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똥볼을 벗어나라~!

축구는 보는 것도 재밌지만 직접 해보는 것도 제대로 재밌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 땀 뻘뻘 흘리고 난 뒤 시원한 맥주 한 잔... 아차차, 뒌장, 술 끊었지... 암튼 시원한 뭐 그런 거, 이런 거 때문에 몸을 움직여 달려보는 거다.

 

항상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일단 대인마크와 인터셉트는 그런대로 자신이 있다. 반면에 드리블이나 킥 능력은 완전 개발수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습이 필요한 건데, 양쪽 발목 복숭아뼈 위 인대가 모두 끊어졌던 탓에 발목이 좋지 않아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없다. 연습하다가 또 힘줄 나가면 그 땐 아예 뛰지도 못할 수가 있다.

 

이번 2006 월드컵 본선 조별경기 마지막, 대 스위스전을 보신 분들은 도대체 쟤들이 축구를 하는 건지 발야구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경험을 하셨을 거다. 이 경기 끝나자 마자 냉큼 러시아로 튀어버린 아드복은 사실 그 경기주심을 보았던 엘리손도 덕분에 욕 덜 처먹을 수 있었다. 그 경기, 아무리 봐도 작전이라고는 없는, 말 그대로 그저 열심히 뛰고 차는 거 이외에는 내용이 없었던 경기였다.

 

전방에 원톱(조재진) 하나 세워놓고 양쪽 윙어들이 크로스를 하는 매우 단순한 '작전'. 이거 하나로 스위스전 게임은 끝난 거였다. 스위스 문전에서 수비를 보고 있는 수비수들. 얘네들 청소년 대표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년 동안 한 솥밥 먹으면서 누구 키가 더 큰지 내기하느라고 위로 죽죽 컸고, 누가 몸싸움 잘하나 내기하면서 덩치 불렸던 애들이다. 조직력 역시 끝장이다.

 

포백라인에 가기도 전에 중간에 맥이 끊겨버리는 공격능력을 갖춘 한국의 미드필더들, 결과적으로 엉성한 크로스 남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공 조재진에게 제대로 가지도 못했다. 가관인 것은 그 올려준 공들이 말 그대로 올려주느라 바빠 정확한 코스로 빠르고 강하게 적절한 높이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분의 촌평처럼 교과서적인 '똥볼'이 되어 둥둥 떠서 갔다는 거다.

 

엔트리 구성이나 전술구상에 있어서 치밀한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팬들이 원하는 선수 위주로 엔트리 구성하고, 그까이꺼 대충 뛰고 올리고 때리라는 지시를 작전이라고 내려준 아드복, 나중에 엘리손도에게 막걸리라도 한 사발 사줬나 모르겠다. 어, 손도~, 내 대신 그 욕 다먹어주느라 고생했어. 뱃가죽 찢어지진 않았나? 이러면서...

 

세트플레이를 할 때는 물론이려니와 필드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역시 크로스의 중요성은 재삼 새삼 강조해도 모자라다. 자로 잰듯한 크로스들이 얼마나 환상적인 슛들을 만들어내던가? 또는 바로 그 능력을 이용해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직접 중장거리 슛을 날리는 그 통쾌한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람들을 전율케 하는가?

 

대표적으로 이넘. 베컴이다.

가운데 노랑머리가 베컴. 그 옆에 오웬이 있고, 오른쪽에 얼굴 잘린채 웃고 있는 넘이 퍼디난드다. @다음 이미지

 

예전에 레알마드리드 순회공연(!) 당시 일본에 갔을 때, 저 베컴을 보기 위해 공항을 메워버린 일본 여성 팬들이 무릇 기하였던가... 베컴 얼굴 보자마자 까무러치는 언니가 없나, 1.4 후퇴 때 헤어진 오빠를 만난듯 하염없이 울던 아줌마에 경찰 저지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사인받으려고 달려들던 그 많은 팬들을 보며 잠깐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씁...

 

암튼, 건 그렇고 저 베컴의 크로스 능력은 말 그대로 가/공/할/만/한/ 것이다. 잦은 발목부상으로 인해 뛰고 제끼고 하는 것은 많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베컴의 크로스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의 오른 발을 떠난 공은 어김 없이(이 블로그가 뻥구라닷컴임을 일단 생각들 하시고) 그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선수의 원하는 부위에 떨어진다.

 

왼발 크로스의 달인도 있다. 다름 아닌 라이언 긱스다.

오오... 저 카리스마... @다음 이미지
 
한 때 이 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 솥밥을 먹은 사이이기도 하다. 한넘은 오른쪽에서, 또 한 넘은 왼쪽에서 강력한 포사격을 하면서 중간 미드필더들의 벌떼공격을 지원했던 거다. 긱스에게 붙어 다니는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호는 그의 능력에 비교하면 오히려 모자랄 정도다.
 
안타까운 것은 긱스가 웨일즈 출신이다보니 적절한 팀구성을 하지 못함에 따라 월드컵 등 세계적 대회에서 A매치 선수로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잉글랜드에서 귀화를 하면 국대에 넣어주겠다고 했는데 긱스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거 같다.
 
어쨌든 이 긱스는 공중으로 넘겨주는 크로스는 물론이려니와 드리블에 있어서도 그림같은 플레이를 선사하며, 낮게 밀어주는 패스 역시 말 그대로 "킬 패스"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자랑한다. 그는 이미 맨유의 전설이고 앞으로도 맨유는 물론 세계 축구팬의 전설이 될 거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엄청나게 많은 털을 자랑하는 긱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질 좋은 면도기나 선물했음 싶다. 이넘 가슴털 보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무슨 영장류를 보는 듯 한데, 저 턱털만 보더라도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물론 모든 선수들이 이런 "최고병기"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 꽃미남으로 추앙받기도 했던 브라질의 카카 역시 기가막힌 크로스 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축구선수들이 카카가 될 수는 없다. 각기 나름대로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된다. 카카가 골키퍼를 보는 것 보다야 칸이 골키퍼를 보는 것이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훨씬 즐거운 거다.
 
일단 크로스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팀이 공을 소유하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을 소유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따지면 그만큼 슛을 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방에서 넘겨주는 크로스가 중간 미드필더들에게 정확하게 이어지거나 전방 공격수들에게 연결되는 것은 바로 슛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중계되는 공의 중간에 위치하게 되는 상대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따돌리게 되므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된다.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한국선수들이 남발한 '똥볼'은 전혀 이런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 엉성하게 공중에 떠서 상대선수와 경합하게 되는 공을 잡을 확률은 일단 반반이다. 여기서 누가 위치선정을 잘 하느냐, 몸싸움에서 얼마나 상대편을 제압할 수 있는냐, 트래핑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공을 잡는 선수가 정해지게 된다. 스위스전을 상기하자면 그런 '똥볼'들은 당연히 거의 대부분 스위스 선수들이 잡을 수밖에 없는 확률이 나오게 되는 거다.
 
8일 있었던 가나와의 평가전은 경기 자체만으로 보자면 수준 이하의 경기였다. 가나가 보여준 뜻밖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재미는 있었지만 국대 선수들의 플레이는 많은 사람들이 열받을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시앙이나 아피아 같은 1진 선수들로 구성된 가나를 맞이하여 베어벡은 오히려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들을 위주로 하는 신진선수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당연히 국대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반전 동안 보여주었던 선수들의 움직임은 초반 잠깐 공세를 취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공격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가나선수들을 쫓아다니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후반 들어 불과 10분 간격으로 연속골을 허용한 이후 잠깐 침체된 듯 했던 선수들은 김동현의 만회골 이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몸싸움도 치열하게 벌이면서 나름대로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 윙들의 돌파도 전반과는 달리 예리한 모습을 보였다.
 
그 가운데, 이종민의 크로스 능력은 새삼 돋보이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크로스 패스를 보면서 아, 국대에 저렇게 예리하게 공을 넘겨주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있었던가 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울산의 이종민이었다. 이종민은 K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들 중의 한 명인데, 윙백이나 윙포워드로서도 제격인 빠른 발과 수준급의 드리블 능력을 갖춘 선수다. 특히 크로스 능력이 뛰어난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베컴 정도 수준에도 충분히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다만, 아직까지 어린 선수다보니(23세) 순간적인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는 단점은 있다. 그만큼 분위기를 잘 탄다는 건데, 좋은 쪽으로 분위기를 타면 제 능력을 100% 다 보여줄 수 있는 거지만 나쁜 쪽으로 분위기를 타면 완전히 경기를 망치는 수가 있다. 예컨대 작년 11월인가, 성남과 울산의 경기 중 성남 우성용과 이종민이 경합을 벌이다가 같이 넘어진 후 우성용의 얼굴을 발로 찬 일일 있었다. 다시 보더라도 매우 비신사적인 행위였고, 중징계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과격한 플레이였다.
 
어쨌든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그동안 똥볼 위주의 뻥축구에 의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국축구에 새로운 바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천수가 베컴과 비교되는 것은 사실 인정하기는 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이천수의 킥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수준의 차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선수들의 발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축구를 보는 또다른 재미이다. 이종민은 어떻게 성장할까? 기대를 가져볼만 하다.(그나저나 나도 드리블과 킥을 잘 하고 싶단 말이다...)
 

이종민. 울산 17번 MF. 이미지는 울산현대축구단 홈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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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09:44 2006/10/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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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축구의 자랑거리가 바로 '똥볼'과 '문전처리미숙'인데,
    그걸 벗어나라고 하면, 한국축구 넘 재미 없어지는데..ㅎㅎ

  2. 산오리/ 너무 현실지향적 관전을 하심 안 되죵~~ ^^
    똥볼과 문전처리미숙이 국대의 팀컬러가 된지 어언 반세긴데, 이젠 좀 달라질 때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ㅎㅎ

  3. 한국 축구가 제자리 곰배를 하고 있는 것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결과에 목을 메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싶습니다. 분명히 축구도 골을 넣어야만 이기는 스포츠이지만, 오로지 한국에서는 골을 넣은 선수만 영웅일 뿐 - 그 패스를 한 선수는 잠깐 관심을 받는 정도라는 ... 사실 골게터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호나우드 등과 같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자신이 스스로 골을 만들 수 있는 선수인데 ... 이런 선수는 정말 드물죵. 그렇기에 당연히 몸값이 장난이 아닌데 ...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수한 미드필드에서 나온 기가 막힌 패스로 골이 되거나 골과 다름없는 장면을 만들 수 있는데도 ... 그들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하죵.

    예전에 이동국과 김은중이 두톱으로 나선 청소년대표가 역대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세계 대회에서는 오노 신지의 일본이 선전을 펼친 것이 좋은 비교가 될 것 같아요.

    꽤 전에 나카야마라는 골게터에 대해서 일본 축구 평론가가 평가절하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의 골은 그의 발이 아닌 미드필드의 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당시 나카야마가 리그에서 스무 몇 골을 넣었는데도) ... 결국 이 힘이 지금의 일본 축구의 미들라인이 강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는지 ... 한번씩 박지성에게도 골이 지상 최대의 목적이라는 듯이 주문을 걸고 있는 치라시 등을 볼 때마다 ... 참 한국 축구는 여전히 깜깜하다는 생각이 ... 듭니다.

  4. 손윤/ 이건 절대 동감하는 바입니다. 전에도 포스팅 하면서 설핏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나마 한국 축구팬들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누가 몇 골 넣었냐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 전반에 걸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문제는 이놈의 찌라시들이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겁니다. 골 넣은 선수는 대문짝만하게 1면을 장식하는데, 중간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낸 선수들에 대해선 너무나 인색하게 다루죠. 인터넷에 그런 기사 올라오면 대부분 그 얘기만 줄창 하구요...

    바티스투타는 아나운서가 그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번개같이 나타나서 골을 집어넣다보니 "바티.. 꼬올~~!" 이게 반복되다가 결국 닉네임이 "바티골"이 되어버렸다죠.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티스투타의 결정력은 물론 높이 사야겠지만 복병처럼 스며드는 그 자리로 공을 넣어주는 선수들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점을 한국 팬들은 잊고 있는 듯 합니다.

    박지성이 골이라는 성적을 내야하는 것은 물론 그 자리에 그가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겠지만 찌라시들의 일방향적인 논조는 참 마음에 들지 않죠. 박지성에 대한 과도한 일반의 기대만 양산하는듯한... 그러다가 망한 대표적 케이스가 박주영인데, 박주영, 참 안타깝죠... 하긴 뭐 그런 인물들이 한 둘이었습니까... 고종수... 싸가지니 뭐니 하면서도 정작 그 고종수를 상업적으로 키워낸 것 역시 찌라시들이었고... 아 갑자기 짜증 솟구치기 시작하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