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둘러싼 이중잣대

행인님의 [로스쿨 점입가경...] 에 관련된 글.

한번은 조작실수로, 또 한번은 컴터 불량으로 인하여 장문의 포스팅을 두 차례나 날려버린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시리즈는 계속 연재된다.

 

국회 교육위 국감과정에서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의 이은영의원이 충북대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날렸다.

 

"향후 충북지역 법률 수요가 어느 정도가 될 지, 이 지역 법률서비스를 충족하기 위해 몇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냐?"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그동안 청와대의 스피커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로스쿨법 제정을 위해 선도적으로 달려온 이은영의원 다운 날카로운 지적이다. 물론 이은영의원이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나 현재 재직 중인 외대가 로스쿨을 준비한다고 할 때 역시 이런 질문을 던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질문을 던진 이은영의원의 자세는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은영의원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충북대에 설치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사람들에게 충북지역의 법률서비스를 충족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존재하는가? 더 쉽게 말하자면 충북대에 로스쿨이 설치된다고 해서 충북지역 법률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근거는 뭔가? 유감스럽게도 이은영의원은 이 질문에 절대 답을 할 수 없다.

 

로스쿨 설치를 위해 종횡무진 달려오면서 오직 로스쿨법 통과를 위한 목적으로 국회 상임위 중 교육위를 선택할 정도였다는 이은영의원. 충북대에 던진 이 날카로운 질문과는 달리 스스로 로스쿨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별다른 해명을 하지 못한다. 가정사적인 이유로 사법시험에 한이 맺혀 로스쿨을 오매불망한다는 시중의 루머는 그냥 루머로 치부하더라도 왜 이은영의원이 이토록 로스쿨을 주장하는지 스스로의 입으로 적절하게 해명된 바가 없다. 그냥 필요하니까 해야한다는 정도 이외에는 말이다.

 

로스쿨법 제정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은영의원은 자신의 홈피에 아래와 같은 팝업까지 띄우면서 치적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은영의원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이 분은 향후 한국 사법구조에 혁명과 같은 전환을 가져오게 될 로스쿨의 문제가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작년 11월 26일자 프레시안 기사에는 이은영의원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 인터뷰에서 프레시안 기자가 2004년 10월 사법개혁위원회가 설전 끝에 겨우 로스쿨 도입안을 가결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은영의원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그 표결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질문의 취지는 이러한 과정을 인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정황과 사정, 그리고 로스쿨의 실질적인 내용을 다시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로스쿨 도입은 이미 1999년 한 차례 폐기된 바가 있었는데다가 2004년 10월 사법개혁위원회의 결정도 전체 21명이 참여한 표결에서 겨우 12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일 정도로 논의의 진행과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이은영의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결정이 난 사항을 소신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데 본질적인 이야기를 더 하지 않겠다고 회피한다.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유권자인 국민이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런 거 하지 않겠다고 끊어버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그렇게 했을까?

 

실상 이 인터뷰를 보면 이은영의원 스스로가 로스쿨에 대해 뭔가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스쿨의 목적이 단지 변호사 숫자를 늘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은영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사법시험 합격자의 실력은 형편없다. 경제나 스포츠, 혹은 의학의 세계에 대해서 모른다. 판사도 전문성이 없어서 분쟁조정 능력이 없다. 미국에서는 의료분쟁 전문변호사는 대부분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을 보면 수사도 과학적으로 하지 않는가?"

 

이은영의원은 미국의 "전문변호사"들이 학부과정에서 배운 전공을 바탕으로 로스쿨에서 법무를 더해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이은영의원의 주장은 미국 로펌의 분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히 학부전공과 변호사의 전문성을 연결하고 있다. 게다가 행인이 만나본 전문가들은 이은영의원과는 달리 학부과정의 전공과 전문변호사의 전문분야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변호사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로스쿨 설치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법률서비스시장의 실질적 수요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YS정권 이래로 사법개혁의 논의는 정부가 설치한 위원회에서 일부 전문가들만의 말잔치로 이어졌지 수험생들이나 사법서비스 이용자들은 무슨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전형적인 밀실논의 끝에 오늘의 결과가 창출된 것이다.

 

그런데 로스쿨설치안이 가결되는 과정의 이 밀실스러움에 대해서 그동안 대학과 교수들은 별 말이 없었다. 특별한 성명을 낸 적도 없고 교육부를 찾아가 왜 밀실에서 로스쿨 설치하자고 표결로 해결했느냐고 농성을 한 적도 없다. 당연한 것이 로스쿨을 설치해서 대학끼리 나눠먹기를 하면 앉아서 봉을 잡은 일이 되는 거고 로스쿨이 설치되지 않는 학교라고 해도 별반 손해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로스쿨 정원이 1500명 선에서 논의되자 대학과 교수들은 일제히 반발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항의하고 있다. 법학교육위원회가 각 대학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일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만을 반영해 방구석에 앉아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대학과 교수들은 왜 2004년 10월 사개추위의 "밀실결정"에 대해선 일언반구 항의 한 번 하지 않다가 이번 법학교육위원회의 "밀실결정"에 대해선 세상이 뒤집어진 것처럼 난리를 피우냐는 거다. 어차피 그 성격에 있어선 똑같은 "밀실결정"인데 말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은 그것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던 백주대로에서 이루어지던 관심이 없는 척하다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이루어지니 그것을 "밀실결정"이라고 주장하는 대학과 교수들의 이중잣대는 좀 비양심적이다. 학문의 자유가 사상의 자유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학문으로서의 진리탐구가 학자의 양심과 자주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양심을 가지고 있고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휘두르는 이 이중잣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다시 이은영의원의 프레시안 인터뷰로 돌아가보자. 이은영의원은 로스쿨이 되어야 전문지식을 갖춘 변호사가 탄생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학부 법학과의 교육시스템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질타한다. 이렇게 말이다.

 

"(고시과목 아닌 과목도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기형적이다. 시험 보는 날만 온다든지, 학생들 사이에 전파되는 학점 따는 요령이 있다. 우직하게 수업 듣고 시험 보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다른 학과 교수들이 로스쿨을 더 원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라든지, 심지어 공대 교수들도 로스쿨을 원한다. 입학생들이 전공 공부는 하지 않고 사법시험 공부만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학부에서 기초교양과목이 이렇게 피폐하게 된 이유가 뭘까? 예를 들어 과거에 일반적으로 학부에서 필수교양로 다루어졌던 철학개론이나 논리학이 아예 폐강되거나 일부 학과의 지정교양으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학부의 학생들이 왜 이렇게 교양을 쌓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대해 로스쿨 지지자들은 답을 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면 지금 대학생들의 관심이 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은영의원이 피해가고픈 "본질적"인 문제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탈출구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대학생들, 지금 교양에 신경쓸 시간이 없다. 영어책을 옆구리에 끼고 학점 잘 주는 교과목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무원 시험에는 학생들이 몰리지만 "사회학과라든지 심지어 공대"의 학과는 교수들조차 그 대책을 세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메스를 들이대야 하는 건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라든지, 심지어 공대 교수들"일 로스쿨을 원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어차피 서울대에는 로스쿨이 설치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고, 서울대에 로스쿨이 설치된다면 법학부는 없어지게 된다. 법대에 몰리던 입시생들은 잔존하는 타 학과에 분산유치될 것이고 그 안에서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공부를 해야한다. 이게 그 교수들의 얄팍한 계산이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과연 로스쿨을 설치해야한다는 당위를 설명하는가?

 

이 문제는 로스쿨이 설치된다고 해서 해소되지는 않는다. 밥그릇을 깨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정변호사수를 유지하기 위한 법조기득권세력의 공작은 로스쿨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들은 로스쿨이 아니라 변호사자격시험에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동원할 것이다. 다시 말해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자의 수를 통제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 대학과 교수들은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선 그다지 이야기하는 바 없이 그저 로스쿨 정원을 늘리면 변호사가 늘어난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은영의원처럼 로스쿨을 만들면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이중잣대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학부에서 되지 않던 것이 로스쿨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다. 교수들이 학부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동안 하지 않았거나 로스쿨이 설치되더라도 현직 교수들이 로스쿨에서 할 수 있는 교육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교수들은 왜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제 얼굴에 침뱉는 것임을 알기 때문인가?

 

제발 부탁인데, 그 이중잣대부터 치워주기 바란다. 그래야 뭐 진정성이라도 느껴지지 않겠는가?

 

 

ps : 블로그를 본 어떤 분이 대학도 문제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법조기득권이 자신의 밥그릇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인데 왜 너는 대학만 시리즈로 주어 패는가라는 질문을 하신다. 적절한 지적이다. 뭐 시간 나면 다른 넘들도 패주겠다. 하지만 현재 문제의 한 축인 법조기득권에 대해선 행인이 주어패고 있는 대학과 교수들께서 주어패시니 별 문제가 없겠다.

 

ps2 : 다음 아고라에 행인과 유사한 취지의 글이 하나 올라와 있다. 링크를 걸어두니 혹시 방문하신 분들 중 관심 있으신 분은 따라가보시면 좋겠다.

 

로스쿨을 둘러싼 오해들, 그리고 집단 이기주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10/23 20:17 2007/10/23 20:17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876
    • Tracked from
    • At 2007/10/24 17:07

    행인님의 [로스쿨을 둘러싼 이중잣대] 에 관련된 글. 로스쿨 반대논의가 전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즈를 연재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런 류의 문제제기가 이후에 사법구조의 변화를 위한 논의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원이 없겠다... 로스쿨 입학정원 문제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일단 "교육부+법조기득권 vs 대학+정치인"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앞선 포스팅에서 이은영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