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중
서울 변두리 노후주택 밀집지역의 30년 넘은 다세대 빌라에 살면서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건 그냥 한여름에 더위 견디기 힘든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찜통같은 낮의 열기를 잔뜩 품은 벽돌 건물의 실내는 밤이 깊어지고 언덕배기에 흐르는 바람이 제법 시원해진들 쉽사리 식지를 않는다. 선풍기를 내내 틀어놔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나마 환풍을 하고 알량한 바깥바람을 조금이나마 안으로 들이려면 창문이란 창문을 죄다 열어놓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열대야의 진짜 악몽이 시작된다.
낡은 집인지라 창틀이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데다 그러다보니 방충망의 상태가 완전 깓뎀이다. 어찌어찌 보수를 해도 아귀가 영 맞지 않는다. 그 덕에 밤이면 밤마다 모기 대 환장파티. 창 뿐만 아니라 외부와 연결된 하수구 여기저기서 모기가 나오는갑다.
잘 때는 모기장 안에서 잔다지만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모기가 떼로 덤빈다. 스프레이 살충제와 모기향 같은 걸 극혐하는 나때문에 동거인이 힘들긴 해도 그나마 모기들이 내 피를 선호하므로 다행이긴 하다.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보면 건물 사방에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박혀있는 각 가정의 에어컨 실외기들이 일제히 돌아간다. 그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열려있는 창문 근처엔 어김없이 윗집 아래집 옆집 앞집 뒷집 이집 저집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이 비행기 이착륙소리를 낸다.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뜨끈뜨끈한 열기까지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거기에 더해 일요일, 화요일, 목요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새벽엔 또다른 문제가 벌어진다. 거실 베란다 창문은 가장 큰 창문이라 활짝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 창문밖이 작은 놀이터 입구와 맞붙어 있는데, 그곳이 이 일대 가구의 쓰레기를 모으는 집하처다.
일, 화, 목 저녁이 쓰레기 배출하는 날이다. 언덕배기인데다 골목이 얼키설키해서 대형쓰레기수거차량이 골목을 다 돌 수 없다보니, 좁은 골목 안의 쓰레기들까지 미리 이곳으로 모아놓는다. 차량이 도착해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은 새벽 1시 반쯤이다.
이 시간이 어떤 시간이냐하면,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저녁 먹고 설겆이 하고 집안일 좀 하고 컴퓨터 작업도 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하다가 겨우 잠자리에 든지 기껏해봐야 두시간 정도 지난 시간이다. 바로 이때 청소차량이 도착해 쓰레기를 싣는다. 그런데 그 차량의 소음이 엄청나다. 게다가 쌓인 쓰레기가 많다보니 작업시간도 솔찮히 걸린다.
외부 환경에 좀 민감한 편이라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자기까지 하는 편인데, 쓰레기 치우는 차량의 소음은 잠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창문 열어놓고 잠들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청소차량 작업 중에 깨지 않은 날이 없다.
겨우겨우 청소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흐를 때가 있다. 하지만 한번 깬 잠이 또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 겨우 까무룩해질 즈음에 귓때기를 울리는 매미들의 비명이 시작된다. 해마다 그랬지만 올해 매미는 유달리 독하게 울어대는 거 같다. 이것도 기후위기 탓인지 모르겠다만, 귀가 찢어질듯한 매미 소리는 약간 정줄을 놓게 만들 정도다. 매미들이 떼거리로 붙어있는 놀이터 느티나무를 다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한두 번 일었던 게 아니다.
해뜰때쯤 옷방 바깥 능소화 넝쿨에 앉아 박박 울어대는 직박구리나 놀이터 느티나무 위 까마귀와 까치들의 치고박는 소리까지 이어지면 심각한 수면부족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잠이 보약이라던데, 진짜 보약 한 재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이 아니라, 아무리 낡고 오래된 허접한 창문이라도 꼭꼭 잘 닫아놓으면 소음은 좀 덜하지 않을까나...
특단의 냉방대책(에어컨 설치)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 중이다. 내가 극구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으려했던 이유들을 능가하는, 에어컨을 설치하지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을 찾아보는 중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아직 좀 부족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