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과 삑사리 공화국

로스쿨 관련 포스팅, 왠만하면 이제 시리즈 막을 내리려고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여다보면 진짜 왜 이렇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어 또 키보드를 또닥거리게 된다.

 

행인, 지난 포스팅들을 통해 누누히 말했지만, '전문대학원 시스템'이라는 학제 하나를 더 얹어 놓는 것이 지금 이 사회에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거기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이라니... 남한 사회가 얼마나 학력에 대한 추종이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 추종세력들에게 또다시 무한경쟁을 위한 목적지 하나를 제공하는 이 로스쿨에 대해 왜 제대로 된 지적은 보이지 않는 걸까?

 

고교졸업생의 87%가 대학에 진학하는 '대학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전문대학원체제는 그 중 또 절반 이상을 경쟁에서 도태시키기 위한 거름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기껏해야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정도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관료고 정치인이고 할 것 없이, 게다가 교육자들은 나서서 이런 기형적 교육구조를 새로운 대안인 양 설파하고 다닌다.

 

이 혼란의 와중에 한 때 로스쿨에 대해 진지한 반대를 했던 사람조차 이제는 '올바른' 로스쿨이 어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다. 작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교수들이 로스쿨 지지자들의 편지를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하던 시기에 최순영 의원은 분명한 태도로 로스쿨이 왜 잘못된 발상인지에 대해 반박편지를 보낸 바 있다.

 

그랬던 최순영 의원이 이번에는 한 칼럼에서 묘한 입장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로스쿨 총정원 논란이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최순영 의원은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법조기득권 세력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교육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이 분이 이야기하는 대안은 앞서의 입장과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로스쿨 교육비 최소화, 정원 확대, 사법시험 폐지, 공공 사법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칼럼 말미에 나오는 이 주장은 기본 전제로 '로스쿨이 설치될 때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즉, 로스쿨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아니라 로스쿨은 인정하되 그 로스쿨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순영 의원의 이 논의는 결국 로스쿨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각 대학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비록 최순영 의원이 대학들의 동일한 주장에 대해 "너무도 뻔히 보이는 '우리대학 로스쿨 유치'"라며 그 속내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 대안 역시 로스쿨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진보적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 기형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대학진학열풍을 어떤 식으로 해소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순영 의원, 지금까지 그런 고민 많이 해왔다. 이건 물론 의원실 뿐만 아니라 당의 정책연구원이 함께 고민하던 사안임은 행인도 잘 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삑사리성 발언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차피 한국 고등학생들 거의 절대 다수가 대학을 가는 마당에 이러한 조건을 기반으로 논의되는 전문대학원체제는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최순영 의원의 칼럼만큼이나 어이없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의 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설치된 국정알리미 블로그에 어떤 교육부 관계자가 로스쿨에 대해 글을 올렸는데, 그간 정부의 천편일률적인 입장이 완전정리되어 올라와 있다. 이 사람은 그동안 행인이 누차 비판했던 부분에 대해 또다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로스쿨이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논리였다.

 

"지방의 우수한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기 위해 굳이 수도권 소재의 학교로 진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지역의 학생이 지역으로 몰려와 지방대학의 균형적 발전과 두뇌유입 효과도 기대된다."

 

이 사람은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이후 "의학분야에서 대학 서열에 대한 인식이 무너진 것을 경험한 바 있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세상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독특한 인식의 소유자다. 의학분야에서 대학 서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무너졌던가? 뭐가 무너졌지? 대학서열? 매년 ㅈ일보가 하고 있는 대학평가에서 대학서열이라는 것이 무너진 흔적이라도 발견했던가?

 

더 웃기는 것은 이분의 생각 속에서 로스쿨은 마치 지역부흥을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지역에 소재한 법학전문대학원은 지방의회, 지방행정, 지방법원 뿐 아니라 지역의 경제, 사회영역과 연계해 지역특화적인 법률, 정책전문가를 양성할 것이다"라는 게 이분 주장인데, 이정도 되면 망상증 치료를 받아야할 지경이다.

 

학생들이 미쳤냐? 로스쿨 들어간 이유가 출신학교 소재지에서 지역특화적인 뭔가를 하는 거라고? "지역특화적인 법률"이 뭘 이야기하는 걸까? 제주특별자치도법? 경제특구법? 뭘까? 연방제도 아니고 지역마다 다른 법률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뭐가 "특화"된다는 건가? 혹시 이분 "1국 2체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더욱 확대하여 광역별로 state를 만들고 완전한 연방국가체제로 국가체제를 변화하려는 건가?

 

아전인수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교육부에서 "대학혁신추진단장"씩이나 하시는 분의 발상에서 도대체 대학교육의 정상화에 대한 고민은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학혁신"이 대학교육을 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체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잖아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기로 방침을 세운 마당이다. 이 때 좀 더 걱정스럽게 들여다봐야할 일은 왜 한국사회에서 "학력"이 문제가 되는가이다. 그거 여기서 더 떠들지 않아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인데, 그렇다면 이 왜곡된 현실 위에다가 대안도 없이 '전문대학원'이라는 학제 하나를 또 만들어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봐야하는 거 아닌가?

 

정치인이고 고급관료고 간에 이런 삑사리들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암담하다. 어차피 11월 30일 전에 각 학교들은 교육부에 인가신청서를 제출할 거다. 교육부 앞에서 단식투쟁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 참 기가 막힌다. 공무원노조는 왜 거기서 삽질을 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대학과 교육부가 서로 쑈를 하고 있는 중인데 거기 껴서 뭘 어쩌자는 걸까? 그러다가 정원 좀 늘리면 "우리는 승리했다"라고 하려고 그러나?

 

하여간 이 이상한 나라 이상한 교육풍토, 갈수록 혐오스러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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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3 16:37 2007/11/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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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님~ 죄송합니다.. 메일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셔서..ㅠㅠ
    학교한테 돈 타냈어요..그래서.. 계좌번호..ㅠㅠ..;;;;;;;;

  2. pillory/ 헉... 이런 죄송합니다. 메일 봤다가 그만 연락을 안 드렸군요. 근데 메일을 다시 찾으려니 못찾겠네요. ㅠㅠ 메일 다시 한 번만 보내주시겠어요? ^^;;;

  3.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