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예비인가대학

행인님의 [로스쿨 이야기하던 분들 뭐하시나?] 에 관련된 글.

작년 연말부터 전국이 생 난리를 치더니 결국 로스쿨 예비인가대학의 윤곽이 나왔다. 수도권 57 대 지방 43의 비율로 정원을 나눴고, 전국 25개 대학이 예비인가를 받게 되었다. 물론 확정은 아니고 일단 청와대가 지역배분에 대한 조정을 할 예정이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9월경 확정된다. 예비인가를 받게되는 학교의 명단은 이렇다.

 


맨 오른쪽의 정원. 저 정원의 배정 순서가 뭣처럼 보이나? 걍 의미없는 숫자? 누가 보더라도 이건 각 대학의 순위배정표다. 맨 위에서부터 1등, 2등, 3등... 이로서 새로운 형태의 대학서열화가 형성된다. 저 숫자는 앞으로 각 대학 로스쿨의 변호사 배출숫자와 거의 비례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합격률이야 달라질 수 있다.

 

청와대가 지방대학의 로스쿨 정원조정을 검토한다는 것도 조금 어색한 일이다. 지금까지 각 대학에 실사단을 보내고, 그에 맞춰 각 대학은 번쩍거리는 새 건물 앞에 실사단 환영 현수막을 걸고, 몇 달을 준비한 서류 무더기를 보내주고, 그렇게 해서 예비인가대학들을 공정하게 선별했다는데, 이제 와서 정원조정을 한다는 건 그 실사의 결과와는 관계 없이 순전히 정치적 차원의 안배를 해보겠다는 거다. 그럴 걸 왜 실사는 하고 난리를 폈나? 걍 청와대에서 전국지도 한 장 펴놓고 인구비례로 하던 토지비례로 하던 줄 그어 주면 되지.

 

새사회연대 성명을 보니 가관이다. 정원 늘리고 학교 수 늘리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뭐, 대학간의 극심한 편차는 용납할 수가 없다고? 아닌 말로 용납 안 하면 어쩔 건데? 새사회 연대는 이렇게 될지 몰랐나? 어떤 방식으로든 로스쿨이 도입되고 각 학교에 정원이 배분되면 편차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오히려 편차가 생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학교마다 교육여건이 다르고 교육능력이 다르다. 생 난리를 치면서 실사까지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바로 그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고 그 차이를 근거로 정원배정을 하기 위해서다. 새사회연대는 이렇게 일이 진행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올바른 로스쿨 운운하는 운동을 했었나?

 

각 학교의 반응은 일단 둘로 나뉜다. 가인가를 받은 학교와 받지 않은 학교의 반응. 그거야말로 천지차이다. 수십, 수백억을 들여 온갖 준비를 다 했는데 가인가조차 받지 못한 학교의 경우는 낙심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거다. 그동안 들인 공이 아까운 것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로스쿨만 바라보고 쳐 들인 돈을 어떻게 보전해야할 것인지. 아마 한편으로는 정부발표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돈 되는 강좌 개설해서 기왕에 지은 건물 이용하고 애써 불러들였던 교수들 알아서 기어 나가게 만들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한편 가인가를 받은 학교도 분위기는 천양지찰 거다. 최소 100명 이상을 목표로 으리으리한 건물 짓고 난리를 쳤던 몇 학교들, 도대체 이 건물에 불과 40명 밖에 되지 않는 학생들을 집어넣고 운영하자니 본전은 커녕 밑빠진 독이 될 판이고, 그렇다고 그 건물에 다른 강의를 함께 수용하자니 나중에 재인가받을 때 마이너스라도 되지 않겠나 전전긍긍이다. 교수도 남아 돌고...

 

이거 비용보전 하기 위해선 입학생들에게 더 많은 등록금을 걷던지, 아님 학교 전체 등록금 비율을 높이던지, 재단에서 허구한 날 밑빠진 독에 물을 붇던지 뭐 어떻게 하겠다만, 결과적으로 로스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날 것임은 불문가지다.

 

자, 로스쿨이 점점 구체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게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도적인 개선을 하면서 정상화되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이를 위한 비용은 추산이 불가능하다. 도대체 이 말도 되지 않는 짓들을 한 자들의 지금 심경은 어떨까?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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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1:37 2008/01/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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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8/01/30 20:42

    로스쿨 예비인가대학이 발표된 마당에 반대해서 뭐하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대다. 현행 제도로는 정말 안된다.이번 발표는 대학간 서열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셈이다. 예비인가대학 및 반응 (연합기사 요약발췌)수도권 ㄱ. 서울대 (150명) : 요구정원 300명 생각하면 프로그램 굴러갈지 모르겠다. ㄴ. 고대 연대 성대 (120명) : 총정원 때문에 처음부터 쉽지 않은 문제(고대) 첫단추 잘못. 정원배분이 무슨 특혜 나눠주긴가(연대) 이 정원으론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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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8/03/23 00:04

    행인님의 [로스쿨 예비인가대학] 에 관련된 글. 거의 광적이라고 할만큼 그 맹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사교육 풍토에서 로스쿨은 학원가에겐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은 이미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로스쿨이 생기면 신림동 고시촌이 사멸할 거라는 로스쿨 찬성론자들의 호언장담은 개뻥이었음이 벌써 드러나고 있다. 이젠 초등학생들까지 로스쿨 학원을 쫓아다닌다고 한다. 소위 '주니어 로스쿨'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있고, 학원가에