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방의 추억(2)

도대체 뚝방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릴만한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다. 해서 대충 뚝방이라고 불렸던 곳의 지형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게 뚝방의 개요도임. 발로 그렸삼. ^^;;;

 

안양천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물결 출렁이던 그런 곳이 아니라 산오리님이 말씀하시듯 평소에는 물이 별로 없는 건천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림과는 달리 도로로 사용되던 둑에서 안양천변쪽, 즉 D 지역에 판자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난리가 나면 쓸려내려가버리기도 했고, 때론 사람까지 함께 휩쓸려 가기도 했었다.

 

행인의 기억이 시작되는 곳은 제방 둑 바로 아래 계단, 즉 A위치에 살 때이다. 암튼 저런 곳에서 살았는데, 당시 판자촌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의 일과는 뭐니뭐니 해도 물을 길어오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식수를 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행인이 살던 지역에서 식수는 B의 위치에 있던 어느 가겟집 수도였다. 조그마한 구멍가게였는데, 이 가게 앞에 삐죽 나와 있는 수도꼭지 하나가 일대 주민들의 젖줄이었던 게다. 새벽 댓바람부터 사람들은 물통...이라기보다는 '빠께스'를 들고 길게 그 수도 앞에 정렬해야 했다. 사시사철 내내...

 

동네주민들은 대부분 인근 양남동이나 문래동, 도림동 등으로 일을 하러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일부는 인근의 논밭으로 일을 나가기도 했고 또 일부는 지방으로 '노가다'를 뛰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을 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 노는 '아저씨'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못사는 나라나 동네를 보면 여자들은 억척스레 일하는데 정작 남자들은 많이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당시 그 동네 역시 마찬가지였던가보다.

 

아침에 물뜨러간 수돗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행인또래의 코찔찔이들부터 시작해서, 행인보다 조금 더 큰 '엉아'들도 많이 보였다. 죄다 어른들이 가져다 놓은 '빠께스'를 앞에 사람이 빠질 때마다 한 칸씩 앞으로 옮겨 놓는 것이 임무였다. 아빠 엄마들은 출근준비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빠께스' 옆에 아이들을 붙여 놓고 씻고, 밥상을 준비하고, 옷을 입고 하는 것이다.

 

물동이를 지키고 앉아 있었던 것이 지루하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조바심이 많이 났던 것 같다. 특히 앞에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이제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오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대여섯살 된 어린 아이가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옮길 재간이 없다. 못된 어른들은 나중에 어른 오면 물 받으라고 하면서 지가 먼저 양동이를 수도꼭지 아래로 들이밀어버린다.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는 속수무책이다.

 

맘씨 좋은 분들은 먼저 물을 받게 한 후 수도꼭지 옆으로 옮겨놔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쁜 아침나절에는 1분 1초가 아까웠는지 그런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다보면 계속 줄은 밀리고, 밀려난 아이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자꾸 집쪽을 쳐다보게 된다. 재수 없는 날이면 늦게 나온 부모와 아이를 밀쳐놓고 먼저 물을 받던 어른과 싸움까지 나게 된다.

 

이렇게 길어온 물은 아껴쓰지 않으면 안 된다. 가겟집 주인이 수도물을 받아갈 때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물이 떨어지면 또 그 아래 수도가까지 가서 물을 받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물을 아껴쓰게 되었다. 그런데 정도껏 아껴야지 너무 아껴쓰다보면... 사람이 구차해진다. 아니, 지저분해진다. 세수 한 번 하는 것도, 이빨 한 번 닦는 것도 주저하게 되고 조심스러워진다.

 

이게 좋게 발전하면 절약정신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겠지만 나쁘게 전개되면 무진장 게을러지게 된다. 행인은... 후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도 잘 씻질 않는 것일까? 물을 아끼자는 차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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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13:04 2007/01/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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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01/19 15:54

    행인님의 [뚝방의 추억(2)] 에 관련된 글. 뚝방의 추억을 그냥 쓰기에는 뚝방에 살지 않아서 그렇고, 칼산의 추억이 어울릴라나..ㅎㅎ 행인이 물 얘기를 썼으니 산오리도 물 생각이나 해 볼까

  1. 그림을 발로 그렸는데도, 예술이네요. 어쩜 똑같이 그렸네요..ㅎㅎ
    다만 A와 B사이의 높이가 저렇게 차이가나지는 않아서, B에 있는 집의 창문 위쪽이나 지붕이 A에 있는 집의 마당 높이 정도였던거 같은데..

  2. ㅎㅎㅎ 똑같다고 하시더니 똑같지 않았음을 바로 밝혀주시는... ^^

    넘 간단하게 그리다보니 좀 이상스럽게 되긴 했는데, 산오리님 말씀하신 정도의 차이가 나는 곳부터 시작해서 저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구역도 있었구요. 2단이 아니라 3단, 4단의 계단형도 있었죠.

    근데 워낙 어릴 적의 일이 되나서 군데 군데 안 맞는 것이 많을 겁니다. 산오리님이 일일이 감수(?)를 해서 지적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ㅎㅎ

  3. 산오리/ 그런데 산오리님의 글에 트랙백을 걸었는데 계속 안 걸리네요... 이상하게 제 블로그는 왜 이리 문제가 많은지... 쩝...

  4. 대부분이 2단에 그 가운데가 길이었기에 한단에 두줄의 집이 있었던 거 맞는거 같은데요, 오목교쪽으로 갈수록 한단에 세줄의 집이 있었던게 좀 있었나 싶네요. 산오리 블로그가 문제 있는건가요? 제 블로그에서는 위에 사진 걸어 놓은 것도 안보여요..ㅎㅎ

  5. 산오리/ 형식상 한 단에 두 줄의 집이 있었긴 했지만 판자촌이 늘 그렇듯이 줄 안에 또 줄이 있고, 그 줄 안에 또 줄이 있는 판이었죠. ㅎㅎ 오목교쪽으로 갈 수록 중간 단의 넓이가 넓어졌죠. 그리고 밑에 다른 단과의 높이차이도 줄어들었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