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한 사람들

지난 18일 일부 언론이 한미 FTA 협상에 관련한 기사를 냈다. 한국정부가 무역구제를 카드로 활용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문제는 이 기사의 내용이 한미 FTA 협상단이 가지고 있는 비밀사항이었다는 점이다. 언론기사는 일파만파의 효과를 내었고, 간 빼주고 쓸개까지 다 빼주는 협상이 무슨 빌어먹을 협상이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판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의 비밀문건을 누군가 빼돌려 세상에 알림으로서 국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식으로 사건의 본질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13일과 14일 양일간 국회 FTA 특위에서 회람된 "한미 FTA 고위급 협의 주요결과 및 주요 쟁점 협상 방향"이라는 보고서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국가의 비밀을 빼돌려 언론에 넘긴 덕분에 앞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가 만든 조직 중에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라는 곳이 있다. 여기서 19일, 이 사건과 관련한 성명을 내고 "6차 협상 대응방향 대외비 문건 유출관련 설명"이라는 자료집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성명의 내용은 주로 "국운" 또는 "국익"이 걸린 상황에서 정부의 협상전략을 노출시키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성명에서는 국회를 언론유출의 근원지로 단정짓고 국회가 책임을 지라고 목청을 높였다.

 

성명발표와 함께 배포된 설명자료를 보면, 이 한미 FTA 지원단이라는 조직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국운"과 "국익"이 걸린 이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설명자료는 문제가 된 언론기사를 그대로 복사해 싣고 있는데, 그 중간 중간에 민주노동당과 관련된 기사와 사진, 그리고 심상정 의원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등을 끼워넣고 있다. 그런데 그 배치가 절묘하다.

 

문건유출과 관련된 상황정리 바로 다음 페이지에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배치했다. 그러더니 바로 그 뒷페이지에서는 한미 FTA 결과로 발생하는 미국의 이익을 설명하는 기사와 함께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사진이 실린 신문의 한 면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놨다.

 

관련 언론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중간에 또다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농성관련 사진을 그대로 끼워넣는 센스를 발휘한 이 자료는 결국 막판에 결정적 사고를 친다. 금융부문과 관련된 한국 협상단의 저자세와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예상결과에 대해 심상정 의원실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통채로 집어넣더니 그 바로 뒤에 이 보도자료의 내용과 유사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언론기사를 붙여놓았다.

 

이렇게 되면 '지원단'의 성명은 국회를 문서유출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고, 그 '지원단'의 설명자료는 국회와 관련된 집단 중에서도 특히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을 범인이 아니냐고 은근슬쩍 지목하고 있으며 아예 그 중에서도 심상정 의원이 이런 '국익'을 팔아먹는 짓을 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의식적인 유도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문서조작 기법을 항간에서는 '조선일보식'이라고 한다. 정부의 수장은 조선일보와 허구한 날 물어뜯고 있는데, 그 밑의 수족이라는 것들은 조선일보 따라하기 운동이라도 펼치고 있는 건가? 어쨌든 이 설명자료가 가지고 있는 더러운 '음모'는 곧장 당 의원들로부터 항의를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민주노동당이 수상해?

 

난 정부가 지목한 유력범... 참담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특위에 있던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자, '지원단'은 꼬리를 내리고 슬쩍 입을 닫더니 지들이 올렸던 성명서의 내용마저 바꿔서 홈페이지에 올렸다. 국회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던 부분이 싹 지워졌다. 그동안 나름대로 성명이라는 것도 내보고 했지만 성명 내용이 문제가 되자 슬쩍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하는 희안한 짓은 해본 적이 없다.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는지 모르겠는데 정부가 하는 짓 치고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한미 FTA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으로 돌아간다. 수 천만의 삶이라는 것, 생존이라는 것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가 "국운"과 "국익"이라는 이름을 걸고 개판 오분전으로 굴러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난장판의 굿거리를 목숨 걸고 역사적 사명이라 생각한 채 끌고 가려는 노무현과 그 일당들. 이거 정말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설명자료에서는 문서유출 사건이 "정부의 협상력을 현저히 약화" 시켰으며 그 결과 "막대한 국익 손실 초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웃기고 자빠졌다. 지들이 박명수냐? 맨날 호통개그나 하고. 언제 "협상력"이나 보여주면서 협상을 했었나? 지들의 그 저자세와 '퍼주기' 정신으로 초래한 "막대한 국익 손실"은 도대체 누가 메꿀 건가? 하여튼 돌아가는 꼬라지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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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06:48 2007/01/2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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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효, 참 깝깝하네요...

  2. 아오 정말....... 하는짓들 하고는 ..쩝..-_-;;

  3. 이참에 국익을 팔아먹으려는 협상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민주노동당이 그자료 유출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내용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유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말 국익이 뭔지를 가지고 언론에서 붙든지 말든지 해야지, 본질은 어데로 가고, 유출이라는 주변으로 흐트려 놓고 있으니...

  4. 이거 완전 초원복집...

  5. NeoPool/ 갑갑한 일이 어디 한 두가지라야 말이죠...

    넝쿨/ ㅠㅠ

    산오리/ 민주노동당 의원이 그랬다면 제가 나서서라도 우리가 그랬다고 하겠습니다. ㅎㅎ 어디나 이렇게 배를 산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싶더니 이젠 아예 한 국가의 정부라는 것들이 이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박노인/ 그렇군요... 참여정부나 조선일보나 "우리가 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