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경선제 문제 간략 정리

행인님의 [오픈프라이머리 반대서명] 에 관련된 글.

위 포스팅 댓글에 뎡야핑님께서 오픈프라이머리의 위헌성에 대해 날로 드시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신 바, 이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 포스팅을 올린다.

 

일단 오픈프라이머리, 지금 한국 내에선 개방형경선제라고 하기도 하고 민주노동당에서는 민중경선제라는 아주 독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그 제도가 미국산(産)이라는 것은 다들 아시는 터라 요 부분은 생략.

 

우선 예비선거(primary)의 연원을 살펴보자면, 그 근저에는 미국 정당의 보스정치가 가지고 있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소위 '막후의 실력자(the evils of the "smoke-filled room")'들에 의해 공직선거후보의 공천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하향식 정당구조가 가지는 비민주성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채택된 것이 예비선거제도인 것이다.

 

물론 그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19세기 중반부터 예비선거의 시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연방정부나 주 차원이 아니라 county 단위에서 이러한 제도가 발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군소지역단위로는 1842년에 Crawford county, Pa., 주 단위로는 1866년 California주와 New York주가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다가 4대 선거원칙이 채택된 완성된 형태의 예비선거제도가 20세기와 더불어 진행된 것이다.

 

이에 대해선 "미국 예비경선제도(프라이머리제도) 탄생의 역사" 참조.

 

한국사회에서 기성 보수정당들이 보여왔던 행태를 보자면, 당내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예비경선제도가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예비경선제도는 정당구조 내에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 당원의 선택에 의해 공직선거후보자를 선출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각 지역위에서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나 비례대표의 선출과정을 각 후보들의 경선 후 당원직선으로 하는 것은 이러한 예비경선제도의 한 모습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미국에서 예비경선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closed primary : 폐쇄형 경선제. 소속정당의 당원만으로 예비선거 진행

open primary : 개방형 경선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과 관계 없이 특정정당의 예비선거에 참가가능. 당원은 물론 당적이 없는 사람과 다른 정당의 당원까지도 참가하여 예비선거 진행

semi-open(semi-closed) primary : 반개방형(반폐쇄형) 예비선거. 소속당원과 무소속 유권자가 참여하여 예비선거 진행. 타당의 당원은 참여할 수 없음

blanket primary : 유권자가 당적 유무와 관계 없이 여러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이에 대해선 "미국의 오픈프라이머리 제도" 참조.

 

미국 법원의 입장은 일단 '당헌당규우선주의'로 보인다. 어떤 형태의 프라이머리를 하던 간에 그것이 당헌당규에 정해진 바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66년에 캘리포니아주가 주민발안으로 blanket primary제도를 채택했는데, 이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위헌판결을 한다. 그런데, 실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blanket primary 자체가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캘리포니아주 양대 정당이 모두 closed primary제도를 두고 있는데 주의 제도가 이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데, 연방대법원의 결정대로라면 정당의 당헌당규가 법률의 규정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원칙적으로는 이것이 바람직한 것이지만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는 통용이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정당법 및 공직선거법은 당헌당규로 맞설 수 있는 성질의 법률이 아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좀 더 밀도있는 분석이 필요할 것이나 행인의 개인사정상 이걸 할 시간은 도저히 날 것 같지 않아 여기서 일단 중단.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공직선거법이 가지는 이 막강한 위력으로 인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하고픈 열우당은 140명이라는 의원이 공동발의하여 오픈프라이머리를 공직선거법 안에 명확하게 규정하고자 공직선거법 개정법률안을 작년 11월 8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사안만 보더라도 정당의 당헌당규로는 현행 공직선거법 안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하기에 상당한 곤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현행 공직선거법이 오히려 미국 판례의 적용에 유리할 수도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는 어떠한 형태의 오픈프라이머리도 가능할 수 있는데 열우당의 개정안에 따르면 semi-open primary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째든...

 

다시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연방대법원의 판결취지와는 관계 없이 2000년 이 판결이 나온 이후 민주 공화 양당의 당원 중 오픈프라이머리 자체에 불만을 가진 일군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위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즉, blanket 뿐만이 아니라 당원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open primary 역시 결사의 자유를 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한국의 경우는 헌법상 결사의 자유(21조)뿐만이 아니라 정당의 활동보장(8조)이라는 측면에서 역시 개방형경선제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개방형경선제를 실질적으로 진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중에 논의될 문제다. 근본적으로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논해야 한다. 인기투표는 방송사 연예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족하다. 포퓰리즘 운운하면서 포퓰리즘의 마법에 홀라당 넘어가버릴 수 있는 이런 제도를 개념정리도 없이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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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6 17:40 2007/03/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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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률 도입 없이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당헌 차원에서 실시할 수 없는데
    법률 도입조차 헌법 8조에 침해라는 얘기로군요.
    잘 읽었어요^^ 호호

    (근데 현행 공선법상으로 어떤 형태의 오픈프라이머리도 가능하다는 건 개정으로 도입할 경우만을 말하는 거죵?)

  2. 뎡야핑/ 이미 현행 공직선거법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그 조문이 가지고 있는 위헌성에 대해선 왈가왈부가 많이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헌법8조가 보장하는 정당의 활동은 우선적으로 정치적 결사체 스스로가 채택한 자신들의 당헌당규를 지킬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도 열우당이 semi-open primary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은 자기 당의 행사에 한나라당이나 다른 당의 당원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구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따라서 제가 제기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위험성이 무엇인지를 보자는 거죠. 미국의 경우 여러 제도적인 문제가 결합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양당구조, 즉 돈 있고 사람 있는 기성정당만이 정치세력으로 굳건하게 남을 수 있는 구조를 양산해낸 제도적 기반 중의 하나가 open primary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 이걸 그냥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죠. 군소정당은 다 사라져야 하는 거죠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