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펌] 나를 구속하라!!
2003년 7월 11일, 공안부가 행인의 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구속했을 때, 어떤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자펌한다. 송두율 교수 석방 기사를 보면서 왠지 잠도 오지 않고 오만 잡생각이 다 든다. 언제쯤이나 이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가 막을 내릴 것인가...
아직도 궁금한 것은 이 공안기관이 왜 행인을 잡아가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뭐 물론 잡혀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엉뚱한 동생들이 생고생한 것이 아직도 미안하고 가슴아프다...
나를 구속하라!
불철주야 반국가단체의 준동을 분쇄하고 이적행위를 엄금하며 불순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목적으로 제작된 각종 서적과 문건들을 수거하고 파기함으로써 이 땅의 고결한 민주주의를 보위하고 국가질서를 굳건히 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안기관의 여러분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지난 7월 11일,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존립근거를 뒤흔들고 국가전복을 획책했으며 빈민들을 선동하여 국가변란을 도모한 반 국가단체의 일원들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더구나 여러분들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불온서적들과 문서들을 압류함으로써 이 땅에서 암약하고 있는 수많은 반국가단체의 일원들이 어떤 방법으로 국가의 존립과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지를 국민에게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또다시 철저한 경각심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여러분들의 현묘한 지혜와 신출귀몰한 신산묘계는 지구상 어떤 나라의 공안기관 소속원들보다도 뛰어나며 타국의 모범이 되는 것으로서 조국 대한민국의 일대 자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난 7월 11일 국가를 통째로 뒤흔들만한 가공한 파괴력을 가진 두 명의 학생들을 체포하면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막대한 물량과 엄청난 인원을 동원한 철저한 조사로서 두 명의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하는 청사에 길이 남을 공안기관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이번 체포작전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은 빼놓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법률과 그 수많은 자원을 동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잡아야할 인물을 놓쳐버림으로서 여러분들의 노고와 업적에 흠결을 남겼으니 애통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미처 체포하지 못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체포한 두 사람의 형이자 선배로서 이 두 사람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 두 사람이 저질러왔던 그동안의 모든 국가보안법위반을 비롯한 각종 범법행위는 이 두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실은 나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임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들의 업무상 흠결은 곧 이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대사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분들이 저지른 엄청난 수사상의 혼선을 치유하고 진정한 공안기관의 핵심인자로 거듭나기를 원하면서 나를 체포하고 구속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 메이데이 참가단을 만들 것을 요구하였으며, 빈민과 노동자와 결합할 것을 요구하였고, 수시로 학내분란과 소요를 일으킬 것을 요구하였으며, 수년간에 걸쳐 골프장과 핵발전소와 거대화력발전소와 새만금간척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건국대학교 안에서 구성된 건학투위를 위하여 아낌없는 조언과 조직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사항들을 충고하였으며, 이 조직이 궁극적으로 국가변란을 도모하고 국가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몰아나갈 단체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후배들을 교묘하게 설득하였다. 그 결과 건학투위가 결성되었으며, 이 단체는 메이데이 전야제와 메이데이 본행사에 참여하였고 안암동 재개발지역에 침투해 빈민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등 국가존립 자체를 위험에 빠트릴만한 중대한 반국가행위를 자행하였다.
더불어 나는 학내에서 생활도서관이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였다. 대학을 사회로 환원하자는 거창한 명분으로 건설된 생활도서관은 각종 불온서적들을 기증받거나 주기적으로 구매하여 비치하고, 이 불온서적들을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대출하는 한편, 불온서적들의 내용을 편집하여 문건으로 제작 유포하고 사회과학 커리큘럼을 생산하여 공개하는 등 철저한 국가변란행위를 자행하여왔다. 또한 나는 외부적으로 지문날인반대연대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였다. 전 국민의 열손가락지문을 국가가 강제로 채취하여 보관하고 이를 임의 활용하는 것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하면서 대중을 선동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여 이 단체에 가입하게 하는 한편, 정부기관을 상대로 계속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외에도 내가 조직하거나 가입한 반국가단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 이제 나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 위반으로 체포하고 구속하라!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후배들에게 사회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였으며, 잘못된 현상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단지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이러한 설득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본의 집중투하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개발사업이 장래에 인류를 위협할 수 있으며, 빈민들의 생존을 도외시한 재개발정책이 장래에 사회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으며, 미국이 이라크를 불바다로 만드는 행위는 단지 침략일 뿐이고 이러한 침략전쟁에 파병을 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장래에 국가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허위사실을 날조하여 유포하였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화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빈부격차를 가속화할 것이며, 한 나라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후배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노동자와 농민, 빈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하면서 이 땅의 경제부흥을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재벌들을 비방하였으며, 이들을 악으로 묘사하여 후배들로 하여금 재벌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배들은 더욱 신념을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나의 위와 같은 주장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공공연하게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 이제 나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4항 위반으로 체포하고 구속하라!
[국가보안법 제7조 제4항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각종 사회현상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자신의 정립된 사상체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단지 제도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교과서 위주의 공부나 고시를 목적으로 하는 수험학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면서, 역사, 철학,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유혹하였다. 그리하여 후배들에게 자본론을 읽을 것을 강요하였고, 세계사편력을 권유하였으며, 감시와 처벌을 숙독하도록 지시했고, 군중과 권력을 추천하였다. 그 밖에 체게바라평전, 로자룩셈부르크의 생애와 사상,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논쟁, 공산당 선언, 대중파업론, 국가와 혁명, 임노동과 자본, 맑스를 위하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전집), 자본의 이해 등의 책을 같이 읽으며 토론하였고, 이들에게 교양작업을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권유한 책보다 더 많은 책을 탐독하면서 숙지한 바 있다.
또한 후배들의 사상학습을 더욱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이들 도서들의 내용을 발췌 정리하는 한 편,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니는 각종 논문과 문건들을 수합 편집하여 자료집과 문건을 제작하고 유포하였다. 공공연하게 각종 매체에 글을 올렸으며, 매우 대중적인 신문과 잡지에도 글을 올림으로써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사상학습의 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들을 실행하였다. 이 모든 행위는 각종 반국가단체들의 활동을 돕기 위한 목적임과 동시에 앞으로 무수하게 생겨나게 될 반국가단체들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었으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범죄행위였다.
자, 이제 나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으로 체포 구속하라!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제1항, 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 도서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배포, 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나는 정부가 폭력단체로 규정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였으며, 재벌에 의하여 소외된 도시빈민들을 옹호하였으며, 공권력에 의하여 희생된 개인들의 절규를 받아들였다. 가압류와 가처분으로 노동자의 존엄을 통째로 부정당한 채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야만 했던 한 노동자의 죽음을 보면서 애통해 했고, 철거용역들에게 구타당해 실신해버린 산동네 어느 아줌마의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분노했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갈갈이 찢겨진 산천을 보면서 절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빈민에 대한 폭력과 환경에 대한 수탈은 정부와 재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감히 이 당연한 행위에 대하여 저항하는 노동자와 빈민과 개인들은 정부와 재벌의 “적”일뿐이었던 것이다. 적에 대한 가혹한 대응은 전쟁에 임한 장수라면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거늘, 이 만고불변의 진리에 대하여 분노하고 분개한 나는 진리를 거부한 채 정부와 재벌의 적을 옹호하고 “적”들의 행위를 찬양하고 고무하였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마다 정부와 언론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파업을 중단하라고 외치면, 나는 정부와 언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오히려 “적”들의 행동을 더욱 부추기기 위하여 동분서주 하였다. 거대기업의 소유권과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는 빈민들의 투쟁을 정당한 것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빈민들의 투쟁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행사를 반인륜적 행위라고 경멸하고 비난하였다. 국가보안법위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고 구속되는 사람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명하였으며, 이들의 위법행위를 단죄하는 사법기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본적 인권의 침해로 규정하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나의 행위가 정부와 재벌의 “적”들을 찬양하고 고무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가?
자, 이제 나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위반으로 체포하고 구속하라!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공안기관의 여러분.
나의 이와 같은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므로 이제 당신들은 나를 체포하고 구속해야만 한다. 더불어 나에게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 이 땅의 모든 지식인과 노동자와 빈민들을 모두 체포하고 구속하라. 여러분들이 나와 다른 이들을 체포하고 구속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국가보안법이 부당하다는 것을 여러분들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를 체포하고 구속하라.
나를 체포하고 구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여러분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월 11일 체포하고 7월 14일 구속시킨 김용찬과 김종곤을 당장 석방하라. 그리고 당신들에게 모순된 행동을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을 당신들 스스로 비판하고 폐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