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로 대학교육 정상화??

행인님의 [로스쿨, 본격적인 대학 서열화?] 에 관련된 글.

이번엔 시리즈 오래 간다. 참 내...

 

2004년 연말에 민교협은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민교협에서 주최한 토론회도 있었고 여러 경로로 민교협에서 활동하는 교수님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있고 해서 로스쿨과 대학교육 정상화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했으나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의학전문대학원이 들어선 후 대학 이공계 학과가 교육정상화의 모습을 보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분들은 엉뚱한 이야기로 문제의 본질을 회피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로스쿨은 대학교육 정상화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행인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상들을 보면 대학교육은 더욱 심각하게 왜곡될 것이라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는 이 시기에 민교협의 그분들은 왜 암말 않고 가만히들 계시는 걸까?

 

로스쿨 정원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때를 즈음하여 일부 학교에서 '프리 로스쿨(Pre Law School)'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교육부에서는 즉각 반박하였고 프리 로스쿨을 운영할 경우 제재하겠다며 인상을 구겼다. 프리 로스쿨이 뭐길래 그러는가?

 

현재 일부 대학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리 메드(Pre Med)'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경북대의 경우 '프리 메드 코스 트랙'이라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설치 목적은 의학, 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돕기 위해 자연계학생들을 대상으로 그 준비과정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상은 대학 내에 설치된 전문대학원 진학반이다.(관련기사)

 

의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을 위한 진학반 과정이 실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대학이 로스쿨 진학을 위한 과정을 별도로 학내에 개설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방침을 주도적으로 밝히고 있는 대학들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학교라는 점이다. 이 대학들의 입장에서는 기왕에 로스쿨이 유치될 경우 기존 법학부를 폐지해야한다는 부담을 덜면서 동시에 로스쿨 진학율을 높혀 자교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프리 로스쿨을 이야기하고 있다. 꿩먹고 알먹자는 이야기다.

 

실제 이런 방향에서 학부 법학과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올해 최초로 사시 합격생을 배출한 울산대의 경우 아예 대학 자체가 프리 로스쿨의 역할을 하겠다는 기염을 토한다. 울산대는 이번 로스쿨 유치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장래 로스쿨 인가를 목적으로 준비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히고 있다. (관련기사)

 

그런데 이러한 프리 로스쿨 계획은 결국 대학 학부과정 전체를 로스쿨 입시준비반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현행 사시와는 달리 로스쿨에 입학을 얼마나 시켰냐가 법조인 배출현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입맛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돈과 물량을 지원해서 자교 출신 로스쿨 입학자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그건 곧 자기 학교출신 변호사가 많이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애초 로스쿨이 설치되면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전공과목을 충실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서 따라서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일부 교수들의 입장에 정면 배치된다.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학교육이라는 것이 자기 전공 본연의 학문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학점 잘 따서 로스쿨 입학 쉽게 하려는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이게 어떻게 교육정상화인가?

 

고시낭인이 현재의 사회문제라고 하면 이러한 발상은 로스쿨 낭인을 만들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교육부가 로스쿨 설치 대학에 개설되는 프리 로스쿨 과정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로스쿨이 설치되지 않는 학교가 프리 로스쿨의 형태로 과정을 운영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재도 할 수 없다. 실제로 이미 많은 대학이 학교 내에 고시원을 개설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면서 사법시험 고시생들을 키워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교육부는 지금까지 어떠한 입장도 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이 이런 식의 프리 로스쿨을 운영한다고 해서 교육부가 개입할 수 있는 마땅한 근거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로스쿨이 설치되는 학교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교육부가 별달리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각 대학이 그렇게 눈에 빤히 보이게 제도를 운영하겠는가?

 

학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신림동 고시촌은 물론이려니와 각 지역에서 로스쿨 입시전쟁 과정에서 수험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발빠른 사교육시장의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주 간단한 예로 포털 사이트에서 '로스쿨'이라는 단어만 검색창에 입력해보라. 예컨대 다음 검색창에 '로스쿨'을 때리면 다음과 같은 사이트들이 줄줄이 화면에 뜬다.

 



난리가 났다. 각 사이트들을 보라. 저기 어디 한 곳이라도 "대학교육정상화"라는 거창한 로스쿨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곳이 있는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사교육시장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것은 옛날이고 그와 동시에 고시생들 역시 고시촌이라는 별천지에서 고시상품이 되어 파죽이 된 것이 오래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되어야 한다는 로스쿨의 현실은 이렇게 또다른 사교육시장의 확장으로 나타난다.

 

앞서 포스팅한 것처럼 대학 서열화의 현상이 로스쿨 설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로스쿨로 인한 사교육시장의 팽창 역시 대학 서열화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육을 왜곡하게 될 것이다. 로스쿨이 설치된 후에 이런 사설 로스쿨 입시학원들이나 이에 편승하여 사교육차원의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게 될까?

 

궁금한 것은 이런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로스쿨 설치를 주장했던 교수들은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몰랐을리가 없다. 다 알고 한 것이다. 다 알고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비참한 것이다. 만일 정말 모르고 그런 주장을 했다면, 로스쿨을 설치함으로써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교수 그만하셔야 한다. 그런 현실인식으로 대학교육정상화를 외친다면 대학교육 정상화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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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9:32 2007/10/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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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22 12:44

    행인님의 [로스쿨로 대학교육 정상화??] 에 관련된 글. 기왕 시리즈 시작한 거,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꾸나. 법학교육위원회가 널뛰기를 하면서 로스쿨 이야기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 난리통의 주체가 교육부와 대학당국 및 교수들이라는 것이고, 정작 사법구조의 실제 핵심들인 법원과 법무부, 변협 등 변호사집단은 관망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학교육위원회가 매일 한 건씩 문제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데, 예를 들면 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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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04/21 21:04

    행인님의 [로스쿨로 대학교육 정상화??] 에 관련된 글. 위 포스팅에서 각 대학들이 '프리 로스쿨'을 운영하게 될 수 있고, 그 폐단이 크리라고 예상한 바 있더랬다. 사실 예상이고 나발이고 거창하게 타이틀을 달 필요도 없이 그건 정해진 수순이다. 돈 되는 장산데, 어차피 장삿속으로 '경영'하는 대학이 이걸 걍 놓고 볼 이유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 대학이, 그래도 대학 간판 걸어 놓은 낯짝이 있지, 로스쿨 시작하자마자 저짓하지는 않고,

  1. 입시 경쟁을 없애려고 불철주야 신묘한 술수를 부리는 모습과 많이 닮아있네요. 가방끈도 긴 사람들이니 원인 정도는 알만 할텐데.

  2. 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그 교육제도 속에서 바꿔야 할텐데... 왜 모를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요즘에는 알면서도 상품화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교육을 계속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로스쿨은 아니겠지만;) 안타깝다는 ㅠ_ㅠ

  3. 벌레/ 이 사람들에게는 실적이 중요한 것이지 원인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관료, 정치인, 학계의 '벌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죠.

    에밀리오/ 교육문제에 대해 직접 메스를 들이댄다면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메스를 들이미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당사자들인 대학의 교수들은 될 수 있는 한 길을 돌아가려 하는 거죠. "사법개혁"이라는 거창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주체가 사법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법원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하거니와, 바로 그런 한계로 인하여 오늘날과 같은 엉성하고도 실질적이지 못한 짝퉁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듯이 말입니다.

    성능 좋은 전자동 면도기가 나온 세상에서 "중이 제머리 못 깎는" 일은 없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술장비가 아무리 좋아져도 지가 지 몸을 마취시키고 절개를 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의사는 나올 수 없죠. 결국 허황된 "사법개혁"이 아니라 "민중의 사법" 또는 "인민의 사법"이 실현되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석궁이 잘 팔리는 시대가 도래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