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은 자존심도 없나?
행인님의 [왜 목숨을 걸고 로스쿨을 유치하려 할까] 에 관련된 글.
이거 이러다가 진짜 시리즈 되겠다...
어제 신문을 보다가 이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학의 교육 역량을 문제삼는 것은 법학계에 대한 모독"
정원 1500명을 정한 이유로 일부에서 현재의 법학교수진들이 실무형 로스쿨을 위한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밀자 "한국밥학교수회"의 사무총장이라는 분이 하신 말씀이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검증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공개강의 한 번 하면 된다. 현직 법학과 교수가 로스쿨에서 필요로 하는 실무임상실험실습강의를 한 번 공개적으로 진행해보면 된다. 뭐 그 교수가 법조인 출신이던 아니던 관계 없다. 실력이 출중한 분을 선발해서 추진한다고 해도 관계 없다. 어떤 과정을 거치던 그런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현재의 대학이 실무교육과정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된다. 그렇다면 대학의 교육능력을 문제삼는 것이 '모욕'인지 아닌지 금방 판가름 날 것이다.
문제는 이 공개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로스쿨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에 대한 논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강의가 명강의로 끝날 경우 보다 근본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문제는 이거다.
"로스쿨이 본격 시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강의를 왜 그동안 대학에서는 하지 않았는가?"
다시 말해 위의 공개강의가 명강의로 끝나면 왜 대학에서 그렇게 강의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고, 대학에서도 가능하다면 굳이 로스쿨은 왜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능력의 유무를 거론한 것에 대해 "모욕"이라고 말할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신 대학교수라면 자신이 그동안 왜 대학에서는 그렇게 강의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만 한다.
그동안 로스쿨을 주장해온 대학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의 대학에서는 로스쿨에서와 같은 수준높은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자신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이 모자라서이다. 제대로 된 교양도 없고 공부도 성실히 하지 않은 학생들을 앉쳐놓고는 높은 수준의 교육이 안 되니까 대학 4년 동안 교양공부도 하고 사회도 좀 익히고 한 학생들 데려와 로스쿨 안에서 수준높은 실무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에 로스쿨에 가서 어떤 교과과정을 거치는가 이다. 현재 대학 법학과 학부 1학년생은 일반적으로 법학개론, 헌법 1 등 기초적인 법학교육 및 관련 전공선택과목을 듣고 나머지 시간에 다른 교양과목을 듣는다. 법학과는 보통 한 학기당 18~21학점의 수업을 수강한다.
로스쿨은 어떻게 될까? 법령에 따르면 3년의 로스쿨 과정 동안 학생은 총 9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이를 나눠보면 한 학기 당 15학점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교과목별로 학점배분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지만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전공관련 학점만 보통 70학점 이상을 이수하는 현재의 학부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커리큘럼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교육과정은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교육방법은 교과서 읽고 법전 참조하고 수업시간에 중요하다고 이야기된 거 달랑 외워서 답안지 써내는 형식이 일반적이라면, 로스쿨에서는 모의법정도 하고 직접 소장과 변론장도 써보고 기타 등등 실무와 관련된 이런 저런 작업도 하면서 얼마나 실험실습을 잘 했는지가 교육의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교육방식의 문제라면 최초의 문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기왕에 커리큘럼이나 총 수강 학점의 범위가 학부와 다르지 않다면, 로스쿨에서 하는 실험실습이나 모의재판을 학부에서 하면 안 되는 건가? 안 되는 건가 못하는 건가? 능력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법학과에서 진행된 각종 소송법 수업에서, 어느 학교에서든 해당 수업을 모의법정 형태로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가 없다. 혹시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과문한 탓에 그런 전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본 적이 없다. 결국 지금까지 대학에서 민사소송법이니 형사소송법이니 행정소송법이니 하는 소송관련 교과목은 전부 법전에 어떻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만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을 뿐이다. 한번도 수업시간에 공수를 나눠서 서로 논박하고 재판절차에 따라 역할수업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한국 법학교육의 현실이고, 한번도 그런 수업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한국 법학교수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실제로 대학에 전문적인 실무교육이 가능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검증되어본 바가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법조인의 증원을 바라지 않는 법조기득권세력은 학교에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학교에 재직중인 교수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모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한편, 이런 식의 공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가장 부끄러워 해야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대학 교수들이다. 애초 로스쿨 논의가 나올 때, 일반적인 상식대로라면 로스쿨 논의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해야할 사람들 역시 대학 교수들이었다. 학부교육이 실패했기 때문에 로스쿨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다른 말로 지금까지 대학에서 교육자인냥 하면서 강의를 했던 사람들이 전부 헛교육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원증원이라는 아킬레스건만 없었다면 로스쿨을 제일 반겼어야 할 부류는 법조 기득권세력이다. 한국처럼 법조인 타이틀만 있으면 뭘 해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문실무능력의 교육이 필요한 로스쿨은 법조인들의 다른 밥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논의되는 로스쿨은 법조인의 획기적 증원이 그 전제조건이다보니 법조기득권의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학교 교수들은 왜 로스쿨을 찬성했을까? 앞선 포스팅에서 일부 그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대학발전이니 뭐니 하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하긴 하나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법학교육이 "실패"했다는 것은 그 교육의 주체였던 해당 법학교수들의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라는 선언인데 어떻게 이걸 교수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까? 왜 그때는 이걸 "모욕"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걸까?
자기 학문에 대한 자존심, 그동안의 연구성과에 대한 확신이 있는 교수라면 그동안의 법학교육이 실패했다는 이 "모욕"에 분연히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분노를 간직하는 교수들은 많았으되 그 분노의 표출을 현실화하는 교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세를 거스른다는 것은 학자들에게도 위험한 도박일테니 그건 이해할만도 하다. 학교가 목숨을 걸고 로스쿨 유치에 뛰어드는 판에 로스쿨을 대놓고 반대했다가는 장래가 위험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설치에 가장 열렬하게 뛰어든 집단 역시 법대 교수들이다. 이들은 법학교육의 실패에 대해선 매우 간명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때우고 왜곡된 사법구조를 바꾸기 위해 자신들이 총대를 맨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철옹성처럼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법조기득권의 공세를 우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로스쿨이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들은 로스쿨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해당 법률안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법안을 바꿀 것을 요청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각 학교에 설치된 로스쿨 유치를 위한 기구에 참여해서 법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로스쿨 유치를 위한 사전작업을 다했다. 그리고 목돈 퍼부어 로스쿨 준비했으니 빨리 로스쿨법 통과시키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로스쿨 법안은 별다른 수정 없이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법대정원은 예측한 대로 2000명 안쪽으로 결정났다. 그랬더니 또 아우성을 친다. 뭐하자는 걸까?
법학교수들은 스스로 "모욕"을 받을 행위를 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면서 "모욕"을 당하지 않길 바랬다면 그건 욕심이다. 자신이 있다면, 능력이 있다면 법학교수들은 로스쿨에서 가능하다고 했던 교육방식을 학부에서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해봤더니 학부에서는 정말 그런 교육이 힘들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부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로스쿨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현재 법학교수들의 행태를 볼 때 그런 작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인다. 해 봐야 자신들의 손해가 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행인님의 [교수들은 자존심도 없나?] 에 관련된 글. 자, 뭐 시작한 거니까 계속해서 시리즈 연재하자. 최근 들어온 따끈따끈한 뉴스에 따르면 법학교육위원회가 로스쿨 유치대학을 선정할 때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고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물론 이런 검토를 하는 것에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나만을 기준으로 로스쿨 유치대상 대학을 선정한다면 상당한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