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로맨스

웅얼거림님의 [팔찌와 공포를 파는 이들.] 에 관련된 글.


결국 나올 이야기는 나오고야 만다. 특히 절실하게 현 상황을 돌파해야만 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어떤 이야기든 득이 되는 이야기를 갖다 붙여야 하는 조급함을 보이게 된다. 성추행죄를 저지른 최연희 의원에 대한 정치적 옹호론이 번지면서 급기야 "클린턴도 넘어갔는데..."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사람들의 논리인 즉슨,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던 클린턴도 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었다. 이걸 파헤칠라고 특별검사 임명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두툼한 보고서까지 만들어졌으나 미국 국민들 60%가 클린턴을 재신임했고 그리하여 클린턴은 끝까지 임기를 마쳤다는 거다. 그런데, 이놈의 한국땅에서는 '그까짓' 성추행 '한번' 한 걸 가지고 왜 이 난리를 치느냐는 것이 이 고명하신 분들의 최연희 옹호론이다.

 

그런데 이건 근본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 물타기 하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전자라면 이들은 자신의 무식함을 통탄해야할 일이고 후자라면 최연희의 사건과 더불어 2차 성폭행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일 게다. 왜냐하면 클린턴의 사건과 최연희의 사건은 본질적으로 문제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사건은 말 그대로 "불륜"이 핵심이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될지언정 사법적으로 처벌이 될 일이 아니었다. 한국의 형법처럼 간통죄가 인정되는 나라도 아니고 혼인빙자간음죄가 적용될 일도 없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될 수는 있으나 특별검사의 보고서에서도 클린턴이 르윈스키로 하여금 업무상 특별한 보상의 대가로 성상납을 요구했다는 혐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언론사가 꼬집은 것처럼 수백페이지의 정치포르노물(스타검사의 보고서)을 보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혈세를 퍼부은 사건이 바로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소위 지퍼게이트)의 내용이다. 이 쑈를 위해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클린턴의 정액흔적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하고 관련자랍시고 백악관에 근무하던 거의 모든 직원들을 불러 조사를 하고 난리를 쳤으나 그 덕분에 머나먼 이역만리 한국땅의 스포츠 찌라시들만 날개돋친듯 팔리게 한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반대로 최연희 성추행 사건은 한 마디로 "범죄"다. 최의원과 피해자는 사전에 어떠한 교감도 없었고, "불륜"이 벌어질 일도 없었고, 말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범죄행위였던 거다. 이 명확한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겠다. 게다가 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의원은 변명이랍시고 "업소 주인인줄 알았다"는 희안한 말씀까지 어록에 추가했다. 지금까지 전국의 "업소 주인"들께서 얼마나 더러운 일을 당해 오셨는지를 한마디로 표현한 불후의 명언이라 할 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고도의 도덕적 청렴함을 일종의 의무처럼 지고 있는 고위직의 공인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했다는 점에 있다. 클린턴을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클린턴 끌어다가 물타기 하면서 최연희를 옹호하는 것은 남의 거시기로 자위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엉뚱한 옹호론이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사람들, 당장 언론에서 최연희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 실종되고 이해찬 총리의 골프장 라운딩 사건에 대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현재의 상황에 안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이런 물타기를 진행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당장 한나라당이 발의한 전자팔찌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고 그거 논의하다보면 최연희의 이야기는 계속 불거져 나오게 될 것이다.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판단되자 피해자가 결국 고소를 결심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는 판이다(물론, 왜 하필 전국적인 지방선거가 코앞에 있는 시점에서 거대 언론사 기자들이 제1야당 인사들을 만나 술판을 벌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문제를 확산하는 것은 성추행 논의를 종식시키기 위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이건 어떤 덜떨어진 의원들이 이야기하는 "한국의 퇴행적 음주문화가 낳은 희생양" 수준의 이야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덜 떨어진 인식 그 자체가 문제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씩이나 해먹을 정도면 문제의 본질이 뭔지에 대해서는 인식을 할 수 있는 두뇌를 가져야 한다. 그런 두뇌도 없이 그저 국민들 앞에 두고 사기질이나 치려고 하는 것은 소양이 되지 않은 인간들이 자리차지나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대표다. 국가대표가 이모양이면 나라망신 제대로 시키고 있는 중이다. '국민'으로서 쪽팔리다. 술처먹고 "업소 주인"들을 주물럭 거리는 것은 로맨스가 아니다. 분명히 그것은 "성추행"이라는 범죄다. "국회의원"들이 만든 "형법"이라는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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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2 15:15 2006/03/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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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의 정치문화는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다. 그러니 '개기는 게' 만사다.

  2. 말걸기/ ㅎㅎㅎ 그건 비단 '한국'의 정치문화로 이야기할 일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고 '정치'문화의 특징이 아닌감? 그런 '정치'문화를 바꿔보자고 민중들은 맨날 핵핵거리는 거고. 그나저나 짐정리는 언제 다 할꺼유??

  3. 화요일 삼실 갈 예정... 일요일 이 시간에 뭐하는겨?

  4. 문건 작성중... ㅠㅠ

  5. 으음 그 사람에게 천벌을..

  6. 앙겔/ 천벌... 무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