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그리고 그 너머

관보 게재와 무차별 진압이라는 수순(?)을 거치면서 냉동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이 시작되었다. 수입도 재개될 것이고. "싸고 맛좋은" 미국산 쇠고기, 명박아 너나 먹어라 해봐야 명박이 그거 안 먹는다. 비싸고 안전한 한우 처먹지. 이명박의 강경선회와 경찰의 유혈진압, 조중동의 전방위 지원사격과 수구세력의 결집은 시민들의 아름다운 촛불집회만으로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을 막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남한 민중은 불과 4개월만에 도심 한복판에서 유린당했다. 미국산 쇠고기만의 문제였다면 오히려 이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정권의 닭짓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언제든 수입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수입결정을 둘러싼 정권의 행태는 광우병보다 더 큰 두려움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이것들을 어케 믿고 발뻗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더 큰 문제는 이토록 격렬하게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대신할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한나라당을 확실히 견제할 수 있다고 신뢰할만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거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이상 기성 정치세력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 스스로가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전환하는 것.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생각한 대로만 된다면 지금 이명박이 청와대 뒷산에 홀로 앉아 '아침이슬'을 감상하면서 긴 삽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도록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리의 역동성이라는 것은 실로 그 주체들을 '진화'시키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집단지성이라는 말. 이거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말인 듯 하다. 재협상 요구를 들고 나왔던 촛불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으로 자신들의 운동 방향을 설정한다.

 

소비자를 의식한 대형유통매장은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만. 소비자들로서 촛불들은 미국산 쇠고기 매장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매장에서 직접구매하는 것 말고도 소비자들의 식도로 미국산 쇠고기가 넘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뒤끝이 저린 정부 역시 검역관리를 엄정히 해서 광우병발생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한다. 쟤들 말을 믿는 닭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전방위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미국산 쇠고기는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불매운동은 이 정권이 자행한 만행에 대한 충분한 대응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명박은 처음부터 먹기 싫은 사람은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한 바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불매운동이라는 것은 기껏해봐야 수입업자들의 똥줄만 타게할 뿐 정권의 반성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거다.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 되지는 않겠지만 수입 쇠고기 불매운동은 의미가 있다. 시장이라는 것이 걍 수요와 공급의 원칙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장주의자들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신뢰 속에서 '집단지성'은 단순한 상품 불매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더 발전된 형태로 삶의 형식 자체를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예컨대 육류소비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말이다.

 

지금까지의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에 한정된 구호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미친 건 소가 아니라 그걸 먹겠다고 온갖 지저분한 짓을 다 했던 인간들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삶 자체를 왜곡하면서 만들어지는 모든 음식물은 미친 인간들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려고 난리가 난 한국정부와는 달리, 그 쇠고기 수출하는 나라 미국에서는 지금 쇠고기 섭취를 줄이자는 운동이 살금살금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상당히 다양한데, 그 중 한 예는 바로 CO2를 절감하자는 취지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로 음식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중 특히 쇠고기 섭취를 줄임으로서 탄소배출량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탄소배출을 얼마나 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이 사이트를 방문해 보라. 단, 샘플이 되는 먹거리가 유럽 및 미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테스트 사이트에 있는 CO2지수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 아쉽다. 아시는 분은 덧글로 설명 감솨)

 

아예 채식을 선언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유보한다. 어차피 나 자신도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삶의 형태를 찾아볼 수는 있을 거다. 쇠고기 섭취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섭취하지 않는 것. 이건 불가능하지 않다. 어차피 그동안 돈이 없어서 쇠고기라는 거 많이 먹어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상황반전될 가능성이 없으며, 로또대박이라도 맞아 돈방석에 앉는다고 할지라도 쇠고기 재놓고 먹을 생각 없다. 이건 누구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운동은 시장주의자들로 하여금 윤리라는 측면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태안반도에 기름 떡칠을 한 삼성제품 불매운동은 절전을 위한 운동으로 전환될 수도 있을 거다.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이랜드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은 동네사람이 직접 제작 판매하는 옷가게(이런 게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만)를 이용하는 운동이 되겠지. 기왕 마시는 커피(공정무역상품이 아닌)라면 동네 사람이 정성을 들여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을 거다. 스타벅스 등등 커피 맛이 아니라 상품의 이름을 파는 업소보다는. 이런 방식, 무쟈게 많지 않을까?

 

이런 방식들은 당장 이명박정부의 부도덕함을 드러내고 그들의 힘을 상실케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다. 그래서 확 뒤비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욕을 먹을 수도 있겠고. 그러나 삶의 형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이명박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거다. 끔찍하지 않은가? 10년, 20년을 두고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사고대로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만이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스러운 한탕의 유혹이 국민성공시대라는 개뿔스런 용어로 치장되는 어이 없는 일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자, 암튼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 저 쉣더퍼컵같은 명박집단의 난장판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가 과제다. 씨앙, 뭐 별 거 있나. 걍 조용히 살려고 했던 넘을 승질나게 한 것이 지 죄지... 갈 데까지 가보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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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30 08:47 2008/06/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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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 삶의 방식을 바꾸기라는 말 참 고민되게 하는 말이여요 >_

  2. 에밀리오/ 앞으로 그거 계속 고민해볼라구요. ^^;;;

  3. 오우 행인님의 창작열이 활활 다시 타오르는군요. 환영이요. "내 안에 이명박 있다"라는 생각이 들게해주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