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추웠나보다...

날씨 오지게 춥더라...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춥다"는 말을 연신 한다. 영하 10도면 한 겨울 날씨치고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닌듯 한데, 상당히 오랜만에 당하는 추위다보니 체감온도가 훨씬 떨어진듯 싶기도 하다. 아무튼.

 

매에 장사 없듯이 추위에도 장사 없다. 오늘 확실하게 보여줬다. "비장한" 각오로 "빨갱이"들의 마수에서 아이들을 구해내 "구국"하시겠다던 한나라당 의원들, 15분만에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가을바람에 개구리 숨듯이 쏙쏙 사라지셨다. 그래서 무슨 구국을 하겠냐? 차라리 한나라당 의원들 전원 전방 GP 들어가서 한달동안 혹한기 훈련이라도 좀 받고 온 다음에 "구국운동"하던지 말던지 하자.

 

한나라당의 한겨울 거리 단막극은 이렇게 찬 바람과 그보다 더 차가운 시민들의 반응앞에 오그라들고 말았다. 햇볕이 좀 따땃했던 오후에는 그나마 서울역에 모여서 1시간 반이라는 경이로운 시간동안 버티고 서서 집회를 하셨단다. 그런데 아침보다 사람들은 1/3가량 덜 모였단다. 그 참 구국하겠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 단막극이 워낙 거창한 규모로 이루어지다보니 이보다 더 재밌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아침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분들의 기자회견 중에 귀가 번쩍 뜨이는 명문장이 한 줄 섞여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과 화해, 용서를 배우는 아이로 크기를" 바란단다. 아아, 감동의 눈물이 솟구칠 뻔 했다. 그러나 이 창연한 문장을 말씀하신 국회의원님들의 면면을 보자 뱃가죽이 땡기면서 웃음이 나와버린다. 박찬숙, 송영선, 안명옥...

 

누가 그랬던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애들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따라한다. 가장 먼저는 아버지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배우고, 자기 주변에서 가까운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 당연히 티비에 비춰지는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 배우고, 특히나 유명짜한 사람들의 행위를 모범삼기 쉽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님들, 아이들 앞에서 보여준 것이 뭐던가? 사학법 개정 통과되던 그 현장을 상기해보자. 우리 국회의원님들, 거기서 사랑과 화해, 용서하고 계셨었냐? 행인은 그 현장 중계방송을 보면서 효도르 vs 크로캅 이종격투기 빅매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오히려 미국 프로레슬링 실황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밀고 당기고 자빠트리는 것은 기본, 팔꺾기, 목조르기, 허리잡아 돌리기, 서류 집어 던지기, 단상 발로 차기, 눈치껏 싸대기 때리기... 온갖 화려한 격투기술이 종횡무진으로 펼쳐지더라. 유리창 깨지고 서로 넥타이 잡아 당기고 난리법석도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전교조 때려잡자고 피켓들고 서있던 사람들, 무슨 라운드 걸이냐? 보여줄라면 김원기 의장에게 보여줄 것이지 죄다 카메라 향해 피켓 펼쳐들고 좌로 우로 흔들고...

 

애들 좋은 거 배우겠다. 팔꺾는 "사랑", 목조르는 "화해", 서류 집어 던지는 "용서"... 어느 교실에서 사랑과 화해, 용서로 충만한 우리 아이들이 책상을 집어 던지며 서로 자빠트리고 암바에 해드락 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우리의 미래가 아름답게 펼쳐지지 않는가? 모든 학생들이 이종격투기의 달인이 되어 온 도시 곳곳에서 훌륭한 패싸움을 하는 장면, 한나라당이 말하는 구국이 이거였나?

 

아무튼 구국의 대오가 집결한 첫날치고 성과는 있었다. 전 국민을 한 번 웃겨주었다는 거다. 스스로 엎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을 선보이며 몸을 바쳐 국민을 웃겨주는 한나라당 의원들, 고생이 많다. 앞으로 더 추워진단다. 구국하러 나가실 때 옷 든든히 껴입고 나가시기 바란다. 그래야 한 30분은 버텨보질 않겠나? 뭐 조만간 사학재단 관계자 여러분들이 구국의 대오에 동참하실 것 같으니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 있으면 추위는 좀 가실 수도 있겠다.

 

아, 생각난 김에 덧붙이는데, 구국하러 나오실 사학재단 관계자 여러분 및 종교재단 관계자 여러분, 나오실라면 관계되는 분들만 엄선해서 소수정예로 나오시기 바란다. 괜히 엉뚱하게 학교 교직원 동원령 내리고 순박한 신도들 죄다 끌고 나와 이 엄동설한에 생고생 시키지 말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 구국운동 얼마나 더 갈까? 한 일주일 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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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4 01:08 2005/12/1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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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게 구국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우리의 천막대오는 어찌나 꿋꿋하신지 ^^!!

  2. 오늘 새벽 당 천막의 발전기가 꺼지는 바람에 여럿 골로 갈뻔 했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