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단상

개인적으로 가장 딸리는 능력이 기획능력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뭘 해야 할까? 물론 개인적으로야 논문도 써야 하고 이래 저래 할 일이 많지만, 내 일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고민해야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맡은 분야에서야 벌써 일이 쌓이고 쌓였다. 당장 17대 국회 마무리에서 과연 어떤 정책이 있었고 어떤 성과를 거뒀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입법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원내활동에 대한 평가는 어떻고 하는 것을 정리하는 것도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거야 당연히 업무상 해야하는 일이고. 정작 내가 소속한 이 집단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에 피가 마른다. 여기저기서 혁신의 대안이 나오고 있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그러한 의견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했어야 할 일들을 못하고 있다는 자성에 불과하다. 앞으로 하면 되는 일들이다. 좌고 우고 간에 할 능력이 되면 사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거다. 대오각성해서 그동안의 과오를 털면 같이 가는 거고 그렇지 못하면 절대 같이 못간다. 이건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고민의 지점은 이것을 떠난 문제다. 지금 당은 완전 개점휴업이다. 당장 비상중앙위가 열리고 거기서 또 갑론을박하다가 지난번 중앙위처럼 대마도원정대장 이용식이 같은 인간이 깽판을 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 상황은 중앙당은 개점휴업, 지역은 각개약진인 상황이다. 당 3역과 최고위가 일괄사퇴를 했는데, 그들이 데려와 앉쳐놓았던 사람들은 뭔 깡다군지 아직도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온갖 삽질을 다하고 있다. 당규상으로도 그렇고 도의상으로도 그렇고 책임지고 자리 떠났어야할 사람들이 여전히 목에 힘주고 다니는 거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에서 당이 해야할 일, 앞으로 당이 보여줄 수 있는 사업 하나 기획하면 그걸로 당이 움직일 수 있다. 무슨 사업이냐, 기획을 누가 하느냐, 어떻게 진행하느냐의 문제다. 자주파니 평등파니 박터지게 싸우고는 있지만 정작 나가자는 측도 버티자는 측도 전망을 보여줄만한 기획은 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동안 정권인수위는 대운하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고 지금까지 유래가 없던 사유화를 진행하려 한다. 여기에 대해 반대하면서 우리의 의제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의제를 내지 못하는 한 맨날 반대만 하는 당, 데모만 하는 당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원내진입초기에 우리가 사회에 내놓았던 의제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인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거조차도 못하고 있다. 머리속에서는 뭔가 계속 웅웅거리는데, 정리가 되지 않는다. 누구 같이 이야기할 사람도 없다. 이놈의 당은 정파에 속해있지 않으면 뭘 할 방도가 거의 없는 구조다. 왜 이럴까? 이러면서 그동안 평당원의 혁명을 이야기하고 대중정당을 이야기해왔었다니... 날씨도 많이 풀려 옥상에서 담배 한 개피 피우면서 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내 능력의 한계도 절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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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13:44 2008/01/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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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운 내세용~ 전망은 이 소란속에 있을듯해요. 계급장 다 떼고 시작하지 않으면 다 죽음일듯~ 평당원이나 저처럼 안당원이나 정파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이 당내건 당외건 하나의 정치 세력화가 되는 방법을 연구를~부탁드려볼까요?

  2. 에고고..ㅠ

  3. 처절한기타맨/ 옙. 열심히 고민하겠습니다. 조만간 뭔가 또 나오겠죠. 힘 많이 보내주세요~~ ^^

    pillory/ ㅠㅠ

  4. 저는 담배끊은지 두달입니다. 요새 이동네 금연법 땜시 끊길 잘했다 싶네요. 요새 어느때보다도 인터넷에 많이 들어옵니다. 저도 답답해 죽겠네요. 암중모색, 암중모색.. 끈 떨어진 빨치산이 어렴풋이 듣는 중앙당의 난리굿 소리.. 보고 싶습니다...

  5. 민기호/ 오오... 어찌 여기까지 왕림을... 잘 지내고 있죠? 담배 끊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용기가 나질 않아서뤼... 중앙당 잘 정리될 때쯤 되어야 얼굴 한 번 보겠군요.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6. 논문 다 못쓰고 출근했어요?

  7. '원내활동'에 대한 평가는 특히 행인님 같은 분이 좀 잘 정리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회주의'라는 비판이 꽤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 비판이 틀리지야 않을 지 모르지만 제 생각엔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국회의원이 있는 진보정당/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라는 답 자체를 우리가 가지지 못한 채 지난 4년을 보냈다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 '아마추어리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 가지 요소일 테니까요.

  8. azrael/ 넹... 논문은... 이제 써야죠. 네... ㅠㅠ

    삐딱선/ 아,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해 목하 고민 중인데 어떻게 아시고... ㄷㄷㄷ 사실 당 안팎에서 원내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이 취해야할 태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없지 않았음에도 서로 원하는 것이 너무나 달랐죠. 그래서 '의회주의'니 '파퓰리즘'이니 하는 논쟁도 있었고, 당 밖에 있는 인민들(소위 민중들)에 대한 당의 태도에 대해서도 너무 의견이 달리 제기되어왔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 개인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제 그 정리를 시작하려 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너무 정확하게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찍어버리시는군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