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둘러싼 동상이몽

행인님의 [로스쿨 등 전문대학원 제도는 필패!] 에 관련된 글.

자, 결국 밥그릇 투전판으로 치닫던 로스쿨 정원논란은 드디어 각 대학들의 본색을 드러내며 중반전으로 접어들었다. 여론의 따가운 등쌀에 못이긴 교육부가 정원 2000명 안을 내놓았는데, 애초 교육부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물타기를 하리라는 것은 왠만큼 사법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 관료들의 습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뻔하게 예측했을 것이고.

 

문제는 이 와중에 각 대학들이 속속들이 제 입장에 따른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 놀라는 모양인데, 로스쿨 설치와 관련된 각 대학의 입장 혹은 대학 교수들의 입장이 여러가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썩소'가 나올만큼 올 것이 온 것 뿐이다.

 

한국일보가 각 대학의 속내를 표까지 동원하면서 기사화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심히 쪽팔린 일이겠으나 한국일보의 이 기사는 로스쿨을 둘러싼 각 대학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한국일보 기사에 나온 표를 그대로 옮겨보자.

 

 

 

이 표를 보면 로스쿨 유치가 거의 확정적이라고 세간에 인식되고 있는 대학, 그리고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대학, 마지막으로 거의 될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해야겠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대학으로 분류가 되고 있다.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판에 똘똘 뭉쳐 싸우기도 벅찬 대학들을 이간질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쉽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국일보 기사는 그다지 '쇼킹'한 것도 아니다. 막판까지 가더라도 로스쿨 유치에 자신이 없는 학교, 특히 지방소재 사립대학교들은 구태여 교육부에 밉보이지 않고 최소정원으로 인가만 받을 수 있다면 총정원이 1500이 되건 3000이 되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초 '단결투쟁'하자고 했던 취지가 무색하게 일부 사학들이 교육부 안을 받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했고, 군소대학을 우군삼아 실리를 다 취하겠다고 벼르던 메이저 대학들은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대학들이 이렇다면 교육당사자가 될 대학 교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학교수들 역시 입장이 다양하다. 그러나 다양한 입장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는 않은데,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자기 밥줄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괜한 소리 해서 밥줄 끊어질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의 입장을 분류하면 이렇다.

 

 

1. 로스쿨 강력 추진론자

 

일군의 교수들은 "로스쿨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비장한 각오로 로스쿨 설치에 매달리고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로스쿨 설치되지 않았다고 해서 할복할 사람들은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주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 소속된 교수들이 이 입장이다. 처음에는 로스쿨을 반대하다가 어영부영 찬성으로 돌아서서 '올바른 로스쿨~' 어쩌구 하는 단체에 로스쿨 설치에 필요한 이론을 제공했고, 로스쿨법 통과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 유수의 대학으로 자리를 이동한 어떤 교수도 있다.

 

여기에 포함된 교수들 중 상당수는 각 정권에서 사법개혁을 위해 구성된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 로스쿨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다수 교수들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학교'라고 할 정도로 로스쿨 유치 가능성이 높은 학교에 재직 중인 사람들이다.

 

이 교수들은 소속 학교에서도 로스쿨 인가를 위한 준비팀에 적극 결합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우선 자기 학교가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다는 일종의 확신이 있거나 그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에서 로스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로스쿨이 설치되었을 때 교수들이 가지게 될 메리트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들이 로스쿨 설치에 이토록 목을 메는 이유를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로스쿨 강력 반대론자

 

행인이 만난 법대 교수들 중 상당수는 로스쿨 설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숫자로 따져보면 오히려 찬성하는 사람들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분포가 지방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 유치가 매우 희망적인 서울 소재 대학에 재직 중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로스쿨을 반대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지방소재 대학에 재직 중인 사람들의 경우 어차피 로스쿨이 유치될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 로스쿨이 설치되면 자교의 역량, 즉 법대교수들이나 유능한 학생들이 죄다 빠져나가게 되거나 혹은 로스쿨 진학쪽으로 방점을 틀게 되면서 법학과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실제 로스쿨유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지방대는 물론 서울소재의 일부대학조차 법대 교수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2학기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지방소재 대학 중에는 법대 대학원 과정을 없애거나 아예 법학과 자체를 폐지해야 할지를 논하는 대학마저 발생했다. 이렇게 환경이 변하게 되니 당연히 로스쿨에서 멀리 있는 대학의 법학과 교수들은 로스쿨을 탐탁치 않게 여기게 된다.

 

한편 로스쿨이 유치될 가능성이 높은 서울소재 대학에 재직하면서도 로스쿨을 반대하는 교수들은 우선 교육방식의 변화가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효과를 담보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물론 로스쿨이 계속 교육을 하게 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 로스쿨에 적합한 교원이 양성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이 과연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어떤 교수들은 자기 학문분야가 '실무'라는 측면에만 치우쳐 본연의 학문적 소양이라는 부분을 로스쿨이 담보하지 못하게 된다는데 불만을 가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이루어 낸 학문적 업적에 자신이 있는 사람인데, 이 분들은 로스쿨제도가 운영되면 결국 한국사회에서 '학문으로서 법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우려한다. 미국처럼 판례가 법원(法源)으로 인정되는 나라도 아니고 다만 동일 사건에 있어 하급심을 기속하는 정도의 효력을 가지는 한국 법학에서 이론적 학문추구의 맥이 끊기게 될 경우 "법학"은 철저히 도구로서의 기능만 발휘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학문으로서 법학이 가지는 위상이 파괴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들만이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을 찬성하는 측에서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로스쿨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로스쿨이 설치되더라도 박사과정 법학대학원은 계속 존속할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방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학문적 소양과 깊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3. 중간자적 입장

 

상당히 많은 수의 법학자들은 이리 저리 눈치를 보고 있다. 로스쿨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좋게 말하면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까놓고 이야기하면 시류에 편승하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이들이 이렇게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교수사회에서 로스쿨을 둘러싼 1차 판갈이가 끝난 상황에서 메이저 캠퍼스로 옮길 사람들은 옮겼고 이제 판세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옮길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여기서 장래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속할지 모르거나 혹은 언제고 로스쿨 설치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한 발 물러서서 마치 관망을 하듯 로스쿨 정원논쟁을 바라본다.

 

 

 

대충 분류하면 이렇게 교수들의 입장이 갈리지만 입장의 차이를 불문하고 이들은 공통된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하나는 로스쿨 정원이 늘어야 한다(대부분 로스쿨 정원이 늘어야 변호사가 늘어난다는 부연을 하면서)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 대학들이 로스쿨을 유치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표면에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할 상대가 있을 때 개인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정권 안에서 로스쿨 도입논의가 물거품이 될 경우 로스쿨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학교나 그렇지 않은 학교나 가릴 것 없이 재직 중인 모든 교수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물경 3000억이 넘는(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4000억에 육박하는) 로스쿨 유치자금을 대학사회가 퍼부었는데, 대학들의 반발로 로스쿨 인가가 늦어지게 될 경우에는 대학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학내에서의 비판은 가중될 것인데, 그 비판에서 어느 법대교수도 결코 벗어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판국에 "나는 로스쿨이 싫어요~!"라고 하면서 법학교육계의 이단아 역할을 자처하다간 혼자 모든 똥물을 뒤집어 쓸 위험마저 있다. 학교에서는 생매장 되고 학계에서는 왕따가 되며 사회적으로는 사법개혁을 무위로 돌린 반역분자로 매도될 수 있는 것이다.

 

정황이 이런 판국에 "학자의 자존심과 양심을 걸고" 로스쿨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행인이 그 교수들 평생 책임질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교육부는 한 발 양보해서 2000명 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로스쿨 비대위는 정원 3000명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가만 보면 정치인이나 교육자나 필요할 때 언제나 동원하는 것이 '국민'인데, 이번에도 이 비대위는 "3000명을 인정하지 않는 안은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사실 교수들이 이렇게 '국민'을 운운하려면, 적어도 이 비대위가 주축이 되서 신림동 고시촌의 사시준비생들을 모아놓고 토론회라도 한 번 했어야 한다. 로스쿨 문제가 이지경이 될 동안 학교와 교수들은 밥그릇 앞에 놓고 계산기를 두드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내용에 대해 알리지도 않았다. 과거 로스쿨 법 제정을 위해 일부 단체(새사회연대나 법원노조 등)가 전국을 돌면 선전전을 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각 대학 법학과 학생들이나 신림동 고시생들을 패널로 앉혀두고 열띤 토론회 한 번 개최하지 않았다. 그저 지들끼리 교수 부르고 변호사 불러서 떠들었을 뿐이다. 로스쿨 법 제정되고 나서는 그거 설명회 한답시고 각 대학 돌아다닌 정도고. 웃기는 건 토론회는 교수 부르고 변호사 불러 하더니 정작 로스쿨 설명회는 단체 대표가 하고 앉았더라...

 

자, 이제 또다시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교육부의 제안을 두고 학교 간 이해관계에 따라 내분이 발생하여 어영부영 이 싸움이 끝날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일심동체 대동단결해서 대학들이 교육부를 압박하여 3000명을 '쟁취'해 낼지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일부 법대교수들이 로스쿨은 나쁜 것이여~라면서 반대의 기치를 올리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선 아예 꿈을 접도록 하자. 적어도 법학교수들 사이에서는 양심과 자존심보다는 밥그릇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의 시류에서 그 가능성은 0.000001%도 안 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혹시라도 그 희박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한 소리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빚을 내서라도 밥 한 끼 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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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13:08 2007/10/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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