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正道)"에 관한 잡상

행인님의 [이번 대선은 노무현 VS 박근혜] 에 관련된 글.

정치인들은 흔히 "이거면 이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왠지 묘한 분위기를 흘리며, 이러저러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회창옹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 며칠간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지난 12일, 이회창의 출마에 대하여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이명박, 희색이 만면한 반면 이회창, 그렇잖아도 없는 볼살이 초췌할 정도로 쑥 들어갔다.

 

예상보다 빠른 입장의 표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과연 이 발언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발언일까? 왜 박근혜는 "이회창은 대권 욕심을 접어야 한다"거나 "이명박후보를 지지하겠다"라는 명시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을까?

 

상황을 좀 돌아보자.

 

- 떡값때문에 불똥이 튄 검찰, 갑자기 BBK 수사를 최단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설치고 있다.

 

- BBK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것으로 알려진 김경준이 16~17일 경 귀국한다.

 

- 대통령 후보등록일은 11월 25일이다.

 

혹시 박근혜는 이명박이 후보등록일 전에 낙마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건수 하나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워낙 다이나믹한 코리아에서는 하루 아침에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후보등록일 전 이명박의 후보사퇴 -> 한나라당 요동 -> 급히 대선후보 변경 -> 박근혜, 자동으로 대선후보 됨

 

이런 시나리오는 그러나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관행을 돌이켜보면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임이 분명하다. 검찰이 설레발이를 친다고 해도 유력 대권후보에 대해 괜한 칼질을 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높다. 정치적인 눈치보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검찰의 입장에서 과연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혹은 이명박으로 대선을 관통하고 난 후 이명박이 대통령 선서를 하기 전에 말썽이 일어나는 것.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선거결과는 무효가 되고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때 다시 화려하게 박근혜 복귀.

 

그런데 이 시나리오 역시 아슬아슬 하다. 대권에 도전해서 당선까지 된 마당에 검찰이 이명박의 목을 날릴까? 아니면 차라리 목을 움켜쥐고 앉아서 5년을 즐겁게 보낼까? 더구나 만일 이명박의 당선이 무효가 되면 박근혜가 등장한다고 해서 재선거에 유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최대한 이명박을 죄어 놓고 당권을 확보하자는 것. 박근혜의 발언이 아직까지 명시적인 지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명박이라고 모를리 없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더 박근혜가 명시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이명박은 희망할 것이고.

 

여기서 줄 수 있는 것은 차기 당권에서 최소한 박근혜에게 절반 이상의 지분을 쥐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대선 직후 18대 선거가 있다. 대선 직후 총선에서 적어도 여당이 일정한 프리미엄을 가질 수 있다고 보면, 박근혜가 공천권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 국회는 박근혜가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다.

 

어찌 되었건 박근혜는 아직 이회창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퍼붓지도 않고 있고 이명박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지도 않고 있다. 오직 당이 걸어야 할 "정도"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나라당에게 바라는 "정도"는 자신의 위치를 보장하라는 것이고.

 

이회창이 "정도"를 걷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건 그냥 수사일 뿐. 어차피 정당정치를 무시하면서 "패도(覇道)"를 추구하고 있는 이회창에게 새삼스레 "정도"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함을 박근혜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하는 일은 안 되고, 주변은 어수선하고, 그러다보니 남의 동네 돌아가는 꼴에 관심이 가서 기냥 잡다한 생각을 해봤다.

 

관심법이라도 연마를 했음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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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4 15:26 2007/11/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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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찌감치 박근혜한테 붙을 걸...

    근데 논문은? 요즘 뻥구라가 심해서 물어봤음.

  2. ' ') 말걸기님 댓글보고 배꼽 빠짐~~ ㅋㅋㅋㅋㅋ
    근데, BBK는 무슨 치킨 브랜드 같다는 느낌이... -_-;

  3. 할 짓 없는 언론이 별볼일 없는 말도 이래저래 확대해석하는게 더 많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걸기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나, 박근혜가 붙여 줄랑가요?ㅎㅎ

  4. 말걸기/ ㅋㅋ 지금 붙어도 늦지는 않아. 아니 적기일 수도 있지. 그나저나 논문은 안습이얌... ㅠㅠ

    not/ "바다이야기"는 횟집같고 "BBK"는 "BBQ" 같고. 그치? ^^

    산오리/ "할 짓 없는 언론" -> "할 짓 없는 행인"... ㅠㅠ 넘 정곡을 찌르시는군용... 박근혜는 붙여줄지 모르겠지만 아마 말걸기가 안 갈 겁니다. ㅎㅎ

  5. 한나라당 즐입니다 >_<

  6. 에밀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