이 가능한가?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는 내부적 관계니 특수관계니 어쩌구 저쩌구 해도 결과적으로는 국제관계에 있어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범주 안에서 언제나 움직여왔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리만 특수관계에서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뿐이지 국제관계에 비추어보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일 뿐이다.
더구나 이 제4조에는 더 큰 맹점이 있는데, 평화통일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장을 바꿔서, 조선이라면 어떨까?
조선의 2019년 사회주의헌법에 따르면, 그 전문에서 조선은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공화국'은 조국통일의 강위력한 보루고, 통일운동은 전민족적 운동이다. 제9조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조선도 통일을 중차대한 민족적 과업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라기보다는 김일성 김정일 주의 체제의 조선이 추구하는 통일은 바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에 기반한 통일이다.
조선의 통일방침과 한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방침은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 것인가? 쥐뿔, 그럴 가능성은 코딱지만큼도 없다. 이건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하다. 김대중 김정일의 6.15 선언이 왜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이미 양국의 헌법에 있다. 한국의 헌법 제4조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할지라도 '평화통일'의 방식이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는 전제가 된다. 조선의 헌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들이 통일을 민족 지상의 과업 어쩌구 해도 결국 조선의 통일방안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기보다는 김일성 김정일 주의가 관철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개헌을 하게 된다면, 우선 조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가 헌법에 담겨야 한다. 조선을 국가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영토 일부를 무력점령한 채 국가를 참칭하면서 헌정질서를 위협하고 있는 반란세력으로 볼 것인가? 다음으로 헌법의 영토규정과 통일규정을 어떻게 손봐야 할 것인가를 봐야 한다. 영토규정을 저렇게 명확하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헌법에 못박아 버리는 것이 적절한가? 조선과는 마땅히 물리적으로 영토통일을 해야만 하는 건가?
지난 시기 개헌 논란에서는 이러한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 개헌안이든 국회안이든 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거다. 왜 그랬을까?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의 좌우 어디서든 먼저 건드리는 쪽이 위험부담을 크게 안아야 한다. 조국과 민족을 금이야 옥이야 하는 자들이 포함된 '좌파'에서는 세력관계로 인해 이 문제를 얘기하지 못하고, 우파는 우파대로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정체성에 심대한 혼란이 오기에 말을 못 꺼낸다.
그런데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남북관계가 진척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의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놓고 싸워야 한다. 왜 안 하는가?
정의당 같은 곳에서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천연합이 가만 있지 않을 거니. 나도 당해봤거든. ㅋ 어쨌든 이 문제는 불거져야 한다. 정의당이 제7공화국 운운할 정도면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갑론을박할 깜냥 정도는 있어야 한다. 되도 않는 제7공화국이지만 그나마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가져간다면 내 협조할 용의가 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