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본격적인 대학서열화?

행인님의 [교수들은 자존심도 없나?] 에 관련된 글.

자, 뭐 시작한 거니까 계속해서 시리즈 연재하자.

 

최근 들어온 따끈따끈한 뉴스에 따르면 법학교육위원회가 로스쿨 유치대학을 선정할 때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고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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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검토를 하는 것에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나만을 기준으로 로스쿨 유치대상 대학을 선정한다면 상당한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고질적 병폐가 로스쿨 유치전에서조차 나타난다는 비난이 쇄도할 판이다. 공정성을 기해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로스쿨 선정이 이루어져야할 판에 이런 비난이 제기된다면 개혁 운운하면서 로스쿨 만들려고 난리를 쳤던 지난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볼 때 납득할만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법학교육의 수준이 일정한 형태로 각 학교별로 평가된 적도 없고 이제 와서 그걸 하자니 시간과 돈이 한정없이 들어갈 판이고 하다보니 로스쿨을 선정해야할 법학교육위원회 입장에서는 뭔가 그럴싸한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그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기존 사법시험 합격률이다. 적어도 사법시험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가 로스쿨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도 적절하지 않겠냐는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판단은 우선 현재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교육여건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상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지금 사시합격하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 수강을 잘해서 합격하고 있나? 이미 사법고시의 메카는 대학이 아니라 신림동 고시촌이 되었다. 오죽하면 신림동 고시학원 강사가 만든 교재가 대학 강의의 교재로 쓰이는 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시준비하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들어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시합격자의 출신대학을 가려 로스쿨 유치의 우선권을 준다는 발상이 터무니 없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사시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순서대로 로스쿨을 인가하려면 차라리 신림동 고시학원들을 로스쿨로 인가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고시학원"을 "**로스쿨"로 만드는 거 말이다.

 

애초 이 안은 교육부 안에서도 제기되었다가 폐기된 안이었다. 왜 교육부에서 이 안을 면밀히 검토하지도 않고 폐기했는지는 다음의 분석결과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이 웅변해준다.

 

02~07년 사시 합격자 탑10 순위  

1.서울대     2006명

2.고려대      998명

3.연세대      661명

4.성균관대   363명

5.한양대      332명

6.이화여대   262명

7.부산대      160명

8.경북대      123명

9.경희대       98명

10.전남대      95명

 

연 평균 사시 20명 이상 배출대학 (02~07년)

서울대       334.3명

고려대       164.7명

연세대       110.2명

성균관대     60.5명

한양대        55.6명

이화여대     43.7명

부산대        26.7명

경북대        20.5명

<이상 법률저널 자료>

 

만일 이 순위가 로스쿨 인가에 반영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지난 5년 간의 순위로만 보더라도 서울소재 대학만 상위 10개 대학 중 6개를 차지한다. 물경 60%인데 이걸 20위까지 확대하면 그 비율은 더 커진다. 올해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순위를 한 번 보자.

 

2007 사법시험 20위권 대학 

서울대        321명

고대           156명

연대           113명

성대            74명

이대            56명

한대            50명

중대            24명

전남대         19명

부산대         18명

경북대         16명

서강대         15명

건대/경희대  14명

서울시립대   13명

외대            12명

동국대          9명

아주대          9명

경찰대/단대/원광대     8명

20개 대학 중 서울소재 대학이 14개나 된다.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으로 보면 사법시험합격자 상위 20개 대학 중 모두 16개가 서울경기 일대에 포진하고 있다. 일단 로스쿨 인가대학을 최대 20개로 잡더라도 이 기준을 그대로 반영하면 서울소재 대학들이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

 

로스쿨 최대 정원 150명을 기준으로 100명, 80명, 50명 등 정원의 편차를 둘 것이고 이 편차를 고려하는 데에도 현행 사시합격자 수를 고려한다면 위의 20개 대학들 간에 정원의 차이가 급격하게 발생할 수도 있다. 1000명 뽑는 사법시험에 3분의 1을 합격시키는 서울대는 당연히 150명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런 식이라면 15위 이하의 학교들은 기껏해야 50명의 정원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결과적으로 사시합격자수를 고려하여 인가를 하게 된다면 사시합격자수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에 따라 로스쿨의 인가여부가 결정되고, 그 가운데서도 잘나가'던' 대학에는 많은 정원이, 그렇지 않은 대학에는 소수의 정원이 배정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건 어떠한 긍정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대학 서열화 작업이 된다. 특히 로스쿨 설치에 지역안배를 하겠다던 애초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바로 이 문제점 때문에 정원의 상한을 정한 것이기도 하고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인가과정에서 고려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총정원이 1500~2000명으로 결정되자 대학들이 난리가 났는데, 법학교육위원회가 이런 이야기까지 슬쩍 흘리자 각 대학들은 경천동지하고 있다. 일단 로스쿨이 유치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명문'과 '비명문'이 나뉜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왕에 설치되는 학교조차도 현행 사시 합격자의 수대로 정원이 나뉘어지게 될 경우 '진짜' 명문과 그렇지 않은 학교가 갈리게 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애초 로스쿨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측에서는 현재의 사법시험이 특정학교출신의 법조인을 다수 배출함에 따라 사법시스템 자체가 지나치게 편향적이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라도 로스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기존의 독점 내지 독과점 구조를 과점형태로 변환하는 것 이외에 로스쿨이 가지는 특정학교 편향현상이 얼마나 해소되는 것인가?

 

물론 법학교육위원회가 현행 사시합격자 수를 로스쿨 인가에 반영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냥 그런 안이 검토될 뿐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반영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로스쿨을 유치하는 대학과 탈락하는 대학이 나올 것이고, 정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대학과 최대정원의 3분의 1정도만 확보하는 대학이 나뉠 것이다. 또한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에는 다수의 로스쿨이 설치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지방에는 소수의 대학에 로스쿨이 설치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로스쿨의 유무, 정원의 다소에 따라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냐 하는 구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대학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당연히 로스쿨이 있고, 그것도 정원이 많은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로스쿨 수료 이후 변호사자격시험에 높은 합격률을 보이는 학교로 학생들이 몰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결과적으로 로스쿨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대학교육 정상화니 대학서열 타파니 특정학교에 편중된 사법구조의 개혁이니 하는 것은 모두 공염불로 끝난다. 로스쿨을 유치해야만 사법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큰소리 쳤던 그 모든 논의들이 결국은 모두 밥그릇 싸움만 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건의 본질은 이렇게 때가 되어 알몸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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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8:57 2007/10/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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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10/19 19:32

    행인님의 [로스쿨, 본격적인 대학 서열화?] 에 관련된 글. 이번엔 시리즈 오래 간다. 참 내... 2004년 연말에 민교협은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민교협에서 주최한 토론회도 있었고 여러 경로로 민교협에서 활동하는 교수님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있고 해서 로스쿨과 대학교육 정상화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했으나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의학전문대학원이 들어선 후 대학 이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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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7/10/27 17:17

    행인님의 [로스쿨, 본격적인 대학서열화?] 에 관련된 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궁금증을 이야기해보자. 교육부의 현재 사업추진방향대로라면 어떻게 해서든 올해 안에 로스쿨 인가학교가 정해지고 2009년부터는 로스쿨 첫 입학생이 나오게 된다. 곧 4년제 대학 이상 졸업한 사람이나 현재 대학 3, 4학년들 중 법조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불과 1년 남은 2008년도에 로스쿨 입학자격시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첫 해

  1. 2007년 사시합격 9명은 동국대입니다. 국민대가 아닙니다.

  2. 정의논객님 말대로 동국대가 맞습니다.

  3. 윗분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4. 원광대는 전국 20위권 안에는 항상 포함이 되는군요.

  5. 과객/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