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전가의 대상을 찾는 사회

한국일보라는 매체가 '초딩'시리즈를 싣고 있다. '초딩'이라고 불려지는 초등학생들의 요즘 세태를 밀도있게 다루어보겠다는 취지다. 그리하여 시작된 내용은 '초딩'들의 진한 애정행각, 어른을 능가하는 잔인한 폭력성 등이다. 그리고 그러한 '초딩'들의 탈선의 원인으로 인터넷 및 폭력적인 영상매체를 들고 있다. 인터넷의 성인문화, 게임의 자극적인 내용, 수시로 접할 수 있는 영상매체들의 폭력성 등이 순진무구해야할 '초딩'들을 물들였다는 것이다.

 

mbc가 급작스레 여고생들에게 번지고 있는 '이반'현상을 심도있게 보도했다. 이성교제보다는 동성교제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청소년 지도에 심각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이반'이라는 개인적 성향을 마치 비정상적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취재팀, 이런 '이반'현상의 원인을 묘한 곳에서 찾는다. 바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반'이라는 단어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이 쉬워지면서 '이반'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전방GP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김일병'의 이 '비뚤어진 가치관'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다름 아닌 "special force"라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해당 게임에 등장하는 전투배경 중 하나가 사고가 일어난 전방 GP와 흡사하다는 것도 온라인게임이 김일병을 물들였다는 중요한 논거로 이용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가지 사례에서 어느 누구도 지도감독의 대상이 누군지를 살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반'현상의 경우는 사실 '청소년 지도'라는 외부의 영향력이 왜 필요한가를 고민해야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처럼 실제 필요한 부분에 대한 분석은 빠진 채 '일탈'의 원인을 만만한 인터넷에서 찾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초딩'이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 다만 이성에 대한 애정이 되었든, 또는 폭력성에 대한 동경이든 이 모든 것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그 보살핌을 누가 해주어야 하는가? 해당 기사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예컨데 부모의 책임같은 고전적인 부분조차 그다지 언급이 되질 않고 있다. 요즘 '초딩'들, 어찌보면 부모보다 하는 일 더 많고 바쁘다. 학교 가랴, 학원 가랴, 운동하랴... 학원도 어디 한 두 곳인가? 아예 조기교육 운운하면서 '국문'도 깨치기 전에 영어학원으로 휘몰리고 혓바닥 어디를 절개해 '빠다' 바른 발음을 하도록 만들어지는 우리 아이들. 얘네들에게 이성에 대한 애정과 폭력에 대한 반응과 기타 등등에 관한 이야기 해줄 시간이 어디 있겠나? 누가 해주겠나? 학원 강사가 가르치라는 것은 안 가르치고 인성이 어떻느니 뭐가 어쩌니 가르치다가는 모가지 날아가기 십상일텐데, 어떤 인간이 시간내서 그거 가르치고 앉아있겠나?

 

'이반'현상이라는 것은 더 웃긴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 그거 이성에 관한 것이든 동성에 관한 것이든 다 똑같다. 그걸 왜 '비정상적'인 것으로 자꾸 몰아가는가? 사람의 자연발생적인 감정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다수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향을 정상으로 상정하고 그 외의 것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그런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공중파 방송이 그러한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 후진적 사회인식이 그렇게 지켜야할 가치로 포장되어야 할까?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경향, 그러한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무시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 누가 만들어내고 있나? 누가 그 폭력적이고 야시꾸리한 환경에 '초딩'들을 끌어들이고 있는가? 애들 코묻은 돈 끌어모아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업체들, 포털들, 그리고 그걸 뉴스로 이용하는 언론들, 이거 키워야 국가경쟁력이 살아난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관료들, 그 관료들하고 짜고 이 환경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는 정치인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왜 눈코 뒤비고 봐도 보이질 않을까?

 

책임전가의 대상을 찾아야만 안심하는 자들은 사실 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스스로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부정적 현상의 원인에서 자신들은 자유롭고 싶은 이 지독한 이기주의자들. 그리고 그 이기주의를 '정상'으로 환원하려는 이 폭력성. 왜? 차라리 초고속인터넷망을 특정인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해버리지? 그건 못하겠지? 돈벌이가 사라지니까. 그지같은 쉑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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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4 16:12 2005/07/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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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07/14 17:19

    행인님의 [책임전가의 대상을 찾는 사회] 에 관련된 글. 저로서는 최근에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정부 부처까지 나서서 정책이랍시고 설레발을 쳐대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의 "악영

  1. 이반 현상 우리 때도 유행했었는데=_=;; 유행현상 따라하는 대부분의 애들이 거의 이반이 아니었지만 뭐 이반이건 일반이건 당최.. 그건 좀 다룬 사람이 대빵 촌스럽다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네용
    초딩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자기결정권을 얼마만큼 가질까요? (좀 딴 소린가요;;) 저는 그게 항상 궁금하고 도저히 모르겠어요. 특히 성적인 권리 쪽은 어려워용

  2. 초딩에게 아예 그러한 권리 개념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죠. 매우 많은 측면에서 엄청난 제한을 하고 있지만(그런 거 보지 마라, 보면 안 된다...) 실제로 초딩들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광범위하게 자신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결정과 관계된 의사능력이 아직 부족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철학적 교육이 절실한 거죠. 그런데 원 교육시켜야할 사람들이 철학적 소양이 부족한 바에야 바랄 걸 바라야한다고 해야할까나????

  3. 인턴넷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암만, 특권을 해체시키는 통제 않되는 다른편이 있으니 틈만 나면 공격하고 싶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