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개구라의 현실

행인님의 [개구라의 진상] 에 관련된 글.

로스쿨 땜시로 마빡 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며칠을 보냈더니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두뇌휴식"의 필요성을 말이다. 해서 행인이 항상 머리 식히기 위해 하는 방식, 즉 꼴통 이너넷 뒤벼보기 작업을 잠시 수행하던 중, 한국 찌라시계의 거목 조선 찌라시에 묘한 기사 하나가 뜬 것을 봤다. 보니 가관이다.

 

평택, 다시 뒤숭숭

 

기사의 내용은 평택에 미군기지가 들어섬으로 인해서 평택일대의 경기부흥이 예견되었었으나(물론 정부의 이빨신공이 먹힌 때문이지만) 기왕 건설이 추진될 단계에 와보니 별로 그런 것도 없더라는 내용이다. 이거야 뭐 한국 건설족들의 눈부신 남의 밥그릇 털어먹기 행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애저녁에 예견했던 일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정에서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매도하면서 계엄령에 버금가는 군경 합동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평택의 일부 시민들은 정부의 이 토벌작전에 동의하면서 평택에 미군기지가 하루 속히 건설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주로 중소 상인들과 특히 평택 등 기지건설 예정지 주변에서 건설관련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행인이 트랙백 건 지난 포스팅에서 정부의 개구라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평택미군기지이전에 찬성했던 사람들 역시 "정부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불쌍한 국민들"임이 이번 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물론 조선일보가 정부의 기만과 미군기지를 둘러싼 이권다툼을 보도함으로써 반미감정을 북돋기 위해 이 기사를 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조선일보의 목적이야 눈에 뻔히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공격.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 일을 한 것이 뭐 별 수 있겠냐는 취지인 게다. 지역경기 활성화 한다더니 결국 돈 있고 빽있는 업체들 배만 불려주는 것이 아니냐면서 이런 환경을 조장한 것이 이 정부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거다. 어쨌든 조선일보의 이 목적 덕분에 조선일보의 의도와는 달리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추악한 이권다툼이 일부 밝혀지게 됨으로써 평택미군기지건설이 얼마나 개구라로 포장되어 있는 사업인지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기사를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평택미군기지건설사업은 정부추산으로만 18조 8000억원이 소요되는 거대 토목공사다. 거대토목공사, 이거 매우 중요한데, 이처럼 엄청난 건설사업이 들어서는 것은 결국 이 사업이 중소 지역 업체들이 사이좋게 나눠 먹을만한 떡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형 건설업체들이 너도 나도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만한 사업이라는 뜻이다. 관운장 언월도가 춤추는 마당에 목검 쥔 오합지졸 몇이 덤벼봐야 쪽도 못쓰는 법이다. 이래서 평택이 난리가 났단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국방부가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지원특별법'을 개정해서 지역할당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지만 이거 쉽지 않을 거다. 국방부차원에서야 평택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제2, 제3의 대추리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아야 하기 때문에 법령에 지역할당을 명시하려 했겠지만, 이건 한국 건설족의 파워를 간과한 닭짓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행령이 그대로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이쪽방면으로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건설족들, 어차피 법령이 어찌 된다 하더라도 지역건설업체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폭리를 취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지역업체를 낀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는데, 기껏 이 컨소시엄에 낀 지역업체들은 이름값도 못한 채 인력도급업체 수준으로 떡고물이나 조금 줏어먹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평택지역에 건설업체 하나를 세워서 이걸 연줄로 대기업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은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위 기사에 따르면 2004년 평택지역에 341개였던 건설업체가 '평택지원특별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804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평택을 근거지로 하는 건설업체를 끼지 않는다고 해도 거대 토목업을 전공으로 하는 한국의 건설족들은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노하우를 정부 관료들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를까? 전혀 모를리가 없다. 기업이 돈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만큼 정부관료들은 욕처먹지 않을 방법을 그만큼 알고 있다. 국방부가 내놓은 법률개정과 시행령의 내용은 면피용일 뿐이다.

 

평택지역 건설업체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해 정부 각 부처가 '형평성'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하자, 평택시 시장은 아주 절묘한 반박을 한다. "형평성 중시 때문이라면, 미군기지도 평택에 한꺼번에 밀어 넣지 말고 형평성에 맞게 전국 자치단체에 골고루 나눠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쓴 웃음이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발언을 할 정도의 인식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우습지만, 일개 시장으로부터 이런 발언을 들을 정도로 허접하게 개구라를 쳐댔던 청와대와 정부의 꼴이 심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평택미군기지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는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전국에 분산배치되어있던 미군들을 한 군데로 몰아넣는 것이 국토의 효율적활용을 위해 긍정적인 방법이었을지는 모르나, 바로 그것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저항운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 더구나 정부의 개구라에 속아 평택미군기지를 찬성했던 지역의 일부 시민들 역시 내용을 까보니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그 혹독한 혼란, 그리고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상태에서 반환된 기존 기지를 둘러싼 각 지역의 불화, 이런 것들은 애초부터 투명하고 적정하게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일구어내지 않은 채, 밀실에서 미국과 합의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알아서 더 많은 것을 내주려 하면서 인민들에게 사기에 가까운 개구라를 쳤던 이 정부의 과오다. 도대체 이 과오들에 대해 현 정부는 어떤 책임을 질까?

 

어쨌든 개구라는 그 진실이 분명히 밝혀지게 되어 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시간도 그리 길게 걸리지는 않는다. 불과 1년이 좀 지난 지금, 평택주민들이 정부의 허황된 속임수에 얼마나 휘둘려 왔는지 이렇게 드러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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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11:43 2007/10/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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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29 18:38

    행인님의 [평택, 개구라의 현실] 에 관련된 글.

  1. 잘 읽었습니다

  2. 무나/ 감사합니다. ^^

  3. 평택시장은 우리지역에서 거의 조폭 두목 정도로 인정받는 사람이죠. 그만큼 조직과 돈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하여튼 조선일보의 오지랍은 참 넓기도 하네요. 이런 종류의 기사 한겨레에선 못본 것 같은데 --;;

  4. 무위/ 그렇군요. 평택, 평택공화국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을 만큼 지역 유지들의 연대가 공고한 곳이죠... 암튼 평택이 이 땅 평화의 원천이 될 날이 올거라 믿어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