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4)

뚝방길 위는 주로 사람들의 통행로였다. 차량이라고 할 것도 없고, 어쩌다가 삼륜차 한 대씩 지나가거나 택시가 들어오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마을버스가 다니던 때도 아니고, 버스 한 번 타려면 오목교 밑에까지 가야하는 시절이었다.

 

마른 날 바람이라도 한 번 불라치면 누런 흙먼지가 뽀얗게 일곤 하던 길이었다. 한 쪽으로는 안양천이 흐르고 그 건너편으로는 시커먼 연기가 굴뚝을 타고 솟아오르는 양남동 공장지대가 보인다. 반대편 쪽으로는 바로 밑에 판자촌이고 그 너머로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집에서 오목교쪽으로 한참 걸어오다보면 포장을 친 조그만 노점이 하나 있었다. 외할머니 연배쯤 되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장을 치고 그 안에서 좌판을 벌려놓은 채 사탕이며 쫀드기며 하는 것을 팔고 계셨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봉지과자도 있었고, 여름이면 하드통을 갖다 놓고 하드를 팔기도 했다.

 

'산도'나 '새우깡' 같은 "고급과자"들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가게에서 이런 고급과자들을 사 본 적은 없다. 사실 있었어도 아마 사먹어보질 못했을 거다. 그 때 새우깡 한 봉지에 100원인가 했다는데, 콩나물 10원어치 20원어치를 사 먹던 때였고, 콩나물 20원어치 잘못 샀다가는 처치곤란할 정도로 양이 꽤 됐었으니까.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괜히 많이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었던 거다.

 

봉지쌀이라는 것도 있었다. 물 뜨러 가던 구멍가게에서는 쌀도 팔았다. 쌀뿐만 아니라 온갖 잡화를 다 거기서 샀던 듯 한데 암튼 그 집에서 봉지쌀을 사다 먹었다. 얼마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암튼 함지에 수북히 쌓인 쌀을 조그만 사각진 됫박(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았던 듯)으로 퍼 누런 봉투에 담아줬다. 어쩔 때는 양이 좀 되다가 어쩔 때는 양이 좀 적었고, 양이 적은 날이면 매우 난처해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생각난다. 뭐 어쩌랴, 쌀집 주인 맘인데...

 

뚝방 위 천막가게에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사탕종류였다. 10원에 3갠가 하는 눈깔사탕이 특히 인기종목이었는데, 그거 하나 입에 넣으면 한쪽 볼이 툭 튀어나온다. 워낙 크다보니 입 안쪽에서 이쪽 저쪽 굴리기도 힘이 들고, 입이 아직 작았던 행인은 그걸 씹어 먹을 수도 없었다.

 

천막가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척 후덕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가거나 어머니 손을 잡고 가면 어른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사탕 하나 입에 물게 된 것만으로 흡족해진 행인은 멀리 오목교를 건너는 차들을 구경하거나 뚝 밑에 난 풀들을 만져보거나 간혹 수풀에서 펄쩍 뛰어나오는 개구리를 쫓아가기도 했다.

 

천막가게는 행인이 목동을 떠날 때까지 있었는데, 그 이후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몇 차례의 철거가 있었고, 개발이 있었고 하는 와중에 없어졌을 것인데 두 노인네들께서 어디에 어떻게 거처를 하시게 되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천막가게에서 팔던 쫀드기는 먹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사먹어보질 못했다. 사달라고 졸른 기억은 없고 한 번 사 줬으면 하는 의사표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대신 눈깔사탕을 사준 어머니는 나중에 그런 불량식품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럼 눈깔사탕은... 하지만 뭐 그 당시에는 그런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쫄쫄이가 좀 더 비쌌던 거 같다. 그래서 안 사주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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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2 21:06 2007/01/2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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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뚝방위에 먼지 날리는 건 그나마 참을만했는데, 비오거나 겨울지나 눈녹을때는 그 질퍽거리는거 때메 죽을 맛이었는데...ㅠㅠ

  2. 산오리/ 흐... 저도 그 질퍽거리는 뻘창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도 또 포스팅을 하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