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일상탈출

* 이 글은 현근님의 [강촌 삼악산행 사진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사실은 일주일 내내 지겨웠다. 일하는 것도 그렇고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사고에 대처할 능력은 안 되고... 그렇게 머리는 부서질 것 같았다. 미리 선약되어 있었던 산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주말에 어디 겜방에 처박혀 그동안 못했던 온라인게임이라도 하느라고 폐인이 되어 있었을 게다(물론 산행 끝난 후 그와 유사한 폐인모드 돌입).

 

삼악산... 17년 전이었다(산행 당시에는 14년 전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군 입대하기 전에 갔던 산이었다). 신입사원의 티를 겨우 벗어났던 때였는데, 부서 야유회를 1박 2일로 춘천근교에서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코스가 바로 삼악산이었다. 조를 나눠 등반대회를 했는데, 행인이 사고를 쳤다. 귀퉁이에 숨어서 담배 한 대 피고 산을 올라가다가 그만 다른 사람들을 우리 일행으로 잘못 알고 따라갔던 거다.

 

엄청난 선수들이었다. 뒤를 쫓아가는 내내 아, 우리 부서의 사람들이 이렇게 산을 잘 타다니 하면서 감탄, 또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산을 타넘어 어디론가 갔는데, 다 내려가서보니 생판 첨 보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랴, 다시 올라가는 수밖에. 허겁지겁 올라갔더니 사람들이 콧배기도 뵈질 않는다. 별 수 없이 이쪽 저쪽 두리번 거리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일행을 발견한 행인. 쌔가 빠지게 뛰어갔더니 쿠사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행인이 속한 조는 행인을 찾느라고 그랬는지 그 때까지도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 때와 꼭 정반대로 코스를 잡았다. 산오리님의 탁월한 코스선택. 올라갈 때는 좀 편하게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재밌게 내려왔다. 반대였다면, 올라갈 때는 재밌었고, 내려올 때는 편안했겠지.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입구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코스는 영 기억이 없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 양 즐거웁긴 했다.

 

산오리님은 역시 무게 있는 리더였다. 큰 형님 같은 다정함으로, 한 편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일행을 이끄셨다. 아침에 먹은 누룽지는 꿀맛이었다. 그러고보니 누룽지를 먹어본 것이 얼마만이냐. 우리 시골에서는 누룽갱이라고 하는데...

 

뻐꾸기님, 전에 첨 뵜을 때는 왠지 무서웠는데^^;;; 이번에 뵈니 무척이나 밝고 멋있는 분이었다. 자칭 원로(?)로서 산오리님과 같은 격의 위치를 고수하시려 했는데, 아직은 원로로 대접받으시기에는 멀었다는 느낌이다.

 

술라님은 성격도 서글서글한 것이 재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홀로 자취를 하면서도 온갖 음식을 다 해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인과는 격이 다르다...

 

스머프님, 역시 씩씩하다. 행인은 일찍 잠이 들고 스머프님은 새벽까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행인이 일어나 앉아있는데 스머프님의 알람이 울렸다. 벌떡 일어난 스머프, 알람을 퍽 끄더니 행인을 째려보며, "일찍 자니까 일찍 일어나지~~!!"하면서 소리를 빽 지른다. 그러더니, "깨우지마~!!" 하고선 다시 드러누워 자버린다...

 

아즈라엘, 일명 고양이님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말을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듯 시작해서는 결국 다른 사람들이 이말 저말 다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게다가 성격이 보통 밝은 것이 아니다.

 

현근님.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험한 산을 오르락 거리면서도 항상 인물과 배경에 대한 관심을 놓치 않는다. 어허... 행인도 한 때 그랬거늘... 그러나 암울했던 상처를 입은 뒤 카메라를 지금까지 쥐지 않고 있는 행인. 현근님을 보면서 슬슬 또 갈등 시작. 카메라질을 다시 함 해보까...

 

춘천호반을 뒤로 한 삼악산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산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행복했다. 그리고 행인은 시원하게 웃었다....

 

 


 

멋있는 샷을 잡아주신 현근님께 감사 *^^*

 

뱀발 : 스머프의 투덜거림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 투덜이 스머프였을 거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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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5 11:46 2005/04/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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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투덜이'스머프 라는걸 몰랐단 말이오? 새삼스럽게스리...
    그날 내가 투덜거렸던 내용을 함 읊어 보시지 고건 왜 감추셨나?? 난 언제나 이유 있는 투덜거림만 내뱉을 뿐인데..(착각은 언제나 자유!! ㅋ) 그리구...부탁 하지도 않은 내 가방 들어주기는 고마웠다고 할밖에...어디까지나 자청한거지만서도...헤~

  2. 행인님의 산타는 솜씨에 반했어요^^ 성룡+타잔 같어요^^
    근데 카메라에 얽힌 암울한 상처는 무얼까..궁금~

  3. 머프/ 음... 스머프 또 투덜거린다... ㅋㅋ 뭘 읊고 자시고. 가방은 그냥 들어준 거에요. 안 고마우셔도 되는데 ㅎㅎ... 암튼 투덜이 스머프의 투덜거림, 그것도 양념이죠 뭐 *^^*
    아즈라엘/ 카메라에 얽힌 암울한 상처라 함은... 도둑맞은 거죠 머... 아아... 내 카메라들이여...

  4. 리더, 카리스마 이런거 말고, 친구, 편안함 이런 이미지로 새겨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ㅎㅎ

  5. 산오리/ 카리스마는 원래 댓가 없는 베품 내지는 은혜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하다가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의 의미로 전화되기는 했는데요... 산오리님에게서 풍겨나오는 '카리스마'는 권위와 관련 없는 무한의 베품이겠죠 ^^

  6. 행인님 사진을 보니 예전 광고사진이 하나 생각나네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카피를 사용했던 원BD 광고가 말이죠~ㅋㅋ
    이렇게 말하니 정말 왼편에 자연강장제나 맥주, 음료 이미지를 넣어서 광고사진으로 써도 잘어울릴것 같습니다~ㅎㅎ 아무튼 사진 정말 멋지네요. 행인님 웃는 모습이랑 하늘이랑 조화를 이루네요. 제가 더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7. counterattack/ 현근님이 사진을 워낙 잘 찍으시더라구요. 아무튼 시원하다니 다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