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패

행인['오링'이라고 들어나 봤나?] 에 어느 정도 관련된 글.

요즘 타짜라는 영화가 뜬다는데, 떴다는 영화와 인연이 별로 없는 행인은 이 영화도 아직 볼 계획이 없다. 허영만 원작의 타짜는 이미 일독한 바가 있으니 그닥 아쉽지는 않다. 아무튼 바다이야기의 쯔나미가 한판 쓸고 간 한반도 남반부에서 도박에 관한 영화가 그런 대로 운때를 맞춰 개봉된 것 같다. 하기사 삶이라는 거 자체가 도박이다만...

 

화투로 할 수 있는 도박, 예컨대 고스톱은 지역마다 룰이 틀리고 시시때때로 룰이 변한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진데, 지역마다 '섯다'의 족보가 틀린 경우도 많다. 속칭 '도리 짓구 땡(약칭 짓구 땡)'이라는, 기본적으로 5개의 화투장으로 땡을 잡는 도박은 그닥 동네마다 룰의 차이를 보이지 않던 종목이었는데, 최근에는 '섯다'와 '짓구 땡'에 포커방식의 한 장 더 받기 룰을 적용하는 예도 있다. 당연히 이런 룰의 도입은 판돈을 키우기 위해서다.

 

포커는 5포커든 7포커든 일단 바닥에 자기 패 중 일부를 보여주게 되어 있다. 7포커는 처음 3장을 받고, 그 중 하나를 바닥에 놓아 선을 정한 후 6장째까지는 처음 뒤집은 패와 같이 상대방에게 보이고 마지막 히든을 받게 된다. 즉, 상대방에게 보이는 패는 4장, 끝까지 쥐고 앉아 레이스를 운용하는데 이용되는 패는 3장.

 

전문도박사들은 바닥에 깔린 패만 봐도 상대방의 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지 바닥패를 보고 어림빵으로 때려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패가 돌아간 순서, 바닥에 깔린 패들의 내용과 분량, 여기에 더해 레이스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숨소리와 손의 미세한 떨림까지 순간적으로 계산을 하여 나오는 추정치가 그 '짐작'이라고 한다.

 

부산 모 호텔 카지노에서 전문 딜러로 수 년간 먹고 살았던 행인의 친구가 들려주기로는 딜러는 이미 판의 승자가 누가 될 수 있을지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돌린 패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패만 가지고 따지면 누구에게 고급 패가 돌아갔는지 딜러는 다 알고 있고, 다만 그 다음은 오직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짱구를 굴리고 깡다구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는 것 뿐이다. 이넘은 친구들과 만나면 절대 포커나 고스톱 치지 않는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딜러 출신 친구넘의 말을 빌리자면, 도박판에서 최종 승자가 되는 사람은 기술과 계산력과 판단력과 깡다구가 조화된 사람이다. 그저 질른다고 해서 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딜러는 일부러 잘 지르는 사람에게 처음에 좋은 패를 주기도 한단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삘이 올라 지름신공을 발휘하는 순간부터 다른 쪽으로 좋은 패를 돌리는데, 그 때부터 지름만이 살길이라 여겼던 사람은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거다.

 

여러 명이 포커를 칠 때, 중요한 것은 지금 레이스에 접어들어 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도대체 누구를 견제하면서 지르고 들어오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 패만 보면서 지르는 사람은 하수, 바닥패와 자신의 패를 읽으면서 꼼꼼한 계산 하에 지르는 사람은 중수, 같이 레이스를 하는 사람 중 특정 타겟을 정하고 집중공략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고수에 속한다고 한다. 하수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행인으로서는 그 고수의 경지가 가능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만 암튼 그렇다고 한다.

 

고수는 그래서 적절하게 판을 조절하면서 타게팅 되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씩 떨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은 그 사람과 1대1 대결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버린다. 무슨 무협지의 진검승부같지 않나?

 

이 도박사들은 눈이 매우 좋다. 전문도박사들 중에 안경 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발군의 시력과 극강의 순간포착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게다. 따라서 쥐고 있는 패와 히든 패는 절대로 타인에게 보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간만이라도 상대방에게 띄이게 되면 그 때부터 그 카드는 히든이라는 이름의 카드가 아닌 것이 된다.

 

어느 도박판에서든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히든까지 다 까뒤집고 레이스 지르는 사람은 없다. 이건 고수가 아니라 도박의 생기초만 알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히든을 만질 때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끊임 없는 의구심을 만들도록 해야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포커 페이스'다.

 

국제정치에서는 가끔 패를 다 까고 난 다음 레이스를 하는 집단이 보인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한국. 이 이상한 외교를 하는 한국 정부는 상대방에게는 미리 패를 다 까고 레이스를 지르면서 되려 자국 국민들에게는 패를 보여주지 않는 희안한 도박스타일을 보인다.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는 꼴을 보면 가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짓 하기 위해 지금 제주도로 전의경 1만명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집단이 패 다 까고 레이스 하는 희안한 짓을 또 하고 있다. 북한이다. 북한의 외교는 항상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벼랑끝 외교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고는 있지만 쥐뿔 암 것도 가진 것 없는 북한이 뭔가 항상 한 방을 터뜨릴 수 있을 것 같은 히든을 쥐고 있다는 인상만으로 미국의 그 끊임없는 깡패짓에 맞장을 뜨는 것을 보면 상황 그 자체만으로는 대단하다는 평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북한이 갑자기 패 다 까고 레이스를 지르고 있다.

 

문제는 그 패를 상대방인 미국을 향해 지른 것이 아니라 남한을 향해 질렀다는데 있다. 자위권 차원의 핵이라는 그들의 해명, 그리고 자신들의 핵이 국제평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자가당착, 이건 사실상 변명이자 뻥일 뿐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핵은 결코 미국 본토를 대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세계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심금을 울리는 호소문으로 미국과 한 판 뜨자고 생 난리를 쳤던 주미철본 같은 집단은 당장이라도 위원장님의 하명만 있으면 백악관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나보다만...

 

하지만 북한은 그 패를 깜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지를 히든카드가 남지 않게 되었다. 전쟁불사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건 카드로서는 무용지물이다. 전쟁은 지들 맘대로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대내 결속용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긴장강화해서 단결을 종용하고 어쨌든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니 그걸 핵개발의 덕으로 돌림으로써 정권에 대한 충성도도 높이고. 그러나, 결국 이것은 자국 국민은 물론이려니와 세계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것에 불과하다.

 

패 다 들여다보이는 판에서 앞으로 레이스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 패를 까지 않은 측의 행동에 달렸다. 문제는 그넘이 쥐고 있는 패도 많고, 지를 돈도 많다는 거고, 상대적으로 시간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다. 중간에 껴 있는 남한은 이래도 곤란하고 저래도 곤란하다. 결정적으로 남한은 자기 자신이 쥐고 있는 패가 없다. 어디서 하나 받든지 만들든지 해야하는데 지금 정권의 능력으로 봤을 때는 난망한 일일 뿐이다.

 

도박판의 명언 중의 하나. 결국 돈 따는 놈은 하우스장밖에 없다... 당구장 용어로 하자면 죽방 쳐서 돈 따는 넘은 당구장 주인밖에 없다... 그넘이 누군가는 조금 더 있다 확인이 되겠지만, 현재 스코어는 일본이 유력하다. 태평양 서단의 물막이 역할을 하던 일본이 지금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자위군을 창설하고 핵무장을 하는 길로 달려가고 있다. 역사는 이렇게 또 제 갈길을 간다. 역사를 도박판으로 만든 인간들까지 감싸안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0/18 12:44 2006/10/18 12:44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