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표

행인님의 [교육감 선거, 기대가 없다] 에 관련된 글.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얼핏 언급을 한 거지만, 이번 선거를 두고 뭐 진보 대 보수의 한판 승부라는 둥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둥의 오바질을 슬쩍 걸고 넘어진 바가 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주경복 후보가 진보라고 할만한 뭔가를 보여준 바도 없고, 거기 붙어서 뛰어준 전교조가 참교육 하고 있는지 여부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정택이나 이인규처럼 반전교조는 아니다만. 암튼, 게다가 선거운동한다고 열심히 뛰신 일부 학부모단체의 여러분 역시 자식들 대학보내는 것에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일 뿐이지, 교육대개혁의 전망 이딴 거하고는 그닥 연관성도 없는 분들인 것으로 안다. 아니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반론 감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운동하신다는 분들 중 일부가 보혁 대결구도를 조장해주신 덕분에 신난 건 보수세력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 운운 하다가 그 심판은 결과적으로 이명박의 손을 들어 준 결론이 되었다. 당장 이명박은 희색이 만면해서 앞으로도 가열차게 삽질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한다.

 

반대측에서는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15%에 머물렀고, 따라서 유권자 85%가 외면한 대표성 없는 선거였다고 평가절하하지만 그거야 뭐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일종의 "승리적 관점"일 뿐이다.

 

문제는 이번 선거의 득표율이 보여주는 서울시 일대의 계급 계층별 온도차이다. 일단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득표율이 10% 이상 차이나는 지역만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경복 후보는 강북, 금천, 관악구에서 공정택 후보보다 10% 이상의 득표율을 보였다. 특히 관악구에서는 무려 17%에 달하는 격차를 보이며 많은 득표를 했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용산, 서초, 강남, 송파에서 주경복 후보를 압도적으로 따돌렸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서초구에서는 35%, 강남에서는 무려 39% 이상 공정택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주경복 후보에 대한 그것을 앞섰다.

 

주경복 후보와 공정택 후보가 각각 앞선 각 구를 지도로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보수와 진보라는 대결구도를 가지고 지도를 다시 그려보면 물론 위 지도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후보들 중 2번 김성동, 3번 박장옥, 4번 이영만 후보가 얻은 표를 공정택 후보와 합쳐서 확인하면 위 지도 중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하염없이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공정택 후보, 아니 이젠 당선자를 위시한 일군의 보수집단이 '경쟁'을 화두로 내걸면서 애들을 입시지옥의 아귀다툼으로 몰아넣겠다고 한 것에 대해 대다수 유권자들이 "그래, 그거 좋겠다" 하고 표를 던진 거다.

 

특히 사교육 시장에서 왠만큼 버틸 여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서울 중심부와 남동지역, 즉 종로, 중구, 용산, 서초, 강남, 송파, 강동구의 학부모들은 특목고가 되었든 영어 몰입교육이 되었든 다른 동네 애들과 내 자식들과는 비교우위에서 월등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쟁구도가 더욱 첨예해 지고, 이 경쟁의 승리가 돈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면, 그러한 경쟁구도를 옹호하는 측을 찍어주는 것이 장래 자기 자식의 경쟁자가 될 다른 집 자식들의 싹을 밟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제기되는 고리타분한 질문은, 그렇다면 왜 없는 집 사람들은 있는 집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계급 계층에 충실한 선택을 하지 않느냐는 거다.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를 뇌 속에서 지우라고 소리치면서 내세운 프레임(frame)이라는 것은 대안이라는 것이 설정될 때 각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대해 결과분석을 한 어떤 칼럼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측에서 선거에 먹힐만한 프레임을 구성하지 못했다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공정택이 삽질한 동영상이 곳곳에 퍼지고, 그가 교육자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인권적 발언을 한 일이 터져 나와도 공정택은 당선된다. 희망에 불타 열심히 운동하신 여러분에겐 미안한 노릇이고, 2시간 30분을 달려와 조직적 결정에 따른 투표를 한 내 자신 역시 답답하긴 하나 공정택의 당선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답답한 심정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계급투표의 결과물을 보면서 다시금 전의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같은 계급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여실히 깨닫는다. 지금은 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어야 하지만,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이 화두는 이렇게 시기마다 돌아오는 어떤 계기로 인해 또다시 각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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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17:27 2008/07/3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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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8/08/01 11:19

    지난 선거에서 강기갑의원이 이방호를 누르고 당선될 때 어찌됐건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 하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기반에 충실히 투표했다면 선거가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이번 교육감선거에서 주경복후보가 패배한게 서울의 부자동네 강남3구의계급투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것 같다 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외 다른 교육과 부동산에 닿아있는 우리네 소시민들의 욕망도 따지고 보면 게급분석의 토대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는..

  1. 음... 일전에 행인님 지적도 그렇고, 또또씨가 전에 포스팅한대로... 교육감 선거고 나발이고 간에 사실 청소년을 위한 교육? 대안 같은거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쪽에서는 진보 진영이라고 불리는 대다수가 침묵하고 있는거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_ㅠ

  2. 앞으로도 가열차게 삽질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한다.
    이대목에서 혼자 미친놈처럼 웃고 있습니다... ]
    아이고 배야....ㅋㅋㅋㅋㅋ칵 웃다가 실신
    지금은 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어야 하지만
    이대목에서는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구요
    행인님의 글 여러가지로 유익하게 잘 읽고 있읍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렇게 정치적인 글들도 좋지만
    안양천 뚝방 얘기, S-th시절 무용담 이런것도
    양념차원에서 써 주셨으면 해서요
    근데 옛글이 용량이 초과되면 없어지나요
    술한잔 하고 행인님이 쓰신 옛글(뚝방전설)좀
    다시 감상할라니 도저히 안찾아지네요?


  3. 선거...안하면 벌금을 100만원씩 물려야해요. 무조건. 그래야 선거가 선거가 될 수 있겠죠. 물론, 선거가 답이 아니라는 쪽으로 나는 생각이 가고 있지만 말이죠.

  4. 레디앙을 보니 교육감선거가 계급투표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군요.(표현이 좀 이상해졌는데,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는 이해하실겁니다)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진중권은 '계급'이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고.
    궁금합니다. BG가 공정택을 찍었는데 PT는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했다는 orthodox한 시각이 틀린건지. 아니면 "니가 생각하는 계급이란걸 말해봐"부터 시작해서 계급이라는 말을 가지고 지난한 싸움이나 하고 있어야하는건지.
    지금 상황이 혼란스럽습니다. 교육감 선거 결과가 아니라 전진논란(전진은 욕을 좀 먹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등 운동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갑론을박들 때문에.

  5. 에밀리오/ 교육에 대한 대안은 교육분야 한 방향에서만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동시진행되야 할 테죠. 그런데 그런 논의를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와닿질 않으니까요... 답답하죠...

  6. 엔탈피/ ㅎㅎㅎ 그렇군요. 뚝방 이야기는 잡기장 목록에 [뚝방의 추억]이라는 타이틀로 되어 있습니다. 뚝방전설은 여길 찾아주셨던 분의 아이디였구요. ㅎㅎ 가벼운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은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올리기가 어려워지는 듯 하네요. 뭐 이것도 게으름의 소치겠지만요. 언제나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

  7. 박노인/ 선거 안 하면 벌금 때리는 나라도 있더군요. ㅎㅎ 보이콧 권리를 인정하라~~!! 인정하라~~!! 아마 박노인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제 생각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

  8. 들어보니... 보수층에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선거운동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소망교회 같은 곳에서 열심히 선거운동도 한 것 같던데요. 제가 보기에는 계급투표라고 하기보다는 소망교회가 대통령도 만들고 교육감도 만든다는게 더 적절한 상황 판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9. 보수도 진보도 소망교회를 넘지 못하고, 한나라당도 진보신당도 소망교회를 넘지 못하는 기괴한 나라. 저는 아직도 정당이 없는 진보는 개소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일개 교회만도 못한 정당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10. 지나가다/ 레디앙에 글 올린 송경원의 분석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강북으로 표현되는 중저소득층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죠. 대학이 신분상승의 관문으로서 그 역할이 이젠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들을 좋은 대학 보낼 수만 있다면 계급이고 계층이고 가리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은 곧 상위계급 혹은 BG에 대한 선망일 수 있고, 나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 다음세대는 그 위치에 설 수 있다는 희망 내지는 욕망의 발현이라는 거죠. 그 희망 내지 욕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변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 거구요.

    진중권이 "계급"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그 "계급"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진중권이 "계급"관련 논의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군의 집단이 고전적 맑스주의(맑스가 아니구요)에 침착된 구태를 반복하기 때문일 겁니다.

    전진이라는 조직은 어차피 정치실천조직이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활동에 비판할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진보신당 당게에서 분출되고 있는 논란은 일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향후 노건추의 활동과 전진의 활동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지켜봐야겠지만, 정당운동에서 중요한 부분이 자기 사상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정치현실에 반영하려는 자세라고 할 때 전진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발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죠.

    저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자기 사상에 대한 표현과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해요. 그것이 당장은 혼란스러워보일 지라도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보거든요. 잘 아시다시피 사실 우리 사회는 이런 갑론을박을 활발히 펼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은 감추고 다른이의 정체성엔 말도 안되는 색칠을 하는 일이 지금까지 진행되었잖아요. 그러다보니 "보수"도 아닌 것들이 "보수"노릇하게 되고, 상식적 자유주의자 진중권 같은 사람이 좌파노릇 하게 되고... ㅎㅎ

    당이 아직까지 자기 깃발을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구요,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거라고 봅니다만, 뭐 안 되면 다른 방향을 찾는 거구요, 어쨌든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내 역할을 찾아봐야겠죠.

    어려운 질문을 주셨는데 장황한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건강하시구요.

  11. 바람/ ㅋㅋ 맞심더. 한나라당 욕을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정치활동의 장점을 배워야 하고, 예배당 욕을 하더라도 예배당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본받을 건 본받아야겠죠. 그런데 어쨌거나 소망교회의 활동 역시 그들 계급에 충실한 것이었으니 말해 무삼하리요. ㅋㅋ

  12. 나도 트랙백을 할 수 있네요
    우와~~~~~~~~디게 신기하네요..
    (디지털 지체아)

  13. 이든/ ^^;;; 전 지금도 다른 메타사이트 글들을 트랙백하려면 애를 먹어요... 컴에 문젠지...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