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점입가경

행인님의 [로스쿨로 대학교육 정상화??] 에 관련된 글.

기왕 시리즈 시작한 거,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꾸나.

 

법학교육위원회가 널뛰기를 하면서 로스쿨 이야기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 난리통의 주체가 교육부와 대학당국 및 교수들이라는 것이고, 정작 사법구조의 실제 핵심들인 법원과 법무부, 변협 등 변호사집단은 관망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학교육위원회가 매일 한 건씩 문제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데, 예를 들면 현행 사법고시 합격률 반영, 지방할당 백지화, 제재대학에 대한 불이익 등의 말을 뱉을 때마다 대학과 교수들은 생 난리가 나고 있다.

 

YS 정권에서부터 사법개혁의 기치 아래 진행되어왔던 로스쿨 논의는 실제로 정치논리에 의하여 그 기획이 잡혀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권차원에서 사법개혁을 위한 각종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법학교육개선 및 법조인 양성과정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문민정부"가 그랬고 "국민의 정부"가 그랬고 "참여정부"까지도 그래 왔다. 여기서 의문은 왜 정권차원에서 로스쿨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이다. 당연히 표면적으로는 사법개혁이나 법률서비스개선 등의 그럴싸한 목적을 제시했지만, 이제 로스쿨 논의에 대한 대강의 흐름을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게 다가 아님을 대충이나마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로스쿨 도입은 정권차원에서 볼 때는 1타 3피, 아니면 1타 4피의 효과가 발생하는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다. 정권의 입장에서 로스쿨을 설치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남겼다는 표시도 낼 수 있는데다가 인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사법부에 대해 뭔가 칼을 들이밀었다는 명분도 세울 수 있고, 더 나가 교육개혁에까지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과시를 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방법도 많이 있는데 왜 하필 로스쿨인가 하는 것은 YS 정권 당시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낸 사법고시 합격생 단계적 증원과 로스쿨이 가지는 상징성의 차이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YS 정권이 설치한 세계화추진위원회(세추위)는 사법개혁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의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법조인 양성과정 및 법조인 충원에 대한 문제도 고려되었다. 당시 로스쿨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로스쿨에 대한 대안으로 2+3제(학부 2년 간은 교양 및 전공기초, 3년 간은 실무교육 중심의 법조인 양성과정), 4+2제(학부 4년 후 2년 간의 대학원 교육) 등의 교육과정개편 중심의 안도 제시되었으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법조기득권세력의 격렬한 반발로 인하여 로스쿨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다만 단계적으로 사법고시합격생을 1000명까지 증원한다는 타협안만을 성과물로 남긴 채 남은 과제를 다음 정권으로 넘겼다.

 

DJ 정권에서는 기존 논의를 받아 로스쿨 논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이 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의 기본골격은 거의 완성되었다. 참여정부는 DJ 정권에서 이어진 로스쿨을 현실적으로 실물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만 4년에 걸친 진통 끝에 현행 로스쿨 법이 올해 7월 통과된 것이다. 그렇다면 DJ 정권이나 참여정부는 왜 YS 정권과 같이 변호사 증원프로그램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고 로스쿨에 집착을 보였는가?

 

YS 정권 이후 사시 합격생이 1000명까지 늘어났다. 고릿짝 시절에 한 해에 10~20명, 어떤 해는 한 해 4명 뽑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정도가 아니라 상전벽해의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기는 하나 이미 YS 집권 당시에도 사시합격생은 300명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YS 정권 이후 사시합격생이 1000명까지 늘어났다고 하나 일반 인민들의 입장에서는 사법구조가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이건 다른 사법개혁 분야 역시도 마찬가지다.

 

수사권 독립이니 공판 중심주의니 하는 이야기들을 간혹 들어봤다고는 하나 그것들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대다수의 대중들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 법원은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인생 즐겁게 사는 길의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우리의 인식수준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하던지 재판부에서 미국식 법정논쟁이 벌어지던지 더 나가 배심원제가 도입되던지 말던지 하는 일은 본인이 당하기 전까지는 관심 밖의 남의 일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YS 정권 당시 갑론을박 쌈박질 끝에 사시합격생을 1000명으로 늘려놔봐야 그게 YS 정권의 업적인지 뭔지는 아무도 평가를 하지 않는다. 공은 공대로 들여놓고 정작 결과에 대해선 표가 나지 않는 거다. 방청소 말끔히 하고 설겆이 깔끔히 해봐야 집안일 표나지 않는 거랑 마찬가지. 이러니 정권차원에서는 뭔가 그럴싸 하고 눈에 확 뜨이는 무엇이 필요하게 된다. 내용은 부실한 채 장기적으로 얼마나 비용을 퍼부어야 하는지 모를 시내 버스 준공영제나 "청계천 복원(실상은 '명박천 건설')" 사업을 특유의 불도저식 삽질소신으로 밀어부친 이명박을 보면 이해가 된다. 되던 말던 내용이 어떻던 간에 해 놓고 나니 업적이라고 떠들 수 있게 되고, 대중들은 그가 떠드는 업적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것의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로스쿨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다. 정치인들에게 로스쿨은 하면 좋고 안 해도 별로 부담은 없는 그런 존재이다. 사법개혁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장식일 뿐이다. 그건 어차피 사법부와 거기에 관련된 관료들이 할 일이지 임기제 정치인들이 종신으로 책임을 져야할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국정브리핑이나 청와대 블로그에 가서 로스쿨을 검색해보면, 로스쿨 반대론자들과 함께 하는 신중하고 밀도있는 논쟁은 하나도 없고, 일방적으로 정권차원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반대편의 논리를 무시하는 글만 올라가 있다. 이 "선수"들이 한 짓을 보면 로스쿨 아니면 이 나라 사법구조는 완전히 멸망할 것처럼 떠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스쿨법 만들어 놓으면 전국 각 대학교에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고, 법학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과정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며 그 효과는 온전하게 인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된다. 그 번쩍거리는 법학전문대학원 건물에서 그 비싼 비용을 들여 나온 변호사들이 뭔 짓을 하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민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세워졌고, 그 난리통에 뭔가 떠들썩한 논란이 있었고, 한다 하는 학자들과 명망있는 시민단체들이 이에 대해 찬성하였던 것만 기억에 남게 된다. 그들은 법정에서 상대적으로 변화한 법률시스템을 몸으로 체험하기 전까지 외형적인 변화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편의상 '로스쿨 비대위'라고 일컬어지는 일군의 그룹들이 현재 법학교육위원회의 일사일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법학교육위원회가 최근 3년 간 제재를 받은 대학에 대해서는 인가결정 시 제재를 가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여기 저기서 볼 멘 소리가 들려온다. 모 대학은 대학이 제재를 받았던 사실과 로스쿨 문제는 별개의 문제인데 왜 관련을 지으려 하느냐고 항의한다. 로스쿨은 법과대학만의 문제니까 로스쿨 준비현황만 심사에 반영되면 된다는 논리다.

 

이론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실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설명하기는 곤란한 논리다. 정원증원을 위해 편법을 동원했거나 비정상적 재단운영을 하는 대학에 대해 이러한 문제점은 접어두고 로스쿨 유치를 위해 얼마나 퍼부었느냐만을 고려한다면 '사법'개혁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저런 비도덕적인 학교에서 무슨 법조인을 만드나?"라는 비판에 대해 백날 그거와 이거는 별개의 문제라고 떠들어 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거다.

 

지역할당을 없앨 수 있다는 방침이 나오니까 법률 위반이라고 난리가 났다. 분명히 법률에서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문의 원칙이 정해져 있긴 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로스쿨이 지방에 설치된다고 해서 '지역 균형 발전'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거다. 지역에 로스쿨을 안배하는 원칙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지역 균형 발전'이 될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관련이 있나? 이거야 말로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방대 육성프로그램차원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예를 들어 영남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된다고 해서 그게 대구지역의 발전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법학교육위원회의 널뛰기도 가관이지만 여기에 일희일비하는 대학과 교수들의 모습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이 난리통에 로스쿨 비대위라는 집단은 "특권법조를 옹호하면서 로스쿨 설치를 추진하는 청와대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새사회연대라는 시민단체(물론 자신들은 인권단체라고 주장하나 글쎄다...)가 주축이 된 집단인데, 이들의 주장을 보면 기가 막힌다.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된 로스쿨인지 몰랐다는 말인가? 청와대가 1200명 운운한 것은 교육부에 힘실어주기라기 보다는 그런 과정을 거쳐 최대 2000명까지 장기적으로 정원을 늘림으로써 지들이 정치적으로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이 단체가 그걸 모를리가 없건만 엉뚱하게 타겟을 청와대로 설정한다. 차라리 투쟁을 하려면 변협 사무실을 점거하던가...

 

참여연대가 난리를 피우는 것은 그런 대로 이해할만하다. 어차피 그 동네에서 로스쿨 이야기하는 집단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이고 이 조직은 그 대다수가 현직 대학 교수들이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법학과 교수들이고. 자기 밥그릇이 걸린 문제이니 당연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로스쿨 비대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올바른 로스쿨"을 만들자고 주제를 설정한 것 자체가 전술적 오류였다는 것은 이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처음부터 "왜 로스쿨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올바른 로스쿨"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 로스쿨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의하기보다는, 로스쿨 설치를 일단 전제하고 그렇게 설치되는 로스쿨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서만 자기 주장을 펼쳤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로스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으나 이들 단체로부터 번번히 묵살당했다. 민주노동당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던 이들은 정작 법안이 통과되려할 때마다 민주노동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적 차원의 치적쌓기를 벗어나 실질적으로 인민에게 도움이 되는 법조인 양성구조를 논해보자고 했던 민주노동당의 의견은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한 채 사장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로스쿨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려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기존에 논의되었던 로스쿨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논의를 계속하는 이상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피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민주노동당의 문제제기는 로스쿨 비대위나 참여연대로 부터 미래에 대한 예측만이 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할 것이다"라는 것만으로는 로스쿨의 당위성을 깨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측"이라고 비난했던 일들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청와대에 가서 백날 난리를 쳐봐야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리 늘려도 2000명 이상의 정원을 늘릴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변호사 자격시험에서 몇 명이나 변호사를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지 로스쿨 총정원을 몇 명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사법구조를 왜곡시킨 원흉은 법원을 비롯한 법조기득권세력이지만, 지금과 같이 대학의 이해관계를 위해 또는 자신들의 실적쌓기를 위해 로스쿨을 도입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사법구조 왜곡에 책임을 져야한다.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잡지 못한 댓가는 그만큼 크고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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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12:44 2007/10/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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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23 20:15

    행인님의 [로스쿨 점입가경...] 에 관련된 글. 한번은 조작실수로, 또 한번은 컴터 불량으로 인하여 장문의 포스팅을 두 차례나 날려버린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시리즈는 계속 연재된다. 국회 교육위 국감과정에서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의 이은영의원이 충북대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날렸다. "향후 충북지역 법률 수요가 어느 정도가 될 지, 이 지역 법률서비스를 충족하기 위해 몇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야 하는지 고

  1. 와~ 꼭지 제대로 도셨구먼.

  2. 말걸기/ 꼭지 돌면 뭐하나... 푸념으로 끝날 판인데...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